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13일차)
“...... 도배는 사람 써서 해야겠네... 일단 알았어.” 사회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에 그제야 눈을 뜬 중년생은 뒹굴대다가 일어나서 ‘천하장사 블라인드’(너무 무거워서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부터 걷어 올렸다. 어두웠던 방 안이 일순간에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마치 검은 페인트가 칠해진 방 전체에 흰 페인트를 갑자기 부어버린 것 같았다. 예상보다 훨씬 강한 눈부심에 카운터 펀치를 맞은 듯 고개가 휙-하고 저절로 돌아갔다. 시계를 확인했다. 9시 32분. 좀 늦게 일어났나 싶었지만 아무렴 어때. 볼로냐에서는 투어도 티켓 예약도 진짜 아무것도 해두지 않았다. 100퍼센트의 자유시간. 이런 경험은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아니, 아마도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2023년 4월 13일 목요일)
사회가 통화하고 있던 대상은 아버님이었다. 올해 2월 중순 즈음 사회의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는데 이제, 사시던 집을 정리하려던 참에 딸과 상의하려고 전화하신 모양이었다. 순간, 두고 떠나왔던 기억이 갑자기 뇌리에 들러붙었다. 사회와 돈독하다 못해 거의 친구 같던 할머님과의 이별 이후, 슬픔보다 컸던 공허함 때문에 지쳐있던 것이 얼마 전이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모든 것이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이탈리아에 와서 하루하루에 집중하며 지내다 보니 그때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평소, 단절이라는 것이 매정하고 부정적인 단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상황에는 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상냥한 단어였다. 처음에는 언어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적응하느라, 그리고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이곳의 매력을 알아가느라 어느새 한국에서의 상황과는 ‘완벽한 단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유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최대한 천천히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나올 때는 거의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이제 뭘 한다?” 어차피 볼로냐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었기에 일단 중년생이 구글맵을 켜고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볼로냐 시내 중심부는 마죠레 광장을 기준으로 오밀조밀 몰려있는데 그 외각으로 오각형(정확히는 7 각형 정도지만) 정도의 큰 도로가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우리는 상의 끝에 일단 큰 도로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 너무 선명하게 눈에 띄는 도로라서 어쩐지 거기 까지는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방향은 마죠레 광장에서 북동쪽 길로 가기로 했다.
볼로냐의 명소인 두 개의 탑(Le Due Torri)과 볼로냐 대학교 캠퍼스를 스치듯 지나가는 길이었다. 맑은 평일 11시 즈음 거리는 한산했고, 그래서 걷기 참 좋은 날이었다. 카페와 음식점에서 거리에 펼쳐 놓은 테이블과 의자가 하얀 햇빛을 받아 보기 좋게 반짝였다. 주위의 상점과 집들을 구경하면서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걷고 있자니 금방 우리의 목적지(?)인 오각형 도로에 다다랐다. “여기 맞아?” 사회의 의구심 가득한 질문에 구글맵을 켜고 확인해 보는 중년생. 분명히 두 사람이 목표했던 도로는 맞지만 도심 외곽을 연결해 주는 큰 도로로 보일 뿐 특별한 건 없었다. “몇 시야?” 11시 25분이었다. “배고프지 않아?” 시간을 보니 갑자기 그런 것도 같았다. 우리는 여기까지 온 김에 큰길을 건너보기로 했다. 건너보고 별 다른 볼거리가 없으면 근처 카페에 가서 간단히 배를 채우기로 한 것이다.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갑자기 거리가 더 한산해졌다. 대부분의 가게는 늦게 여는지 아직 닫혀 있었고, 거리 담벼락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하지만 좀 더 여유롭다는 느낌이 들뿐, 후미지다거나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사회와 중년생은 배도 고프고 더 걸어봐야 뭐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눈에 보이는 근처 커피바로 다가갔다. 유리 출입문 너머엔 아무도 없었지만 Aperto(오픈) 표시와 함께 진열된 빵이 보였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친절한 인사와 함께 바 안쪽 공간에서 나오시는 사장님. 여성 분이셨는데 부스스한 머리와 얼굴로 보아 어제 과음하시고 이제 막 문을 여신 것 같았다.(순전히 중년생 생각임.) 진열된 꼬르네또 외에도 간단한 햄치즈 샌드위치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셔서 섞어서 주문하기로 했다. 중년생의 픽은 피스타치오 꼬르네또, 사회는 프로슈토 치즈 파니니였다. 그리고 거기에 아침 카푸치노 한잔씩은 이제 필수였다. 커피머신에 하얀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그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은 없었지만 알록달록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의자들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다.
