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누구에게나 이상한 해였다.
3월 말부터 시작된 재택근무는 끝이 보이지 않고 (14일간 지역감염이 없어야 오피스에 복귀한다는데. 어느 세월에?) 늘 출장으로 빡빡하던 일상도 상당히 느슨해진 한 해. 새로운 프로젝트 찾아다니며 뭔가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었는데, 정반대의 상황이 닥치고 모든 게 불확실해지니 답답하기만 하다.
일은 일대로 콜은 콜대로 그냥저냥 이어지고 있는 와중, 한숨 돌리고 딴 생각을 해 볼 여유가 비로소 생긴 게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무념무상 시간을 휙휙 흘러보내던 싸이클이 강제로 멈추니 이렇게 글도 끄적여본다. 오래 전엔 블로그도 꽤 열심히 했었는데. 물론 대단한 글은 전혀 아니었고 일상 잡담 위주의 블로그였지만, 그마저도 오랫동안 손을 놓다보니 요즘엔 아예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습관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일주일에 글 하나 쓰기 따위의 챌린지가 필요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다보니 쓸데없는 넋두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에 흥미를 잃은 것도 크다. 손가락 가는 대로, 생각 가는 대로 쓰면 되는 것인데 그게 이상하게 힘들었다. 뭔가 쓰고나면 알맹이가 없고 읽기 거북한 쓰레기(!)만 한가득이다. 사실은 지금 쓰는 글도 계속 되읽으며 고치고 있는데, 그러지 않으면 어색하고 오글거려서 쳐다볼 수가 없다! 이제는 뭘 써도 좀 주절거림 없이 담백하게 쓰고 싶다.
사실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턴으로 처음 시작해 유엔에서 3년 반, 지금 직장 아프리카개발은행에서 5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국제기구라는 시스템이 이제는 지루해 질만큼 익숙해졌고, 이제는 십여년 전과 달리 많은 한국분들이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또 내가 공유할 수 있는 유니크한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
전혀 모르는 커리어에 무작정 뛰어들어 땅 짚고 헤엄치듯 나아가는 동안, 궁금한 게 있어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지다보면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경험과 팁이 아낌없이 공유되어 있었다. 시스템 속에서 버티고, 작지만 성취도 이뤄 보았고, 이제는 때도 많이 묻었다. 여기는 뭘 하는 곳이고 나는 뭘 하는지, 무슨 프로젝트를 하고 뭘 배우는지, 이 커리어란 어떤 것인지, 국제기구와 이 업계(!)의 명암은 무엇인지. 조금은 솔직하게 적어두는 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이 될 것이고, 누군가가 유용하게 찾아볼 정보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 코로나 백신의 출시를 고대하며 - 브런치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