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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 Feb 19. 2021

DR콩고에 에너지를 깔아보자   

Green Mini-Grid Program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다른 주제보다도 AfDB에서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풀어보고 싶었다.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도 거의 없거니와 사실 가까운 지인들도 그닥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일 얘기는 재미없어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토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nergy Deficit


아프리카의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지구상에서 전력망이 깔리지 않아 고생하는 지역은 이제 몇 안 남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정도? 나머지 지역은 사실상 100%에 가까운 전력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고, 어떻게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맞춰 인프라를 키워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재생에너지로 넘어갈 것인지가 오히려 주된 과제일 것이다. 아프리카는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전력망 연결과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AfDB의 High five 어젠다 중 첫번째가 "Light up and Power Africa"이다. 2025년까지 아프리카에 100% 전력 보급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는 New Deal on Energy for Africa라는 전략 아래 여전히 가동 중이고 (이제 4년 남았..) 덕분에 엄청나게 덩치가 커진 에너지 팀이 sovereign & non-sovereign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도 타이밍 좋게 에너지팀에 조인하게 되어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New Deal On Energy for Africa 2025년 목표. 아프리카 전 대륙에 전기를 연결하겠다는 얘기다



On-grid vs. Off-grid


전력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전력망을 깔고 발전소를 지으면 된다. 물론 그 자금이 없어서 지금껏 고생 중인데, 그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계속 등장해왔다. 


전통적으로 AfDB 포함 개발은행들은 발전, 송전, 배전 (generation, trasmission, distribution)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해 왔고 기본적으로 수원국 정부에게 차관을 주는 방식이었다 (sovereign loan). 국가 (공기업 전력회사) 소유의 전력망을 이렇게 계속 늘여나가는 접근은 지금도 물론 유효하고, 대부분 국가들이 전력 보급을 달성한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단점은 이 모든 비용이 정부의 부채로 전환된다는 점, 그리고 안타깝게도 굉장히 많은 개도국 전력 공기업들이 비효율적 &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적자가 쌓일 때마다 정부가 지원금을 들이부어야 하는 물먹는 하마가 신규 인프라에 투자할 자금이 충분할 리가 없고, 이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수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도 민간 소유의 발전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보통 기업이 투자금을 마련해 발전소를 세운 뒤 생산된 전기를 전력 공기업에서 장기간 (20-25년)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만성 적자인 공기업이 default하지 않고 시기 딱딱 맞춰 전기세를 지불하느냐는 또다른 문제) 


여기까지가 중앙화된 전력망(grid)이 있고 그걸 소유/관리하는 기업이 있는 전통적인 전기 시장이었다면, 2010년대 들어 아예 이 시스템을 벗어난 탈중앙화 솔루션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데. 이게 바로 off-grid solution이다. 자금력이 부족하고 비효율적인 공공을 끼지 않고 수요자에게 직접 전기를 연결해줄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직접적인 임팩트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전기가 닿지 않는 아프리카 시골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달아주는 광고? 캠페인?을 본 적이 있다면 그걸 생각하면 됨. 지난 10년간 급하락한 태양광 패널 단가에 힘입어 이 모델 자체의 경제성이 탄탄해지기 시작했고, 현재 아프리카에만 수많은 기업/스타트업들이 decentralized energy solution 기업을 표방하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집 한 채만 쓸 수 있는 태양광 패널+배터리를 달아주는 solar home system, 그리고 마을 전체를 미니 전력망으로 연결하는 mini-grid 두 가지 모델로 대략 압축해 볼 수 있겠다. 


Solar Home System vs. (Solar) Mini-Grid


둘 다 역사가 짧은 새로운 모델이다보니 아직도 여러가지 시행착오와 학습의 과정이 이어지고 있고, AfDB같은 기관들도 비즈니스 모델을 익혀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전통적인 전력산업 구조를 완전히 disrupt할 가능성을 보면 더 많은 실험과 시도가 필요한 영역으로 보인다. 사실 각자가 자기가 쓸 전기를 생산하고 남으면 판매도 할 수 있는 decentralized model은 아프리카나 개도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시장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AfDB도 직접 파이낸싱도 시도하지만 아직까지는 technical assistance 일환으로 리서치 및 데이터 분석을 하거나, 회사들의 사업 개발을 돕거나, 정부와 함께 정책/규제 개혁을 지원하는 등 역할을 더 많이 해 오고 있다 (e.g. AfDB Green Mini-Grid Help Desk). 산업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이런 지원들이 판을 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일정 수준의 보조금이 제공되며 더 큰 투자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DRC. 우리나라에서는 예능에도 종종 출연했던 콩고왕자 조나단이 먼저 떠오를 지도 모를텐데. 콩고라 하면 비교적 사이즈가 작은 Republic of Congo와 엄청난 사이즈의 DRC 두 나라가 있는데, DRC는 9천만명에 육박하는 인구에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를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대국이다. 참고로 두 콩고의 수도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매일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DRC 수도 킨샤사의 거리. (아비장과 달리) 노트북 가방메고 돌아다니면 큰일난다는 소리를 나중에야 들었음