커피와 빵이 서빙되었다. 평범하게 맛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특별한 놀라움은 없지만 이탈리아의 커피와 빵의 수준이 기본적으로 높기 때문에 평범해도 맛있다는 소리다. “잠깐만, 나 장실 다녀올게.” 빵과 커피를 마구 흡입하더니 급한 듯 화장실로 직행하는 사회였다. 중년생은 방금 닫힌 화장실 문을 바라보면서 문 상단에 붙은 다이아몬드 모양 거울 위에 Toilette라고 쓰여 있는 글자체가 은근히 멋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할 일을 마치신, 혹은 숙취로 힘드신(순전히 중년생 생각임) 사장님도 어느새 바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셔서 사실상 매장 안에 혼자 남겨진 중년생은 테이블 위에 아까부터 놓여있던 신문과 잡지를 넘겨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읽지 못하는 이탈리아어의 배열이었지만 중간중간 함께 실린 사진을 보면서 무슨 내용일까를 추측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지 10분쯤 되었을까? 왜 안 나오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사회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조심스럽게 뒤로 돌아, 나왔던 화장실 문을 다시 닫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중년생의 앞자리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 “어서 나가자.” “어? 지금? 그... 그래!” 어딘지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중년생은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켜 사장님을 불러 계산을 했다. 여유로운 아침에 대한 감사로 팁까지 얹어 9유로를 지불하고 훈훈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가게를 나섰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우리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장님.
“뛰어!!!” 나서자마자 중년생의 손을 잡고 뛰는 사회. 영문도 모르고 한참을 따라 뛰다가 뭔가 깨달은 듯 갑자기 중년생의 웃음이 터졌다. “설마! 화장실 막혔어?” “응...” “그래서 오래 걸렸구나!” “다행히 뚫긴 했는데, 눈치 채신 건 아니겠지? 아침부터 창피해서 어떡해.” 중년생은 거의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댔다. 돌아보니 이미 아까의 큰 대로까지 건너온 참이었다. 사과하러 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팁이라도 드려서 다행이다.” 중년생이 말했다. 이 시간을 빌어 그날 아침부터 스멜(?) 공격을 받으셨을지 모를 사장님께 죄송했다는 말씀을 전하는 바이다.(수압이 약해서였을 수도 있었다는 소심한 변명과 함께.)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각형 도로 안쪽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쯤 걷자 상당히 커 보이는 공원 입구가 보였다. 지도를 살펴보니 몬타뇰라 공원(Parco della Montagnola)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궁금해서 조금 더 검색해 봤다. 나폴레옹 통치하였던 1805년 최초 건축된 볼로냐의 공공 공원으로서 1948년 8월 8일 이탈리아의 혁명가들이 오스트리아 군을 패배시키고 추방한 몬타뇰라 전투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에 와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아무 곳이나 검색해 봐도 거의 모든 곳이 역사의 장소였다. 화창한 날씨의 공원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가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줄지어 걷는 모습이 귀여워 우리의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졌다. 사회와 중년생은 공원 중앙쯤에 있는 거북이 분수 앞 벤치에 잠시 앉아 쉬기로 했다. 에메랄드 색 돌로 바닥을 만든 듯한, 그래서 물 빛도 연한 에메랄드처럼 보이게 하는 넓고 둥근 분수 한가운데 거북이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고, 그 중심에서 물이 한 줄기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단조로울 법도 한데 호수 주변을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들이 둥그렇게 감싸고 있어서 여유롭고 아늑한 느낌이 더 컸다. 후두두둑- 높이 솟아올랐던 물줄기가 조각상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가 사람들의 잡담 소리와 한데 어우러져 쉬어가기 좋은 백색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하얀 햇살을 그대로 받아내며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진짜 ‘쉼’ 속에 빠져있었다.
