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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Aug 29. 2023

소개팅에서 차이고 쓰는 연애 자소서

Who am I

나는 어떤 사람일까. 정확한 건 요즘 굉장히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지난주 38살 탈모가 진행 중인 다리 짧은 남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 여느 때처럼 들어오는 소개팅, 안할수도 없어서 습관적으로 하러 갔다가 외로움을 선명하게 마주했다. 탈모, 피곤한 얼굴, 군살이 붙은 몸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매너와 여유에 빠져 ‘연애할래’를 속으로 외쳤다. 그래서 3번째 만남에 먼저 고백했다가 차였다.


나는 4년째 연애를 못했다. 일상은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오르거나 뛰었다. 때때로 소개팅이 들어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주말에 가게 될 산과 소개팅남을 저울질했다. 산은 언제나 너그러웠고 새로운 재미를 줬다. 확실했다. 소중한 주말에 도박하고 싶지 않았다. 어색하고 실패 확률이 더 큰 만남 대신 보장된 재미를 선택했다. 그렇게 자연과 운동을 즐기는 내가 그 누구보다 재밌었다. 사람들은 4년 내내 혼자 외롭지 않냐고 그랬는데 전혀. 운동을 하고, 일에 파묻혀 살면서 매일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내가 생각보다 별로일 때도 있었고, 괜찮을 때도 있었고, 그렇게 나랑 아웅다웅 지내다 보니 조금씩 멋있어졌다. 그러고 사느라 외로울 틈이 없었다.


사실 밀당에 소질이 없어서 연애 시작이 어려운것 있다. 좀 관심 있는 남자가 있어도 말도 못 걸고, 멀찍이서 관찰만 하거나 다가오면 허튼 소리를 하고 멍청해졌다. 연애를 하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도 싫었다. 몸매 관리하는 게 재밌어서 저녁 6시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도 안 마셨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게 싫어 9시가 넘으면 집에 가고, 늦은 시간 수다 보단 혼자 책 읽는 게 좋아 11시 이후엔 핸드폰을 껐다. 맛집 탐방 대신 집에서 요리해서 먹는 게 더 좋았다. 푼돈 아끼는 걸 좋아해서 사실 연애 안 해 돈이 잘 모여서 좋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커리어 7년 내내 항상 야근과 업무가 많은 회사를 전전했다. 여기서 더 무언갈 더 책임지거나, 예상치 못한 감정이 일어나는 게 부담스러웠다. 난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근데 며칠 전 아빠가 ‘인간이라면 노동이나 사랑 둘 중 하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잠시 쉬던 소개팅에 나갔다. 사진상으로도 선명한 탈모도 있고, 세상 고단해 보이는 남자에게 애초에 기대는 없었다. 근데 ‘예쁘다’고 말해주는 말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전엔 남자가 예쁘다는 말을 하면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만난 이성이 그러면 ‘난 일로 인정받고 싶어’, ‘일하러 왔는데, 왜 딴소리야, 빨리 일끝내고 집 가고 싶다’ 생각하며 삐딱하게 상대를 바라보고 민망해했다. 어떤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근데 예쁘다는 단어가 참 달콤한 단어라는걸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이 단어도, 예쁘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는 나자신도 새롭고 신기했다.


지난 주, 탈모남을 만나려 밤 10시에 나가서, 한밤중에 맥주를 무한정 들이켰다. 이전에는 살이 찔까 봐, 내일 일해야 하니깐, 절대 하지 않은 것들이다. 술맛을 모른 체 살았다. 근데 몇 년 만에 연어구이와 함께 맥주를 마셨는데 달콤하고 시원했다. 남일에 관심 없고, 이미 내 일상이 고단해서 피곤한 이야기 듣기 싫다 싶었는데 누군가의 권태로운 일상을 듣는 건 흥미롭고, 나도 돈 많이 벌고 일 잘하고 싶다는 의지가 불끈불끈 솟아 올라서 이력서를 쓰고 있다. 4년 동안 내가 제일 재밌어, 어정쩡한 남자랑 사느니 혼자 살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녔던 시간들이 아쉽게 다가온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고백했다가 차였지만, 고맙다. 짧은 시간 동안 행복을 선명하게 봤기 때문이다. 행복은 일상에 다채로운 감정이 퍼지는 것이다. 절대 듣지 않을 아이돌의 노래를 그 사람이 듣는다고 해서 억지로 듣고, 빨리 오지 않는 답장에 짜증이 나고, 아직은 서로가 어색해 겉도는 대화가 오고 가 답답한 감정, 당연히 나랑 사귈 줄 알았는데 차갑게 웃으면서 차였을 때의 남겨진 황당한 감정, 그래도 나를 보면서 환히 웃던 모습에 기분이 좋던 시간. 아빠 말대로 정말 인간이면 연애(사랑)를 해야 하구나 느꼈다. 사람은 떠나도 연애를 해야겠다.


(곧) 취업하기 전, 다시 바쁜 프로젝트들을 하기 전 잠시 한 달 여간의 시간이 남는 이때 최선을 다해서 연애상대를 찾을 거다. 친구들이 간간히 물어다 주는 소개팅은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이건 내 연애고, 내가 원하는 일니깐 내가 앞장서서, 나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어느 데이팅 앱의 첫 질문이 '자기소개'이니, 어쨌든 써야하는 글이기도 하다. 너무 어려운 질문 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연인과 새로운 경험, 도전, 일상을 보내면서 나를 발견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거다. 언제나 ‘네글이 좋아’라며 무한정 응원해 주는 사람, 가끔은 함께 트레킹 길을 오르며 거친 쉼호흡을 나누고 땀에 절어 김밥을 나눠 먹으면서 깔깔거리고, 한강의 자전거를 타고 벤치에 앉아서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켤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겠다.


그래서 마땅한 직업이 없지만(지금 열심히 구직 중임), 운동을 매일 하고, 토끼처럼 주로 야채만 먹는 데다가, 10시에 잠자는 사람, 엥간해선 쌩얼로 다니는 여자와의 연애가 조금 두렵지 않다면, 저에게 메시지나 제안하기를 통해 생각을 남겨주세요! I'm back in dating circle. so, if you are not scared of me, leave me a message!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1.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
2. 자기 일에 열정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
3. 스트레스를 운동, 여행, 독서, 잠 등 긍정적으로 해소할 줄 아는 사람
4. 거주지와 회사가 서울에 있는 사람
5. 아래 위로 5살 차이 나는 사람(저는 91년 생입니다)
6. 비흡연자

[제가 이성을 볼 때 따지는 두가지]
1. 저와 비슷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는지(사랑을 많이 받으며, 긍정적으로 자랐는지)
2. 직업적으로 부와 명예가 있는지
3. 참고로 외모와 키는 별로 안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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