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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우 Dec 02. 2015

마케팅 전성시대, 타고난 마케터

포스터 붙였어?
몇 장 붙였어?
표 안 팔린다. 포스터는 붙였어?


불과 7~8년 전만 하더라도 공연 마케터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은 모두 포스터  붙이기였다.

한 달 공연을 한다 치면 포스터는 1만 장을 주문했다. 트럭으로 한차...

매일 공연 전 100~200장은 포스터를 붙이러 대학로의 구석구석까지 길을 나서는데 준비물은 포스터와 청테이프이다.

우선 포스터는 양쪽 끝을 가운데로 모아 하트 형태로 만들고, 포스터로 다시 감싼다.

이렇게 하면 포스터가 한 장씩 쏙쏙 잘 빠진다.(이른바 대학로 스타일이다)

청테이프는 잘게 찢어서 왼쪽 팔에 촘촘히 붙인다.

이로써 포스터를 붙이기 위한 준비는  완료되었다.

이제는 경쟁의 시간이다. 지금은 포스터 해방된 대학로지만

그때는 모든 공간이 포스터로 뒤덮여 있었다. 바닥부터  가로수까지...

누군가 앞서 포스터를 붙이면 뒤에서 덮으면서 따라오기 일쑤였기에 눈치작전이  어마어마했다.

그것뿐만이랴.. 실컷 붙이고 와서도 팀장이 왜 포스터가 안 보이냐고 닦달을 하기 때문에 관객보다는 팀장 눈치가 우선이기도 했다.

포스터 붙이기는 마케터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였으리라...




가끔 나에게 마케터 지망생이나 갓 마케팅을 시작한 사람들이

'마케터가 가져야 하는 자질'이 무엇인가 많이 묻는다.


앞서 말한 에피소드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종종 얘기해주던 단골 메뉴와 같은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 이불 킥을 할 만큼 부끄럽다.

(공연의 성패와 상관없이) 1만 장을 붙이는 끈기, 청 테이프에 왼 팔 피부가 뜯겨 나가도 멈추지 않는 열정,

남의 공연장 간판에도 붙일 수 대담함 등....

승리한 전투를 회상하는 노병처럼 흥분된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꼰대같이...

이것이 마케터의 자질이라면 여기에 더하여 청테이프를 자로 잰 듯이 자를 수 있는 눈썰미와 민첩함과 더불어 빈 공간을 어김없이 찾아내는 공간지각 능력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때는 정말 하얗게 불태웠지. 요즘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마케팅을 갓 시작했을 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나 또한 궁금했다.

이는 곧 마케터로서 자질을 확인해보기 위함도 있겠지만, 과연 내가 마케터로서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함이 컸다.


주위 선배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자기개발서를 뒤져보면 어김없이 몇 가지 단어(혹은 느낌의)로 점철되는데

열정, 노력, 도전, 분석력, 영업력, 서비스력 따위가 그것이다.

왠지 외향적일 것 같고 드러내야 할 것만 같은 마케팅의 그것과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사실 마케터의 자질이 아니라 '마케터' 대신 지구상의 어떠한 직군을 붙여두어도 이상하지 않다.

훗! 이제 마케팅을 할 준비가 끝났다구!


그러나 정말 마케터의 자질이라는 게 있나?

마치 칼뱅의 예정론처럼 '너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케터'라고 정해져 있지 않는 한, 애초에 마케터의 자질이라는 것이  있었나?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케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마케팅은 학문인가?"


경영학자가 연구소에 모여 마케팅 전략을 짠다거나

심리학자가 고객의 심리를 고찰하며 프로모션을 만든다던가

혹은, 국어학자가 멋들어진 카피 한 줄을 만들어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DNA 구조를 보니 소띠 남자는 모두 우리 고객이군!

