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냐작가냐 Aug 09. 2019

shit~ 임신이 이런 거였어?!!!

1. 미친 듯 널뛰는 호르몬의 노예

#내가 왜 임신을 한 거지?!  

임신 8주 차였던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물릴 수도 없고... 내가 왜 임신을 했지? '

동시에 당혹스러움이 밀려온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대체 왜!!!


나이 서른일곱 결혼 2년째. 병원 가서 배란일 받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가진 아이다. 갑자기 '덜컥' 하고 생긴 아이가 아니라는 거.

혹 임신은 숭고하다고만 배운 순진한 엄마냐고? 에이, 설마요~ 나이가 몇 개고 들은 얘기가 몇 갠데... 헬 육아는 물론이요, 산후 우울증 때문에 아이를 창밖으로 던지고 싶었다는 무서운 고백. 괴로운 임신 얘기도 많이 들었다. 숙취와 뱃멀미의 연속이요, 먹는 대로 토하고 블라블라 블라.. 하지만!!

그 누구도 갑.툭.튀어나오는 뾰족한 감정을 얘기해 준 사람은 없었다. 하여,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미쳤나? 못됐나? 왜 이러지? 나만 이런가?  


골백번 곱씹어봤자 아이고 의미 없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설명할 수 없는 게 태반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토록 원했던 임신을 무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이 격한 감정들이 꽤나 낯설다. '임신 초기엔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 변화가 심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설명할 수가 없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왕왕 생겨나니까.

 

#굿모닝?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눈을 뜨자마자 고역이다. 푹 잤는데도 개운하긴 커녕, 무기력함만 가득이다. 속은 울렁거리지, 몸은 축축 늘어지지... 기분이 한껏 가라앉아 바닥을 긁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기분이 아니라 맘을 다독다독..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서야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고작 대여섯 발자국 이건만, 그 길을 가기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씻는 것도 힘들고 지친다. 매일 감는 게 당연했던 머리는 이틀에 한 번만 감아도 양반이요;;

상쾌한 아침? 언제 적 얘긴지, 원... 충격적이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워낙 아침이 힘들고, 우울한 사람이었냐고?

전~~ 혀요. 곱씹어봐도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 나빴던 기억은 없다. 더 자고 싶고 피곤할 때야 많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가라앉진 않았다. 이별의 열병에 시달리던 이팔청춘, 나도 모르게 끙끙 소리 내며 앓던 그때도. 생애 최악의 시련을 겪고, 자괴감에 빠졌을 때 조차도 괴로워 온몸이 아팠을지언정, 이렇게까지 삶의 의욕을 놓아버린 적은 없었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하.. 이 상태로 어떻게 열 달을 살지? 이대로라면 너무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멘붕이 왔다. 맘의 준비...한다고 했는데, 이렇게나 빨리 현타가 올 줄이야ㅠ  


#트와이스 춤이 그렇게 슬펐나?;;;  

날씨가 맑으면 기분도 발랄해지기 마련이거늘, 이건 뭐 비 온 뒤에 구름 낀 날의 연속이다. 에브리데이가 아니라 에브리타임ㅋㅋ 그나마 일 할 때는 생각을 해야'만'하니까 훨씬 나은데, 퇴근만 하면 그렇게 축 늘어진 오징어가 될 수가 없다. 그럴 땐 군인들처럼 나 역시 상콤한 아이돌을 보며 입덧을 견뎌내고 있는 터. 특히 트와이스에게 감사할 뿐이다ㅋ


헌데, 하루는 3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고. 급기야 어떤 날은 트와이스 뮤비를 보다가 '울컥'해버렸다;;;; 이런 황당한 일이!!  프듀처럼 연습생들의 꿈과 고민이 담긴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저 방긋방긋 웃고 신나게 춤추는 뮤비에서 대체 어느 타이밍에? 뜬금없이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일상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갑자기 꼴도 보기 싫어졌어!

몹시 부끄럽지만 한 번은 누군가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회의를 한 적이 있다. 평소 사이가 나빴나? 전혀. 다른 팀에 비해 팀웍도 꽤 좋은 편이다. 그럼 그 사람에게 불만이 있었나? 그다지. 나름 만족스러운 파트너였다.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고, 이 정도면 같이 일하기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게다가 그 날, 마찰이 생겼다거나, 일이 틀어졌거나, 긴박한 상황에 처했던 것도 아니었다. 헌데 별안간 그 사람에게 화가 치밀더니, 꼴도 보기 싫어지는 게 아닌가!!  

이 무슨 초딩 감수성이요, 황당한 전개인지;;;;  뾰족한 감정을 숨기느라 평소보다 더 발랄한 톤으로 대화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한 시간이나 회의한 웃지 못할 이야기...;; 더더욱 웃긴 건, 그 뒤로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평정을 되찾았다. 그 순간엔 왜 꼴도 보기 싫었는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성보다 철저히 감성이 앞선 시기였던 것 같다. 일이 힘들다고 찡찡대는 후배를 이해는 못 하더라도(꼰대ㅠ) 그 친구가 왜 힘든지 같이 고민하거나, 하다못해 들어주기라도 했을 텐데... 그땐 그게 안 됐다. '취재원에 시달렸다,, 밤 잠 설쳤다'는 하소연에 뾰족하게 올라오는 칼날. 원래 우리 일이 그런데 뭘. 귀를 닫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생애 최악의 컨디션을 버텨내며 일하고 있으니까;;


# 내 유치한 감정을 실컷 비웃어라?

그 시기 감정은 파도를 꼭 닮았다. 휘몰아치듯 밀려왔다가 금세 사라지는... 문제는 한 번만 치는 게 아니라는 수시로 휘몰아쳐온다는 거.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울컥.. 친구 임신 소식에 또 울컥.. 평소보다 울컥거리는 빈도수가 급증해버려, 창피할 때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임신 기간에 느끼는 이 감정들은 빙산의 일각이요, 출산 뒤에는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올 터.

지금의 부끄럽고 못난 감정을 굳이 곱씹어보는 것도 나중을 위해서다. 모난 생각이고, 순간적인 감정이라는 걸 기억하려고. 그래야 훗날 더 크고 무시무시한 감정이 휘몰아쳐올 때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참고로 지금은 16주. 호르몬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뒤다. 살만해졌으니 글도 쓰고 생각도 하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뭘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씻는 것도 벅찼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위안의 말씀을 전한다면, 14주 차부터는 확실히  살만하다. 무엇보다 평정심을 되찾았고, 의욕이 다시 차올랐다. 착해진 게 아니라, 호르몬 덕분이다. 태반이 완성되어가는 이 시기 즈음 임신 호르몬 수치가 떨어져 입덧과 초기 증상들이 사라진다는 거. 물론 통상적일 뿐 사람마다 겪는 고통의 정도도, 시기도 다른 터. 나 역시 여전히 입덧 지옥에 갇혀있다. 여전히 몸도 축축 늘어지고, 신물이 올라와 입은 쓰고 목은 타들어가는 연속이고... 하아.. 할 말 차암 많지만 그건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나만 나쁜 엄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