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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Jun 09. 2017

41일

껍데기 줍기와 작은 환송회




어제 만든 무나물과 달걀스크럼블, 조개젓을 아침 반찬으로 먹었다. 빨래를 돌려 널었다. 아침부터 해가 좋아 두 시간쯤 지나니 벌써 다 말랐다. 천천히 준비를 하고 오후 두 시 즈음 집을 나섰다. 뜨거운 시간이지만 그냥 천천히 가자. 동네를 한참 걷고 내리막을 따라 동법사를 지나면 버스 정류장이 있는 사거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신호를 기다려 길을 건너면 또 한참을 천천히 걷는다. 돌담으로 이어진 골목 몇 개를 지나고 작은 수로를 옆에 두고 걷다 보면 한동리 바다를 둘러싼 낮은 시멘트벽과 그 벽에 그려진 벽화가 보인다. 돌고래와 파도가 그려진 낡은 벽. 이 벽을 넘으면 바다다. 벽 위로 올라가 걷고도 싶지만 그냥 올라가기엔 너무 높아, 계단이 나올 때까지 걷는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낭떠러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가 급히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오늘은 모래사장이 제법 있는 쪽으로 나왔다. 

작게 파도가 치고, 검은 바위 위에는 이름 모를 해초와 바다에서 떠밀려온 쓰레기들, 조개껍데기들이 널려 있다. 발치에서 투명한 물은 조금만 멀어져도 연두색, 초록색, 하늘색으로 난다. 모래 위를 가만히 살펴 보면 보말 껍데기와 소라, 작은 조개 껍데기들이 보인다. 파도에 닳은 나뭇가지도 두 개 주웠다. 제주에서는 이런 유목으로 작품을 만드는 분들이 많다. 파도가 알아서 잘 다듬어 주어서 그 자체로 둥글둥글 멋지게 낡아 있는 나뭇가지. 

주운 것을 담을 주머니가 없어서 휴지에 싸서 들고 있다가 스카프를 꺼내 돌돌 말아 감쌌다. 바닷가에서 한참을 놀았더니 어쩐지 자꾸 콧물이 나왔다. 모래가 환해서 눈은 계속 부셨다. 슬슬 등도 뜨거워졌다. 요요무문으로 들어가서 햇볕에 달구어진 몸을 좀 식혔다. 
"언니, 요 앞 해변에 예쁜 소라 껍데기들이 엄청 많아요!"
"바다 곁에 살면 적어도 굶지는 않는 것 같아."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당근케이크를 주문했다. 이것이 오늘의 점심. 콘티를 보면서 그림책 한 장면을 스케치했다. 아직 넣을지 말지 결정이 안 된 장면인데 그리다 보니 마음에 든다. 오후 다섯 시 즈음이었나, 요요무문에는 아주 작은 손님이 왔다. 회색 얼룩 아기 고양이가 고양이 밥 그릇 안에 들어가 정신 없이 사료를 먹고 있었던 것. 카페에 놀러 오는 길고양이 중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아서 데리고 왔다. 요즘 아침마다 온다고 하는데 오후에도 와줄 줄이야. 카페 안의 모든 손님들이 "아아아." 감탄을 하며 아기 고양이의 귀여움을 만끽했다. 여기저기서 플래시 세례. 고양이들이 아주 좋아한다는 츄르(고양이용 참치수프)를 먹여 주었다. 처음엔 놀라서 눈이 동그래져 있더니 이내 찹찹찹 열심히도 먹는다. 아주 조그마한데도 벌써 이가 다 자리잡았는지 단단한 건사료도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는 놀라운 아기.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고양이들도 밥을 다 먹고, 카페를 정리한 뒤 언니와 나는 선흘로 출발했다. 유는 세화에서 윗집 언니를 만나 온다고 했다. 오늘 저녁은 고마운 언니들과 환송회를 가지는 날. 선흘에 방주할머니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나는 이곳의 삼채만두가 아주 궁금했다. 삼채라는 약용채소로 피를 삼아 쪄낸 만두인데 모양도 얌전하고 푸릇하니 예쁘지만 맛도 좋았다. 속이 가득, 즙이 가득. 삼채만두와 함께 도토리전, 묵비빔밥, 고사리비빔밥, 콩국수를 시켜서 먹었다. 음식이 다 깔끔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건강한 맛이랄까. 그렇다고 완전 건강식이나 저염식처럼 밍밍한 스타일은 아니고 딱 적당히 좋았다. 차를 마시러 갈까 술을 마시러 갈까 고민하다가 집에 가서 간단히 술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와인과 맥주를 가져와 마른 안주와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윗집 언니가 재미라며 손금도 봐주셨다. 손금을 누가 제대로 봐 준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는데 나는 아주 평범한 손금이어서 별로 언급할 것이 없다고 하셨다. 특이점이 없달까. 좋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부침이 많은 삶보다는 평탄하고 조용한 삶이 좋다.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사부작사부작 살아야지. 

열한 시 가까이에 자리를 파했다.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시는 윗집 언니께 안 뜯은 쌀 한 봉지를 드렸다. 쌀이 떨어져가서 샀는데 최근 외식이 잦아져 못 먹고 갈 것 같았다. 이곳의 살림을 차츰 정리해 나가야 한다. 



 

저기 밥그릇 안에 들어가 있는 먼지 뭉치 같은 아기 고양이

얘는 삼월이. 제일 넉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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