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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Jun 09. 2017

42일

작은 숙취 작은 산책




어제 와인을 먹은 탓인가.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아팠다. 요즘에는 술을 마시면 눈에서 열이 난다. 몸에서도 열이 나는데 예전에는 그 열이 다 얼굴 피부로 올라오는지 열꽃이 피어서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몇 년간 금주를 했더니 주량이 획기적으로 적어졌다. 마시면서 계속 눈이 뜨거워 꿈뻑거리면서 앉아 있었다. 열기는 점심을 지나서까지 이어졌다. 

미엘서랍장을 갈까 벨롱장을 갈까 카페를 갈까 바다를 갈까 이리저리 생각만 하다가 낮이 지나가 버렸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왔고, 해질 무렵 산책을 나갔다. 오늘은 한동리 상동 첫 번째 점빵까지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은 전에 가보지 않은 건너편 골목을 통했다. 같은 마을인데 이쪽에서 보는 하늘과 저쪽에서 보는 하늘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오늘 하늘은 구멍이 난 듯 구름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빛을 받고 있었다. 

건너편에 강아지 세 마리가 나를 보고 있었다. 며칠 전에 살짝 봤을 때는 훨씬 작았는데 그새 큰 건가. 사진을 찍고 싶어서 한 걸음 다가갔더니 화들짝 놀라 우르르 집으로 가버렸다. 후다닥 들어가는 엉덩이가 귀여웠다. 그때 뒤에서 차가 빵빵 울려서 돌아봤더니 윗집 언니와 남편분이었다. 강아지 두 마리도 차 안에서 웃고 있었다. 언니는 저녁 드시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가는 길이면 태워주겠다 하셨는데 그냥 산책 중이라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천천히 들어오는데 집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동네 할머니께서 집에 오셔서 유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가시는 참이었다. 이 집 아저씨는 어디 갔는지, 개는 어디 갔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등등을 물어보셨다고 한다. 주인 아저씨가 안 보이고 여자 둘이 왔다갔다 하니 궁금하셨나보다. 이제 곧 아저씨 돌아오실 거예요. 개도요. 


귀여운 세 마리

한 발짝 움직였는데 꽁지 빠지게 도망

얘는 착한 얼굴로 그냥 가만히 눈을 맞춰준다

아기자기 예쁜 정원

저 구멍

구멍 길어졌다. 야자 나무 예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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