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방, 빗소리와 오르골이 섞인 음악이 낮게 깔려 있다. 휴대전화 메모장에 일기를 간단히 저장하고 바로 누었다. 잠이라는 녀석은 아직 내게 다가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결국 한참을 뒤척이다 폰을 다시 연다. 마음 같아서는 거실로 나가 노트북 앞에 앉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오른손이 다친 이후로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몇 자는 가능하리라. 하지만 이내 손가락에서 시작한 통증은 손목과 팔을 타고 어깨와 목을 경직시킨다. 양손 엄지만 쓰이는 폰이 지금은 내게 최적화된 기록 수단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만난 교통사고. 가족들은 다친 곳이 없었지만 나 혼자 머리와 오른손에 충격을 받았다. 퉁퉁 부풀어 오르는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보면서 부러진 게 아닌가 싶었다. 늦은 저녁이었으므로 병원에서 응급조치만 한 뒤 다음날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찍었다. 뼈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인대가 다친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에 반깁스를 하고 약을 받아 집에 왔다. 보름이 흐르고 깁스를 풀었을 때 약지는 부드럽게 움직여졌다. 다만 새끼손가락은 퉁퉁 부어 엄지손가락보다 두꺼워져 있었다. 의사는 재활을 하면 좋아질 거라며 물리치료실로 등을 밀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파라핀과 레이저치료 후 치료사가 내 옆에 앉아 잼잼 놀이를 시켰다. 말이 치료지 나는 10분에서 15분 동안 지옥문 앞을 넘나들었다. 저음과 고음의 신음을 삼키다 11년 전 배웠던 라마즈 호흡법을 반복했다. 열흘이 지나도 상황은 같았다. 새끼손가락은 교만하게 허리를 숙이려 들지 않았다.
"이거 오래 걸리겠는데요? 재활 강도를 좀 올려봅시다. 오늘부터 매일 물리치료받으세요."
팅팅 부어있는 손을 이리저리 만지며 각도를 재던 의사의 말에 매일 아침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재활 강도를 올린 첫날. 내 손을 감싼 주먹을 5초 동안 10번 유지하면서 내가 흘릴 수 있는 땀과 눈물은 모두 흘렸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못하겠어요." 나보다 적어도 10살은 어린 치료사의 팔을 잡고 애원했으나 소용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던 치료사는 10초를 새고서야 내 손을 놓았다. 손을 펴자 손금을 타고 흐른 땀이 줄줄 수건에 떨어졌다.
그로부터 3일 후, 물리치료실에 들어서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더니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아 주저앉아 사람을 불렀다. 이러다 내가 죽지 않을까. 치료사는 간혹 이런 분들이 있다며 그날은 물리치료 강도를 조금 낮춰주었다. 병원에서 지어준 진통제도 내성이 생긴 걸까. 새끼손가락이 온몸은 지배하는 것 같았다.
"나아가는 과정일 텐데... 얼마나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이상하다. 계속 안 좋아진다고? 엄마가 수술받았던 그 병원 내일 가봐."
"똑같이 이야기하지 않을까? 거기서 더 심하게 재활하면 나 죽을 것 같아 엄마"
결국 통증을 참지 못하고 아침에 봉합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찾았다. 1시간 반을 기다리다 내 이름이 불렸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얼마나 아팠을 거야. 세상에."
그의 외모와 목소리는 -내 머릿속에 지우개- 속 알츠하이머에 걸린 손예진에게 병명을 알려주었던 의사와 싱크로율이 90%은 되어 보였다.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곧바로 엑스레이 촬영부터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다시 진료실에 앉자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보이죠? 인대 완전히 끊어진 거. 자기들이 못 고치면 빨리빨리 다른 병원으로 보내주던가. 아이고 진짜. mri를 찍어봐야겠지만 수술은 해야 해요."
"수술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평생 손가락 굽히지도 못하고 통증 달고 살 거요? 자연적으로 나을 수가 없어. 이렇게 늦게 와서,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이지만... 아니 어떻게 참았데?"
"그럼 언제 수술을 해야 하나요?"
"일단 오늘 mri를 찍고 판독 후 내일 아침 이야기합시다.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이라... 에효..." 내가 쉴 한숨을 의사는 몇 번이고 대신 뱉었다.
진료실을 나와 화장실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 대한 믿음이 와장창 깨졌다. 주변에서 손가락 하나 아픈 거 금방 나을 거야. 재활 그거 뭐 얼마나 아프겠어?라는 반응에 마음 놓고 아프다는 말도 못 했다. '좋아지려면 무조건 참아야지.'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행동이었던가. 결국 병만 키워온 꼴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장 이번 주 아이의 현장학습과 남편의 해외 출장, 중요한 일정들이 머릿속에 꽉 들어찼다.
휴대전화를 두드리며 글을 쓴다. 고요히 우는 밤이다. 후회와 걱정 여기저기 얼룩을 만든다. 평온하게 흐르는 음악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간. 마취가 어려운 내가, 무통 주사에 알레르기가 있는 내가 과연 수술을 잘 마치고 5주 후 깁스를 풀 수 있을까. 통증은 올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