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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Nov 01. 2020

"양 치는 소녀와 양 떼"  

장 프랑수아 밀레

장 프랑스와 밀레를 생각하면 "만종"과 "이삭 줍는 여인들"을 먼저 떠올린다. 10대 때부터 모네, 샤갈, 르누아르, 고흐, 위트릴로, 밀레 등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을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먼저 책을 통해 만났었다. 그들의 생애보다 아름다운 그림에 포옥 빠져 언젠가 그 책에 나와있는 그림들을 실제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곤 했다. 농부를 그리는 화가 밀레의 두 작품만 보았을 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밀레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된 것은 결혼 후  미술사 강의를 통해서였다. 강의를 듣는 동안 밀레가 그가 그렸던 여러 점의 그림들을 빔프로젝터를 통해 감상할 수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바로 "양치는 소녀와 양 떼"이다.  


밀레의 딸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앳된 소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더 많은 것들이 그림 속 상황을 전달해 준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에 얼마나 넓은 목초지인지 상상할 수 있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양들이 어디라도 갈까 봐 충실한 개는 곁에서 지켜본다. 그러든지 말든지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을 뿐이다. 따뜻한 양털 망토를 두르고 빨간 모자를 쓴 소녀는 뜨개질을 하며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본다. 대지에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것일까? 그림 앞쪽에 피어난 작은 꽃들이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있는 걸 보면 밀레가 얼마나 세밀하게 주변을 관찰했는지 알 수 있다. 평온하고 아득한 이 그림을 보면 들판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많은 화가들이 자연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인물이 볼품 없어지고, 반대로 사람을 중심으로 그리면 자연이 막연한 배경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밀레는 '자연과 사람을 완벽하게 조화시켜  아름답게 그린 유일한 화가' 였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양치는 소녀와 양 떼" 이 그림 역시 배경과 인물이 어우러진 훌륭한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밀레의 대표작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밀레의 아름다운 작품들에 가슴이 떨려왔지만 그의 생애를 들으면서 더욱 이 화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그에 빌 이란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농부 일을 했던 밀레. 미술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그였지만 죽는 날까지 책을 한시도 놓아본 적이 없는 "뇌섹남 이자 매력남"이었다. 처음 그림을 그린 것도 책을 읽고 상상한 이미지였다고 하니 그에게 책은 상상력에 불을 지핀 도화선이 없음에 분명했으리라. 


성인이 되어 부인과 자녀, 그리고 동생 가족까지 20명이 되는 대가족을 홀로 부양했던 밀레는 너무 늦게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였다.  50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지만 한 번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운 화가.  절망하고 좌절할 수 있었던 그 상황에서도 그를  사랑했던 가족들과 절친한 친구 덕분에 행복한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 밀레의 벗이자 든든한 조력자였던 루소와의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밀레가 가난했음에도 만국박람회라는 곳에서 "접목하는 농부"라는 그림을 출품했다. 그 그림은 지금 돈으로 5천만 원 정도에 팔렸는데  그의 생애 가장 비싼 금액으로 팔렸다. 그림을 구입한 사람은  미국의 사업가였는데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이 당시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던 밀레는 그가 너무나도 고마웠던 나머지 꼭 만나 감사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끝내 만날 수가 없었다.


밀레가 그 그림에 대해 잊어버릴 만큼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친구 루소의 집에 초대를 받아 차를 마시게 된다.  루소가 잠시 자리를 비운 그 사이 밀레는 싸~한  느낌에 친구 침실 방을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그린 그림 중 가장 비싼 값을 받았던  “접목하는 농부”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 돌아온 루소는 오히려 벗에게 "오해하지 말게. 자네의 작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꼭 소장하고 싶었는데 기분 나빠할까 봐 어쩔 수 없이 그런 루트로 구입한 거네"라고 친구를 달랬다. 가난의 늪을 허우적거리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루소는 남의 이름을 빌려 밀레의 그림을 구입한 것이다. 친구의 그 호의와 배려가 밀레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이런 벗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밀레는 참 복 받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한 이야기였다.


그 후에 죽는 날까지 루소는 자신의 그림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제 그림을 보기 전에 200미터 떨어진 곳에 가면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밀레라는 작품을 먼저 보십시오. 지금은 빛을 보지 못했으나 후에 꼭 사면 나중에 도움이 될 겁니다.”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밀레 작품을 선보였다.                                                


항상 밀레에게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줬던 루소는 밀레가 성공하기 전 사망하는 바람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밀레의 안타까운 심정이 그의 마지막 작품에서 묻어난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 폐렴으로 손이 떨리는 와중에 마지막 유작을 자기가 평생 농부만 그렸던 그 화풍을 모두 던지고 사랑하는 벗이었던 루소의 화풍으로 남긴 것이다.  (위에 그림을 보면 그 점을 더욱 잘 알 수 있는데 전혀 밀레의 화풍을 찾아볼 수 없다. 루소가 자연주의로 그림을 그렸듯 밀레 역시 화풍에 옮긴 걸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우정인가... 밀레는"죽은 후에도 루소 곁에 잠들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지금도 나란히 프랑스 바르비종에 그들은 잠들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표현하고 살고 싶어 한다. 글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춤이든 어떤 무엇인가를 통해 살아있음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며 삶을 살아간다. 밀레는 평생 가난을 안고 살았지만 씨를 뿌리면 거두는 때가 분명 올 거라는 믿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소신대로 산 남자였다. 그가 그린 그림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도 그 믿음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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