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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16. 2024

꿈을 완벽하게 포기하고 남은 것.

굵은 가지가 잘렸을 뿐이다.

손가락 인대 수술과 재활을 하는 동안 운동을 쉬었다.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오늘로 20일. 아이를 등교시키고 길 위에 섰다. 질끈 묶은 하얀 운동화 끈이 눈앞에서 나비의 날개처럼 팔랑거렸다. 가로수 사이를 비집고 나온 볕이 어깨에 닿을 때마다 흩어진 생각들은 점점 또렷해졌다. 손가락, 재활, 통증, 재수술.... 그리고 "꿈"과 같은 단어가 꼬리표처럼 뒤따랐다. 속력을 높일수록 맹렬히 따라오는 그림자에 숨이 가빠지고 심장은 요동쳤다. 시선은 자꾸 정면이 아닌 땅에 꽂혔다.




지난달까지 매주 4~5일 다녔던 재활을 주 3일로 줄였다. 충실하게 병원을 다니면 좋아지겠지. 조금씩 굽혀질 거야. 그런데 웬걸. 자꾸 새끼손가락은 반대로 휘어갔다. 도대체 인대가 어떻게 붙은 걸까? 왜 손가락이 하늘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수술을 받은 지 6개월이 되는 날,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후유 장해, 국가 장애를 신청하기 위한 서류를 받기 위해서였다. 초진 기록, 재진 기록, 경과기록, 수술 & 간호 기록지, 영상 판독 cd, 그리고 2차 수술을 하는 이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 혼자 듣는 것보다 남편과 함께 듣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 판단했다.


"재활은 잘 받고 있지요?"

"네. 그런데 통증이 계속 있어요. 재수술받으면 나아질까요?"

"음... 많이 굳어서 그래요. 그렇다고 재활을 멈추면 더 굳고 더 아프고 반복될 겁니다."

남편이 끼어들었다. "재수술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겁니까?"

"손가락 이쪽 끝에서부터 안쪽까지. 힘줄이랑 인대 다 풀어야 하는데 아마 1차 수술보다 더 힘들겠지. 지금 당장은 어렵고 수술 후 1년이 지나야 합니다."

"하면 정상적으로 돌아옵니까?"

"10%? 지금보다는 굽혀질 거요"


한숨이 마스크를 뚫고 나왔다. 10% 굽히기 위해 재수술을 받아야 하나. 담당 의사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던 다짐은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남편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덤덤하게 집에 도착해 혼자가 되었을 때,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지칠 때까지 펑펑 눈물을 쏟았다. 꾹꾹 눌러 참는 것보다 한바탕 울고 나니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이제 정말 내려놓아야 하는구나. 그만하자.'




내 인생에 수어는 특별한 의미였다. 20대에 소개로 만나 절친이 된 친구의 부모님은 청각장애인이셨다. 그분들과의 대화가 즐거워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단어들이 손에 익을수록 보람은 덤이었다. 기본적인 통역이 가능할 즈음 꿈을 잠시 내려두었다. 결혼과 육아가 꿈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틈틈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일부러 뉴스를 볼 때, 음소거를 하고 통역사의 손에 정신을 집중했다. 내게 수어를 가르쳤던 선배가 뉴스 통역을 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때를 기다리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룰 거라 굳게 믿었다.


이토록 작은 새끼손가락 하나가 내 꿈을 송두리째 앗아갈 줄은 단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재수술 후 생활에 불편함은 없더라도 통역을 하기엔 불가능한 영구 장해.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방법은 없다. 미련 없이 완벽하게 내 꿈을 대서양 저 한가운데로 내던져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걷다 보면 울적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어지럽게 사방에 널린 생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잠시 멈춰 송골송골 맺힌 땀을 마른 손등으로 닦아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단하게 뿌리내린 가로수가 양옆으로 버티고 서있었다. 밑동에서 기둥을 타고 올라가던 눈길이 하나의 흔적에서 멈췄다. 나무마다 가지를 잘라낸 자국을 드러냈다. 작고 동그란 모양부터 기둥과 비슷한 크기로 잘려 나이테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무까지 모양도 생김새도 개수도 각각 달랐다. 마치 꿈을 한순간에 잘라낸 나처럼 아파 보였다.


한때 기껏 아름답게 자란 나무 가지를 왜 자르는 걸까 의문을 가졌다. 가지를 치는 건 나무를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가지치기는 나무 전체를 균형 있게 자라도록 만들고 모든 부분에 햇빛과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수형을 맞추는 일이다. 병들거나 시든 가지를 잘라내어 다른 가지에 나쁜 영향이 가지 않도록 돕는다.


굵고 단단하게 뻗어가는 가지처럼 꿈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자랐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지가 단번에 잘렸을 때 속상하고 고통스러웠다. 다만 나무들을 눈에 담으며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뿌리내린 가족은 여전히 안전했고 내 원기둥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꿈을 완벽하게 포기했다. 곧게 자란 가로수에게 한 움큼 위로를 받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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