사각사각- 처음 이 정적을 깬 것은 사회가 꺼낸 노트와 펜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지안 생축♥︎’이라고 굵게 쓰고는 말했다. “곧 지안(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아이유> 아님 주의)이 생일인데 이렇게 하면 좀 특별하지 않을까?” 이탈리아의 멋진 풍경 위에 축하 문구를 적은 노트를 두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의미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사회의 의견이었다. 절친인 지안을 위한 사회의 아이디어는 중년생이 보기에도 낭만적인, 그래서 멋진 생각이었다. 공원을 배경으로 테스트할 겸 바로 실행에 옮겼다. 둘은 앞으로 멋진 곳을 만나면 같은 방식으로 찍기로 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는지 어느새 엉덩이가 지루한 듯 들썩였다. “이제 슬슬 갈까?” 둘은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공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험상, 충분히 쉬었는지 아닌지는 언제나 들썩이는 엉덩이를 보고 판단하면 틀림이 없다. 공원 정문 앞 길 건너편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는데 마침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하얀 천막을 가지런히 이어 쳐놓고 기념품부터 핸드폰 케이스, 옷가지 등 다양한 물건들을 내다 팔았는데 가격은 0.5유로부터 2유로까지로 매우 쌌다. 흥분상태로 소리를 지르며 가게를 통째로 구입할 것 마냥 달려들었던 중년생은 막상 사고 싶은 것이 없는지 한참 구경만 하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중년생의 손 끝, 발 끝에서부터 피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란히 걷고 있던 사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안 되겠다. 일단 돌아가자!”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가서 쉬었다가 저녁을 먹으러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문구점에 들러 풀을 하나(2.99유로) 샀다. 노트에 영수증을 붙이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받은 수많은 영수증들을 일단은 버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모아뒀었는데, 대충 여행지와 날짜별로 모아서 붙여두면 나중에 기록하거나 추억하는데 도움 되지 않겠냐는 게 중년생의 의견이었다. “나쁘지 않네!” 사회의 동의가 이루어지자마자 실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풀을 사고 호텔로 돌아온 때는 오후 3시가 좀 넘은 시각. 오자마자 중년생은 간단히 손을 씻고서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러고는 거의 동시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후둑- 후두둑- 무언가 창문을 때리듯 쏟아지는 소리에 갑자기 눈이 떠진 중년생. 덜 깬 눈동자를 돌리자 창문 밖에는 비인지 뭔지 모를 굵은 것이 떨어지고 있었고 사회가 그 광경을 찍고 있었다. 우박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굵은. 구름은 많이 껴 있었지만 파란색도 많은 상태의 하늘인데 갑자기 우박이라니. 아까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몇 시야?” “6시 반정도?” 무려 세 시간이나 잤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스스로의 몸인데도 얼마나 피곤한지 잘 몰랐다니 ‘몸’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쉬러 왔으면 쉬어야 하는데 오히려 혹사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즈음, 한바탕 쏟아지던 우박은 금세 언제 그랬냐고 시치미를 떼듯 뚝 그쳤다. 다행이었다.
“저녁은 뭐 먹을까? 검색해보자!” 중년생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회. 그랬다. 중년생이 잠든 기나긴 시간 동안 사회는 이미 저녁 식사 장소 검색을 끝냈던 것이었다. 거리는 걸어서 5-10분 거리. 오픈 시간은 저녁 7:30분. 맛있어 보이는 메뉴는 Antipasti(전체 요리)로 Misto Verdure(모둠 야채 구이), Prosciutto Crudo(프로슈토). Primi piatti(첫 번째 접시라는 뜻으로 주로 파스타, 리조토, 수프 등 탄수화물 위주의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으로 구성된다고 하나, 우리에겐 때로는 충분한 메인 요리가 되기도 한다)로 Tagliatelle alla Bolognese(볼로네제 파스타), Tortellini in Brodo(육수 토르텔리니)라는 것까지 조사해 뒀다. 그리고 심지어는 해당 메뉴를 이미지 캡처까지 해두는 기염까지 토했다. 감동받은 중년생. 오늘 저녁은 무조건 여기, 이 메뉴들로 가보고 싶어졌다. 사회와 중년생은 다시 회복된 발걸음으로 목표 식당을 향해 전진을 시작했다.
