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겄다 너는 좋겄다

아줌마. 명복을 빌어요.

by 김고양

빽가네 아줌마가 죽었다.

별생각 없이 내려간 고향이었다. 터미널로 태우러 오라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는데, 수화기 건너로 술 먹는 소리가 들렸다. 초저녁부터 술 퍼마신다고 짐짓 욕을 해대며 기다리자니 곧 엄마가 차를 몰고 왔다. 조수석에 아버지를 태운 채로. 나를 데리러 오는 거면 혼자와도 됐을 것인데 어인일로 같이 왔다 했더니만 빽가네 아줌마가 죽었단다. 오늘이 출상이었다고. 산일을 마치고 빽가 아저씨네 집에서 같이 있던 참이라고.


빽가 아저씨의 석은 '백'이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데, 아버지는 그를 '빽가'라고 불렀다. 나는 보고 배운 대로 행하는 착한 아이니 나한테는 '빽가 아저씨'다. 빽가 아저씨네 집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산 등성이에 있었는데, 들판에 있는 우리 집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사슴벌레 잡을 나무도 많았고, 노 저어 나갈 쪽배도 있었으니 어릴 적 놀러 가면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써 몇 날 며칠을 자고 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빽가네 아줌마는 땅콩 삶은 걸 내주었는데, 우리 집에선 땅콩을 볶아 먹고 자라면서 다른 집에 잘 놀러 가지 않게 되다 보니, 그게 내 인생 유일한 삶은 땅콩이다.


거실에 마련된 영정과 위패 앞에서 나는 아줌마의 성이 '황'인걸 난생처음 알았다. 시집오면 남편에 종속되는 삶은 우리네 어머니들에겐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오직 그녀를 남편의 성으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이런 나를 용서해주길.

아줌마는 우리 엄마와 한 살 터울이고, 남편들은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냈다. 하기야 그녀 모두 농사를 짓고, 술 좋아하는 남편과 남편보다도 훨 듬직한 아들 둘을 두었는데 할 이야기는 천지 태산이었을 것이다. 서로 농사지은 걸 바꿔먹고 품앗이도 해가며 친척보다도 가깝게 지내왔는데 그녀는 떠났고 엄마는 남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와 아버지가 '참 안됐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같은 뻔한 이야기를 할 뿐이었는데, 한참을 침묵하던 엄마가 말했다. 작년에 제주도를 갔다 와서 만원에 몇 개 주는 감귤 초코렛을 사다가 두개를 줬는데 아줌마가 그러더라고.


'너는 좋겄다. 너는 좋겄다. 제주도도 가보고 너는 좋겄다.'


면사무소에서 하는 댄스스포츠 다니는걸 그렇게 부러워하면서 그러더라고.


'너는 좋겄다. 춤도 배우고 너는 좋겄다. 나는 남편이 못 가게 하는데 너는 좋겄다.'


엄마는 아직도 우울하다 아니 미안하다. 초코렛을 줬던 게 자랑하는 게 되었던 걸까. 선물이라고 만원에 몇 개 하는 걸로 괜히 생색만 내서 맘을 아프게 했을까. 면사무소에 같이 가자고 했어야는데, 빽가가 아무리 뭐라 해도 내가 끌고 나왔어야 하는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는 스마트폰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