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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Nov 01. 2020

아무래도 이사를 가야겠다

층간소음 최전선에서...

https://brunch.co.kr/@uriol9l/96


두 달 전, 층간소음 빌런이었던 옆집이 이사를 갔다. '비록 앞으로 이사 올 분들이 어떤 분들 일지는 모르지만 그 전보다는 나으리라.' 비어있는 옆집 현관문을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사 후 며칠 뒤 시작된 인테리어 공사가 빨리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이사를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다음에 오는 분들은 괜찮을 거야. 먼저 친절하게 인사도 하고 그래야지.'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터졌다.

옆집이 이사를 가고 윗집에 사시던 분들도 이사를 가셨다. 은퇴 후 손주들이 올 때만 쿵쿵 거리는 작은 소음이 있었을 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아이에게 인자하게 웃어주셨던 노부부셨다. 갑자기 옆집과 윗집이 이사를 가다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기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뒷동에 사시는 할머니 댁에서 낮시간을 보냈다. 아파트 라인 앞에 나와있는 욕조와 변기를 보면서 욕실 공사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듯했다.


저녁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갔을 때였다.

-똑. 똑. 똑-

'응? 이게 뭐지?' 내 정수리 위로 2초에 한 방울씩 일정하게 물이 뚝뚝 떨어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바로 연락을 취했다.


-윗집에 화장실 공사를 잘못했나 봐요. 집으로 물이 떨어져요ㅠㅠ-

-알았어요. 내가 퇴근해서 위층에 올라갈게. 바가지 올려놔요. 얼마나 떨어졌나 보게-


아침이 되어 남편이 윗집에 올라가 이야기를 하니 확인차 내려오셨다. 50대 중반에 검게 그을린 얼굴, 깊게 파인 눈썹 사이 찌푸린 인상, 투박한 손과 말투의 남성분이셨다.

"오메~ 물이 떨어지네. 이거 그냥 두면 마를 거요."

듣고 있던 남편이 다시 공사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인상을 쓰면서 말하자 그제야 아저씨는 천정 플라스틱을 열고 흥건하게 차있는 물을 닦아냈다. 임시방편으로 대아를 놔두었다.

"얼마나 떨어지나 일단 지켜봅시다. 어디서 문제인지 봐야 되니까 자주 내려와 확인할라니까..."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며칠 동안 하루에 3~4번 아저씨는 떨어진 물의 양을 확인하려고 오르락내리락하셨다. 오실 때마다 툴툴거리셔서 조금 무서웠지만 결국에는 새로 공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욕실 천장에 대아는 회수되었다. '그래 공사 마무리가 되었으니 이제 괜찮을 거야.' 우리 부부는 별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사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고 윗집은 이사를 왔다. 대학생 아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나는 인사를 나누면서 어린아이들이 없으니 쿵쿵거리는 소음도 없을 것 같아 더욱 안심이 되었다.


윗집이 이사온지 며칠이 지났을까?

- 우당탕탕 탕... 이런 XXX 같은... 죽어 죽으라고 -

저녁 12시. 아이를 재우고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들리는 소리였다.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어떤 물건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 뒤를 이어 굵은 남자 목소리에는 '공기반 소리반'이 아닌 '괴성반 욕반'이 따라왔다. 꽝 닫히는 방 문소리, 방문을 주먹으로 발로 때리는 소리, '그만 하라고'말하는 젊은 남자의 소리. 잠시 후 문이 다시 열리며 입에 담지도 못할 욕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대박- 부부싸움인지 아니면 딸과 아빠의 싸움인지 너무 많은 괴성이 섞여있어 머리가 어지러웠다. 괴성을 지르며 욕하는 여자가 엄마와 딸 두 사람이라는 걸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의 3일에 한 번꼴로 12시에서 3시 사이에 싸움은 계속되었으니까...


어찌해야 될지 몰라 난감했다.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나서 9시 뉴스에 보도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싸움의 정도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현관문을 열지 않았다. 관리실에 이야기하거나 경찰서에 신고를 할 만도 한데 아파트 라인 이웃들은 오히려 침묵했다. 그들이 싸우는 동안 층간 싸움에 대해 폰으로 찾아보았지만 경찰을 불러도 그뿐 소용이 없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이게 아닌데... 옆집 이사 갔다고 좋아했더니... 결국 이사가 답인가?' 남편과 심각하게 "이사"에 대해 고민 중이다. 윗집에 쪽지를 붙인다고 한들 딱히 이웃들을 배려해 주실 것 같지는 않다. '단순히 몇 번 하고 마는 부부싸움이 아니라 매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행해진 싸움일 것이다'라는 느낌적 느낌이랄까? 한번 싸우면 1시간에 2시간은 기본. 이 가족들의 삶이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ㅠㅠ 이사를 가는 곳에 또 층간소음 빌런이 있으면 어쩌죠? 최상층이 답인 가요.'

하루하루 나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비어있던 옆집이 이사를 왔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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