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추도사 Oct 18. 2024

요리에 담긴 마음

나를 위로하던 요리, 내가 사랑을 담은 요리

파리에서 친구가 차려준 맛있은 아침 @2024. 10

내가 일한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는 모든 것이 수치로 정해져 있었다. 누가 만들어도 샷 추출시간, 물양과 온도 등 레시피가 똑같았다. 근데 신기하게 누가 내리는지에 따라서 커피맛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래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와 합이 좋았던 매니저와 스케줄이 겹칠 때는 향긋한 커피를 마실수 있다는 생각에 출근을 기다렸다. 동료에게 커피를 부탁하고 가져온 빵을 나눠 먹었다. 다정하고 묵묵히 일을 잘하던 그 처럼 커피도 그러했다.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단순한 레시피와 재료도 마음이 담기면 최고의 음식이 된다는 걸 알았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이지만, 말은 사랑을 담기에 부족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편지와 카톡에 표현해도 부족한 나날들. 그때 요리를 재발견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옳은 것만 먹었을 때 놓이는 마음. 연인과 맛있는 걸 먹는 시간 온몸에 흐르던 도파민. 그래서 도마를 꺼내고 불 앞에 섰다. 먼저 내가 자신 있는 샌드위치를 요리했다. 흩어진 재료들을 꾹꾹 쌓는 게 사랑의 모양을 만드는 거 같아서 신났다. 토스트빵을 바삭하게 구워 고소하게, 찬물에 씻어 야채를 아삭하게 만들고, 녹진하고 부드러운 치즈, 달콤한 소스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뚱뚱해진 샌드위치가 말로 부족하던 사랑의 밀도를 눈으로 보여주고 달콤한 맛으로 표현돼 뿌듯했다.


연인이 좋아하는 카레를 만들때도 마음이 담겼다. 딱딱한 감자가 포실포실해지는 게, 처음엔 개싸가지 였는데 이제는 부들부들 달콤해진 나 같았다. 양파, 파프리카, 마늘, 카레가루가 뭉근하게 엉켜 하나의 요리가 되는 것이 처음엔 엇박자가 나던 두사람이 ‘연인’라는 단어로 잘 묶인 우리 같았다. 그 요리들은 살면서 내가 한 요리 중에 가장 맛있었다. 이전에 부모님에게도, 친구에게도 요리를 자주 한 편이고 그때도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효, 우정, 감사 등 인간의 다양한 마음 중 가장 강력한 게 사랑이라는 걸 이때 요리를 하면서 알았다.


연인과 헤어져 마음이 많이 구겨진 나날 속 엄마에게 모진 말과 까칠한 행동으로 서로가 으르렁 거린날이 이어졌다. 외롭고 슬펐다. 내 편이 돼줄 연인도 없고, 나이 먹고 부모와 같이 사는 것도 싫었고, 나에게 의지하려는 엄마도 버거웠다. 집에 돌아가기 싫던 날, 늦은 밤 현관문 앞에서 나던 김치찌개 향을 맡고 울컥했다. 아무 말 없이 티브이를 보던 엄마, 주방 가득 따뜻한 온기와 가스레인지 위에 끓여져 있던 햄이 가득 한 김치찌개. 연인에게 요리를 해주려 챙긴 야채들이 요리사를 잃어 말라비틀어진 부엌. 그곳에서 엄마가 끓인 김치찌개의 햄을 건저 먹으면서 울고야 말았다. 위로하는 마음을 먹으면서 다시 부엌에서 야채를 손질하고 따뜻한 요리를 할 수 있는 나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