나라가 어마어마한 사이즈인 것에 비해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았고 발전도 더뎠다. 아프리카 내에서도 비교적 열악하고 낙후된 이미지이고 정치환경이나 투자 여건도 좋지 않아 주목받지 못하는 대국, 자국 통화가치가 불안정한 탓에 US dollar가 일상에서 자연스레 쓰이는 신기한 곳. (심지어 곳곳에 달러 ATM이 있음. 진짜 달러가 들어있겠지?) 에볼라의 근원지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볼라가 간헐적으로 창궐했었고, 동부 일부 지역은 반군들이 득세해 치안도 불안한 곳 (나라가 너무 크다보니 통제가 힘들다). 엄청난 인구와 자원을 깔고 그렇게 앉아만 있으니 안타까운 상황이다. 


전력상황은 어떨까? 통계적으로 전국 전력 보급률이 약 10%. 그것도 수도나 주요 도시 빼면 거의 0에 수렴한다. 이건 아프리카 전체를 보더라도 굉장히 낮은 수치인데 (지난 몇 년간 전력보급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게 9천만 인구 대부분이 암흑 속에서 지내고 있다. 물론 전기가 없다고 밤에 불도 못 켜고 야생의 삶을 사는 건 전혀 아니고, 그나마 돈 있는 사람은 디젤 발전기를 열심히 돌리고 (시끄럽고 비싸고 더럽다) 돈 없는 사람은 LED 전등 (그도 아니면 케로신)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게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게, 아프리카도 웬만하면 사람들 몇 만 명 모여사는 소도시에는 전기가 연결되어 있게 마련인데 DRC의 소도시들엔 그것조차 없는 것이다. 


DRC는 회사 본부 아비장에서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지만 (직항 비행기 3시간) 프로젝트 하면서 수도 킨샤사만 한 번 갈 기회가 있었고, 아래에서 얘기할 프로젝트 현장은 아예 가 보지도 못했다. 왜? 길이 너무 안 좋고 먼 데다 일반 비행 노선도 없어서 가려면 비행기 한 대 charter해서 가야 한다고 ㅎㅎ 결국 현장 작업하는 엔지니어, 현지인 컨설턴트 등등이 다녀온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DRC grid map. 살구색으로 표시된 곳이 전력망이 닿는 지역이다. (전력보급률 10%가 과장이 아님)



Green Mini-Grid Program


DRC에는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렇듯 여러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지만 전력문제부터 답을 좀 내어보자는 취지에 여러 공여국들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 중 영국 정부의 지원금으로 기획된 프로그램 중 하나가 Essor Access to Electricity라는 사업이다. 요지는, 전력이 연결되지 않는 DRC의 지방 중소도시들을 찾아 데이터를 모으고 타당성 평가, engineering design을 거쳐 mini-grid를 설치해 보자는 계획. 물론 그런 전력망을 디젤을 때워서 발전하는 건 요즘 트렌드도 아니고 수익성도 나쁘니 (콩고 내륙까지 운송하는 비용까지 더해져 디젤 가격이 너무 비싸짐) 태양광+배터리를 기반으로 만드는 거다. 그런 도시들의 숫자가 워낙 많고 필요한 사업비가 크다 보니 (인구가 워낙 많아서) donor 지원금으로는 현장 조사와 타당성 평가, 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공 입찰 프로세스까지를 진행하고 그 뒤에는 선정된 민간사업자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그리고 그 자금의 일부로 AfDB가 project loan을 제공하고 다른 co-financier들을 모으는 역할을 시도하고 있는 것.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타당성 평가가 진행되었고, 파일럿 형식으로 3개 도시를 먼저 선정해 사업을 실행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3개 도시 모두 각각 1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큰 도시이고 (DRC 북부에 위치) 어느정도 산업 기반도 있다보니 그것만으로도 자연스레 사업 규모가 커지게 되었는데 (예상 사업비 약 천억원 - $90M). AfDB도 초반에는 정부를 어드바이즈하는 형식으로 간접적으로 발을 담그다 사업자 선정이 진행되면서 좀 더 공격적으로 파이낸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좋은 사업이 있으면 lender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생기기 때문에 (사업비와 필요한 대출액은 한정되어 있으나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DFI lender들은 많다) 우리도 이렇게 임팩트있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리드할 수 있는 기구가 되고자 더 전략적으로 움직인 면이 있다.