그러나, 올해 매출도 간당간당한데 내년에는 2배의 매출을 만들어 내라는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전략 보고서나

떨어진 매출로 한 소리 듣고 온 팀장의 심기를 달래 줄 (돈 안 들고 금방 하는) 프로모션 계획

혹은, 페북에서 댓글로 난리 난 가당찮지도 않은 카피를 들이대며 지나가면서 한마디 하는 임원에게 보여줄 오글거리는 카피도 모두 지금 당신에게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시장에서의 경쟁, 변덕스러운 고객과의 경험들이 쌓여 일정한 프로세스가 발견되고

성공적이거나 제대로 실패한 사례들의 공통점을 정리한 것이 지금의 마케팅일 것이다.

즐거운 금요일 가족과 보내고 보고서는 월요일 9시에 보자구! 그럼 화이팅 <출처: 드라마 미생>

그런 의미에서 마케팅이란  학문이라기보다는


수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 그리고

(어쩌면 아주 우연함도 포함한) 성공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경험의 정리이다.


다만 오랜 시간을 거치며 학문으로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마케터의 자질로 돌아와서 현재의 마케팅을 경험의 소산물이라고 할 때,

그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마케터의 자질은


"끊임없는 시도"이다


 '너는 연애를 책으로 배웠냐?' 나는... 아니 연애초보가 책대로 했을 뿐인데 그녀는 나를 버렸다.

이론에 충실하면 될 줄 알았지만, 몇 권의 책으로 내가 만난 여자들을 일반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이미 그 책을 읽었다면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연애 경험으로 습득된 빵빵 터지는 필살 유머, 청청패션 따위는 씹어버리는 댄디한 옷차림 마치 레스토랑에서 삼시 세 끼를 해결하는 듯한 테이블 매너는 여자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비용을 지불했겠지만 경이로운 승률로 보답을 하게 된다. (짐작하겠지만 나는 결코 아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마케팅도 매한가지이다. 이론적으로 된다면 실패하는 마케팅이 어디 있으랴?

결국은  끊임없는 시도로 고객을 알아가고 그 고객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마케팅이 무엇인지 체득해야 한다.

그럼  끊임없는 시도만 하면 되나?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철학이 있는 마케터"이다.


철학은 고객 입장에서 말한다면 '차별성'이고,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혹은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은 이상적인 고객이며, 실행면에서 본다면 일관성이다.

(다만, 일관성과 시장 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괴리가 느껴지는, 전자가 우리 상품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심어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 방법적인 면에서 트렌드에 따라서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 것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변화무쌍한 경쟁자와 구분되어지고 변덕스러운 고객을 일편단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마케터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경쟁자를 따라 하다가 혹은 고객의 입맛대로 줏대 없이 움직이다가는 죽도 밥도 아닌 게 될 것은 뻔하다.

철학은 계획단계에서는 기준점이며, 실행단계에서는 방향이며, 종료단계에서는 판단 근거가 돼줄 것이다.

이렇게 쌓인 경험은 당신을 'OOO전문 마케터'라 불리기에 손색없게 해줄 것이다.

철학은 자고로 무슨 말인지 몰라야 맛이지. 나도 사실 잘...



 

강의 후 받은 수강생의 부정적인 피드백 중 가장 많은 것이 (물론 99% 긍정적인 피드백이었다..라고 쓰고 싶다)

 '당장 써먹을 마케팅 스킬을 왜 안 알려주는  건가요?'이다. 나도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당장 써먹게...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이른바 마케팅 스킬은 과거의 것이다. 과 마케팅의 성공사례가 현재에  활자화되어 나와 있는 것으로 이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미래의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는 현재 당신이 하고 있는 그것 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시도는 성공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마케터의 철학이 있는 메시지는 그 기회 때마다 빛을 발해 고객의 가슴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또 꼰대 짓을 했다. 그러나 적어도 마케터형 성격을 말하지 않은 것에 위안을 삼는다.

나는 소심한 a형이다. 가끔 A형이 부러울 만큼 소심하다. 그러나 수 많은 a형 고객을 위해서 a형의 자존심을 걸고 나의 철학을 고수하며 끊임없는 시도를 할 것이다.

그래도 a형은 필요 없어욧! <출처: 대한적십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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