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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진영 Jun 03. 2021

기업의 이윤 vs IT 개발자들의 권익

ESG 경영과 피스컬 노트의 상장


요새 카카오나 넥슨에서 일하는 개발자들 (정확히는 개발 노동자들)이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거나, 사내에서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프로젝트에 면접을 봐서 합격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연봉의 75%만 받거나, 아니면 초과근무를 빈번하게 하는 일들이 많다고 뉴스에 나온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덩어리이고, 이 자본은 증식하는 것이 최종 목적인데, 그러다보니 그 자본이 탈을 쓰고 있는 기업에서 노동하는 이들을 착취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현상의 극단에서 70년대 전태일 선생님이 분신하는 그런 일까지 벌어지는데, 사실 이건 우리나라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영국이나 독일 같은 산업 선진화 국가에서는 이미 다 겪은 문제이다. 


직업환경의학을 하는 입장에서 이야기해보면,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를 무조건 그르다고 매도하는 것도 옳지 못하고,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자본의 탐욕을 찬양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사실 학회 학술대회에 경총에서 대표자가 와서 학회 전문가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입장을 방어하는 광경을 여러 번 보긴 했다.) 가장 좋은 것은 이 둘의 힘이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 자체가 사회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그 기업 성장의 과실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게 하는 것인데 (그 기업의 서비스가 사회의 상호작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게 정치인의 영역이다. 그래서 정치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모두 가지고 이런 식으로 판이 짜이게 유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다. 어차피 개별 정치인이나 일군의 비슷한 사상을 가진 정치인의 무리는 전체 그림을 보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에 국민 모두가 참여해서 정치판이 바른 결론을 도출하도록 상호작용을 늘리는 게 가장 좋다. 


하여튼 전반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IT 개발자들의 권익과 소프트웨어 회사 자본의 이익 중 어디에 손을 들어줘야 할까. 우선 예전에 구로의 등대라 불렸던 넷마블과 같이 극단적인 초과근무나 자살에 이르기까지 할 정도의 직장 괴롭힘은 사라져야 한다. 이건 기본적인 인권의 영역이라 더 논박할 여지가 없다. 근데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문제인 게, 사실 이런 극단적인 물리적 및 사회적 노동 여건을 모두 우리사회에서 추방하고 근절한다고 하면 상당히 많은 수의 기업들 (특히 영세 자본업체) 및 인기 없는 전통산업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이윤이 대폭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업 운영하는 게 더 이상 타산에 맞지 않아 파산할 수도 있고 사업을 철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 알면서도 눈 감아 주는 경우가 꽤, 아니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게 필자가 처음 전공의를 했던 2013년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만간 글을 하나 쓸 예정이다.) 당시만 해도 전공의 특별법 (88시간 법)이 없어서 많은 전공의가 주말도 없이 24시간 내내 일을 했다 (구체적인 일을 안 하더라도 원내에서 항상 대기상태였다). 잠도 아예 닭장 하나를 원내에 분양해주어서 닭들이 거기에 살면서 병원 전체를 돌아다니게 해줬다. 지금이야 이렇게 일을 시키면 당장 난리가 나겠지만, 당시에는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고발을 안하고, 고발을 해도 정부가 처리를 안하고, 그냥 그렇게 다들 일을 했다. 이걸 만약 한 개인이 문제 삼아서 만약 사회에서 공론화 시키려면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소규모 사업장을 돌아다니다보면, 온갖 유해인자에 노출되고 위험한 소규모 사업장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필자는 2017년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factory doctor로 1년을 일했는데 현대자동차 내부에는 그렇게 위험한 작업들은 없었고, 사실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굉장히 좋았다. 상당히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마 노동조합의 파워 때문이고, 또 우리사회에서 상당히 좋은 포지션을 잡고 있는 자본덩어리가 주는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과도한 처우를 받는다고 비판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그래서 필자가 오랫동안 생각한 것은 이렇게 물리적 또는 사회적 한계까지 근무해야 수익성이 맞춰지는 업종들은 사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이게 또 우리나라에서 퇴출시키면 해외 후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으로 그 사업이 이동하게 되는데, 결국 같은 피해를 그 곳에서 일으킨다. 그런데 그래도 퇴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술로 치면 선진국들은 르누아르나 마르셀 뒤샹 같은 거장이고, 이들이 취하는 행동이 훗날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이 따라오는 발자취가 되기 때문이다 (답설야중거 호란불수행). 사실 영구적으로 환경에 피해를 주는 사업들은 영원히 지구상에서 퇴출되는데 (대표적인 게 PFAS 라는 환경유해물질을 퇴출시키자는 스톡홀롬 협약, 최근의 탄소제로 운동), 해당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사업은 그냥 후진국으로 옮겨갈 뿐이다. 계속 후진국으로 밀려서 퇴출되다 보면 결국 인류의 역사에서 해당 작업이 사라지고, 다른 더 건강한 (노동자에게 그리고 사회구성원에게) 사업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싶다 (디젤 엔진이 사라지고 전기차 기술이 개발되는 것처럼). 


결론을 내리자면, 노동자를 한계 상황까지 일하게 해야 수익성이 유지되는 사업은 최소한 한국에서라도 퇴출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제 개발도상국이 보고 따라오는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을 운영하는 자본의 주인들은, 본인들의 자본 수익이 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유발하여 만드는 이윤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퇴출 밖에 퇴로가 없을 정도로 국가의 법이나 규제가 올라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ESG (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이 중요하다. 이런 국가 규제 리스크나 법률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고, 어떤 규제가 제정될 움직임이 보이면 해당 사업에서는 발을 떼는 그런 움직임이 중요하다. 그래야 사업주들은 자본수익을 지킬 수가 있고, 두산중공업과 같은 갑작스런 철퇴를 맞지 않는다. 그래서 피스컬 노트 같은 유니콘이 나스닥에 상장이 가능한 것이다. 이 부분의 리스크 (규제 리스크, 법률 리스크)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들 아니까 말이다.


블로그 글: 기업의 이윤 vs IT 개발자들의 권익: ESG경영과 피스컬 노트의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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