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괴롭고 힘들어
른수가 배추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
이수지 님, 진짜 반짝반짝하지! 배추의 눈에는 이수지 님이 들어왔구나. 나 역시 일로 이름을 떨치고 정상을 지키는 사람들과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보면 광채(!)를 느껴. 최근에 본 영화 <단지 사고였을 뿐> <원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그랬어. 깜깜하던 극장의 불이 켜지고, 혼이 쏙 빠져 감탄만 나왔어. '와, 진짜 인간미 없다. 겁나 잘 만들었다..' 부럽고 얄밉기까지 했어. 만약 그 작품을 챗지피티가 만들었어도 감탄했을까? 배추는 어떨 거 같아?
나라면 '에이, 기계(챗지피티)가 만든 거였어?' 하며 실망하거나 '진짜 사람이 만든 것처럼 잘 만들었다.' 하고 다른 의미로 감탄했을 거 같아. 결국 사람이, 혹은 사람처럼 대단히 잘 해냈다고 칭송하게 되는 건, 우리가 이야기 나눴던 불완전함을 이겨내서가 아닐까? 그러니까, 애초부터 불완전함이 사람에게 전제되기에 그걸 이겨낸 정상 위 사람에게 '광채'가 생기는 거 아닐까!? 영화만 해도 그 한 작품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잖아. 크레딧만 해도 몇 분에 달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동안 우리처럼 어설프고 엉성하고 비효율적이고 납득이 안 되고 허둥지둥하고 했겠지. 각자 말이야. 그런 수많은 변수를 겪고도 이런 작품이 나왔으니 감탄을 안 하고 배기겠어..?
그래서.. 조금 너그럽게 생각해 결론을 내려봤어. '엉성하지 않게 일한 게 당연하고 그렇지 못한 건 대단한 일이다..!' 그걸 알겠는데도, 스스로 내 부족한 모습에 괴로워하는 이유는 뭘지 생각해봤거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괴롭고 힘든 거 같아. 업무하는 시간이 의미 있고, 나 개인의 성장에도 직결되고, 재미도 있고 성취감과 효능감도 느끼고. 그래서 나는 내 일을 애정하는 거 같아.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고(이글이글) 자연스레 책임감이나 부담감도 커지는 거 같아. 기획해서 출간 제안한 일이 거절로 끝이 나거나, 기대한 만큼 책이 잘 팔리지 않으면 퇴근하고도 계속 괴로움에 휩싸여서 슬퍼하고 고뇌해. (감사하게도) 야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퇴근 후 책에 대한 스위치가 잘 안 꺼지더라고. 좋아한다고 해서 이 꺼지지 않는 스위치 현상까지는 좋아할 수가 없더라.
특히 책을 만드는 과정 중에는 '이게 맞나?' 하는 일로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 앞에서 말했던, 자신감과 확신이 서지 않아서야. '진짜 잘 만들고 싶은데, 오히려 내가 방향을 틀리게 잡아서 책이 이상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내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는 결국 나뿐이야. 왜냐? 내가 담당 편집자이니까! (명쾌한 진실) 당장 눈앞의 업무를 나름 판단해서 해치우고, 이런저런 결과를 맞이하면서 그때그때 깨달음을 얻는 수밖에.
그 짓(?)을 7년째 하고 있는데 아직도 감이나 확신이라 할 만한 게 안 생겼어. 그럼 내가 10년을 한다고, 15년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긴 할까? 그런 조바심도 들고. 연차는 오르는데 실력이 안 오르는 거 공포 영화처럼 무섭고. 그러다 보니까 좋아하는 일이어도 이런 책임감, 부담감, 조바심, 공포감 다 떨쳐버리고 싶어.
'일하기 싫어, 배추야' 하고 너에게 칭얼거리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냥 일에 크게 의미 안 두고, 생계를 이어나가는 걸로 만족하는 게 부럽기도 해.
일, 좋아. 그런데 좋아서 싫어.
이게 무슨 아이러니일까나.
그치만 심플하게 좋고 좋아. 좋아서 끝!(Period!) 하고 말할 수 있는 대상도 있지.
바로 배추!
너에 대한 애정과 함께 일에 대한 고됨을 나눌 수 있어 기뻐.
결국 답은 나지 않고 아이러니는 아이러니 채로 있겠지만 계속 고민하고 나누고 싶어.
오늘도 '일하기 싫어'를 머릿속에 100번쯤 떠올린 른수가
'나는 그래도 일하면서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신기한 배추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