그래서 먼저 협업한 곳이 우리나라 송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Green Climate Fund (GCF). 사업의 대략적인 윤곽이 나오고 2018년에 바로 GCF와 논의를 시작했고, GCF 측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와서 그 후 몇 개월에 걸쳐 funding proposal을 작성하고 내부 검토를 거쳐갔다. 첫 사업자 선정이 진행 중인 3개 도시에 대해서 loan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그 해 10월 GCF가 $20M를 승인했고, AfDB도 같은 액수를 commit하기로 양 쪽 이사회 승인을 모두 받게 되었다 (GCF 이사회 미팅 참가하러 무려 바레인까지 갔었음.. 물론 독특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업자가 정해진 뒤 구체화된 사업구조로 다시 실사를 진행하고 최종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다행히 정부가 사업자 선정을 잘 진행한 덕에 2020년 말 한 다국적 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되었다. GCF와 AfDB 자금에 더해 우리 내부에 운용 중인 special fund를 통해 일부 보조금과 guarantee를 더하는 것을 고려 중에 있다. 사실 지금까지 오는 것도 많은 일이었지만, 앞으로 최종실사와 이사회 승인, 각종 계약협상 등등 실제 사업이 시작되기까지 남겨진 일이 더 많다. 


DRC 사업 승인받으러 갔던 Green Climate Fund Board Meeting. Observer room에서 생중계 중인 보드룸을 지켜보는 중


경험이 쌓이면서 더 피부로 느끼는 것이지만, 인프라 사업은 (특히 민자사업은) 정말정말 오래 걸리고 계약당사자와 이해관계자도 많고 구조도 너무 복잡하다. 특히나 이런 mini-grid 사업은 우리 모두가 해 본 적이 거의 없다보니 그냥 learning by doing.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인프라는 결과물의 실체도 명확하고 주민들의 일상과 생산활동에 직결되는 것이라 그만큼 우리가 거는 기대도 크다. 이렇게 시작된 비즈니스 모델이 DRC 세 도시를 넘어서 전력이 필요한 모든 곳으로 스케일되는 것이 또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비전이다. 



Lessons (to date)


긴 글이었지만 마무리지으며 몇 가지 느낀 바? 논의 포인트?를 짚어 보자면.

전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는 더이상 보조금이 필요하지 않다. 그만큼 생산단가가 낮아졌단 얘기. 두바이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사업비가 비교적 높은 아프리카에서도 단가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다만 mini-grid는 발전소에 송배전 & 건물 연결 비용이 더해져 있기 때문에 보조금이 없이는 아직도 사업성이 어려운 편. 전력사업이 결국은 공공인프라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조금은 정당화할 수 있지만 (특히 송배전 사업은 여전히 대부분 공공 모델로 진행), 여전히 스케일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

전력 인프라 사업의 공공 vs 민간 모델은 아마 정답이 없을 것이다. 정부 주도로 공기업이 모든 걸 짓고 운영하는 것도 정답은 아닐 것이고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의 재정상황을 고려하면) 그렇다고 전부 민영으로 푸는 것도 답이 아닐 것이다. 결국 민자사업을 얼마나 정부가 정교하게 컨트롤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그래서 사업자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정하고 그 뒤 꼼꼼한 계약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부의 기술적, 행정적, 법적 역량이 중요하다. AfDB는 큰 인프라사업을 주관할 정부를 법률적으로 돕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전력 생산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intermittent 재생에너지(태양광 & 풍력 등)가 대세가 되기 위한 진정한 game changer는 바로 배터리. Utility scale로 적용될 수 있는 에너지 저장기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나 현재 전기차 열풍에 힘입어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기대가 앞으로도 크다. 테슬라는 앞으로도 배터리 싸게 많이 만들어 팔고 주식도 많이 올라주길. 물론 우리 한국 기업들도..

사실 위에서 이야기한 건 사업 전체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고 (그것마저도 수 년이 걸렸지만), 실제 파이낸싱이 완료되고 (financial close) 그 다음 mini-grid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까지 여러가지 난관이 예상된다. 마지막까지 다 잘 해 놓고도 운영하는데 수익이 안 나서 망할 수도 있는 사업. 일반 on-grid 발전소 사업은 전기를 구매하는 전력 공기업과 정부만 상대하면 되는데, 이건 사업지역 내 주민들을 몇 만 명을 하나하나 상대하고 전기세를 받아야 한다. 아 물론 공기업/정부만 상대하는 게 더 쉬울거라 생각한다면 우리 아프리카를 너무 쉽게 본 것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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