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도시락 만들기.
아침 6시, 분주하게 주방을 들락거렸다. 냉장고 문을 활짝 열고 위에서 아래로 스캔을 몇 번 하다가 계란, 햄, 치즈, 딸기잼을 꺼냈다. 야채 칸에 넣어둔 방울토마토, 당근, 오이, 메추리알이 내 눈길을 붙잡았지만 망설임은 짧았다. 냉장고 문을 닫고 계란 4개를 풀었다. 오늘은 3년 6개월 만에 아이의 도시락을 만드는 날. 이미 4월 말 담임선생님께서 보낸 '현장체험학습 안내서'를 받고 계획이 섰다. 맛있는 도시락을 만들어주리라.
코로나19가 내게 앗아간 큰 기쁨 중 하나는 '아들의 도시락을 만드는 기쁨'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소풍날만 되면 도시락통을 꺼냈다. 학창 시절 엄마는 늘 바쁘거나 아프셨기에 나와 동생의 도시락을 만들지 못하셨다. 다른 친구들이 꺼내는 도시락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포일에 돌돌 말린 김밥이라도 좋으니 엄마표 도시락을 야금야금 먹고 싶었던 날들, 내가 만약 엄마가 된다면 도시락은 손수 만들겠노라 가슴속에 작은 꿈이 자리 잡았다.
문어, 꼬꼬닭, 토끼, 달팽이, 버섯돌이와 피카추. 아들은 내 도시락을 열고 "우와~" 탄성을 질러댔다. 문제는 유치원에 도시락을 가져갈 때마다 엄마들의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
"어머니~ 다른 친구들이 집에 가서 엄마에게 눈을 붙여 달라고 한다네요. 호호호" 유치원 선생님의 말에 "그럼 다음에 아이들 거 꼬꼬랑, 토끼, 넣을게요. 같이 나눠 먹으면 좋잖아요." 민원이 내 도시락을 만드는 기쁨을 앗아 가지 못했다. '미안하다 애들아. 예쁜 도시락 만들기가 이모 꿈이었어.' 적어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도시락은 직접 아이의 가방에 넣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또한 내 욕심. 코로나로 소풍과 현장 학습은 3년 동안 모두 취소되어 도시락통은 저 깊숙한 선반에 콕 처박혔다.
"말만 해. 엄마가 뭐든 만들어 줄 테니까. 김밥? 아니다. 이번엔 히어로 만들어볼까?"
"그냥 저번에 아빠랑 같이 낚시 갔을 때 먹었던 무스비면 돼요."
"그거 너무 쉬운데. 샌드위치랑 같이 만들어줄까?"
"아니요. 젤리랑 물이면 돼요."
"왜~ 엄마는 해주고 싶은데." 아쉬움에 내가 투정을 부렸다.
"그거 만들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요. 엄마가 만든 건 다 맛있으니까 간단한 걸로요. 제발 눈만 붙이지 말아요."
눈을 붙이지 말 것. 검은깨와 김으로 콕콕 박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그게 싫다니. 이제 도시락을 만드는 기쁨은 가로로 세로로 이리저리 접어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나. 결국 아침에 아들의 바람대로 무스비를 만들었다. 스팸은 미리 꺼내 뜨거운 물에 데치고 두껍게 계란말이를 말았다.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간을 한 밥을 스팸 통에 담아 꾹꾹 누르고 있을 때, 아이가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와 내 뒤로 왔다.
"엄마, 눈 붙이는 거 없죠?"
"알았다 알았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냉장고 안에 비엔나랑 메추리알도 있어. 금방 만들 수 있어."아들은 고개를 흔들며 욕실로 들어갔다. 아쉬운 맘에 햄, 치즈를 식빵에 돌돌 말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도시락에 담고 보니 문어, 토끼, 꼬꼬에 미련이 남았다.
"방울토마토라도 넣어줄까?" 아이는 씩 웃으면서 도시락통을 탁탁 닫았다.
"잘 먹을게요. 엄마. 고마워요." 등교하며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은 한없이 밝았다. 비록 도시락을 만드는 기쁨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아이의 미소에 '눈을 못 붙이면 어때. 저렇게 좋아하는데.' 아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주방으로 들어와 눈이 없는 방울토마토를 오물오물 씹어 삼켰다. 아이에게 엄마의 도시락은 어떤 추억으로 남을까? 부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홍차로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