비가 와서인지 밖은 상당히 쌀쌀했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식당 앞엔 금방 도착했다. 찾아본 영업시간에서 10분 전이었다. 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지만 정각에 여는지 아직 인기척이 없었다. 주변 골목을 한 바퀴 돌고 오면 대충 시간이 맞을 것 같아서 주변 작은 길로 들어섰을 때였다. 두 사람이 지나가자 남성 패거리 3명이 서로 뭐라고 속삭이더니 그중 한 명이 눈에 띄게 중년생의 뒤편으로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소매치기임을 바로 눈치챈 중년생이 갑자기 권투 선수가 스트레칭을 하듯 주먹을 쥐고 한쪽 어깨를 붕붕 돌리며 주변을 경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서인지 따라오던 남성이 바로 방향을 바꿔 다시 무리에게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선 뿌듯한 마음에 여차저차해서 내가 이차저차 대응했노라고 사회에게 자랑하는 중년생. 하지만 사회의 반응은 의외였다. “응? 그런 일이 있었어? 난 따라오는지도 몰랐네.” 아쉽지만 사회가 무딘 것이었는지 중년생이 착각한 것이었는지 지금까지도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다시 돌아온 식당엔 오픈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인기척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유리 너머로 식당 안을 살펴보니 저 안쪽으로 직원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알고 보니 제법 규모가 큰 식당이어서 깊은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우리는 크고 무거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에 달린 종소리를 들은 푸근한 몸매에 더 푸근한 미소를 지닌 남성 직원이 우리를 안쪽 좌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테이블 중, 우리까지 두 테이블만 차 있었다. 인기 없는 식당을 잘못 고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우리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30분 동안 완벽하게 깨져나갔다.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거의 만석이 된 것이었다. 음식도 정말 맛있었다. 사회가 미리 정해놓은 메뉴 외에도 우리는 Secondi Piatti(주로 고기와 생선요리로 구성된 메인코스)로 Scaloppine ai funghi porcini(송아지 고기와 풍기 버섯 스캘러피니)를 주문했다. 얇게 썬 송아지 고기를 풍기 버섯과 함께 기름에 튀긴 요리인데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다. 와인은 하우스 레드 와인 1/2리터를 주문했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에스프레소와 티라미수까지 추가 주문해서 모두 먹어치웠다.(70.50유로, 팁 포함 총 75유로) 완벽한 코스 저녁식사였다.
사회와 중년생은 이미, 미식의 도시 볼로냐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고 있었다. 7시 30분에 들어갔는데 나온 시각은 9시 45분이었다. 정말 현지인처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즐긴 만찬이었다. 왜 이런 순서로 음식을 먹는지, 메뉴가 구성되어 있는지, 디저트는 왜 따로 먹는지 처음에는 낯설고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먹어볼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요리에는 단 맛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식후에 달달한 디저트를 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기쁨은 매우 컸다. 혀 끝에 남은 음식들의 여운을 천천히 느끼며 천천히 호텔을 향해 걸었다. 우박이 내렸던 날 밤이어서 그런지 날은 상당히 쌀쌀했지만 배가 든든한 탓에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와서 하루를 마감하는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니 벌써 11시 반 정도. 사회와 중년생은 곧 쓰러질 듯한 피곤이 몰려왔지만 오늘 있었던 일들과 내일 어디를 갈지, 또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버티다가 새벽 1시 30분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더는 안 되겠다, 자자!” 감기는 눈꺼풀의 무게를 가까스로 버티던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그러고는 약속한 듯 꿈나라 직행 열차에 나란히 탑승했다. 방안의 불이 꺼지고 정적이 빠르게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볼로냐에서의 두 번째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