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나는 문학, 아니 소설을 사랑한다. 어릴 때는 흥미 위주의 대중소설에 집착했다면, 지금은 하나밖에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깊이 있는 소설을 선호한다. 세상에 빛을 본 지 100년이 훌쩍 넘은 고전소설들을 읽을 때면 현대 사회에서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느끼고 놀라게 된다. 굳이 노벨문학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작가들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들이 남긴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전 인류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를 합쳐 10억 명 정도 되던 시절에 나온 대작가들은 수없이 많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일본 소설을 개척한 나쓰메 소세키 등 이름을 전부 기억하기도 힘들만한 작가들이 세계를 호령하고 있었다.
현재 전 세계의 인구가 '고전 소설'의 시기보다 7배 이상 불어난 지금, 대작가들의 수도 7배 정도 늘어나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하지만 소설 또한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발달과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되어 흥미 위주의 대중소설이 인기를 얻게 되고 순수한 예술로서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옛날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소위 말하는 '고전 소설'이었다면 현재는 대중의 입맛에 맞게 쓰이고 흥미 위주의 소설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이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들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작가들이 있다. 불과 몇 년 전 같은 날에 타계한 움베르토 에코와 하퍼 리가 남긴 작품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들은 누가 있을까. <토지>라는 대작을 수십 년 동안 집필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박경리를 비롯하여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그 이름을 알린 한강,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황석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작가들의 소설을 읽지 못했다. <토지>는 시간이 나면 읽을 수 있도록 전집을 구매한 상태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세계문학에 더 흥미를 가지곤 했다. 역마살이 낀 내 인생이라 문학 또한 세계를 떠돌며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것일까. 하지만 정말 우연히도 접한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통해 한국 문학 또한 세계 문학만큼 가치 있으며 재밌을 거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후 <현의 노래>와 <흑산>까지 읽으면서 한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순신, 우륵, 황사영, 정약전의 삶을 짧은 문장으로 담담하게 묘사하는 그만의 스타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렇지만 김훈 또한 소설을 집필하는 중간중간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필을 썼다. 한 작가의 소설을 여러 번 읽고 나면 그 작가의 생각과 삶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것이 애독자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풍경과 상처>,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쓰기> 같은 다른 수필 또한 흥미로워 보였지만, 국내 여행 또한 사랑해 마지않는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자전거 여행>이라는 수필이었다.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던 김훈의 여행기다. 걷는 것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기에 난 차마 하지 못 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전국 자전거 일주 이야기는 의외로 흥미로웠다. 물론 국토의 70%가 산지인 대한민국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오르막길을 오를 때 감내해야 할 고통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 요인일 것이다. 자전거가 갑자기 고장 났을 때의 경험과 국도를 자동차들과 함께 사용하면서 느끼는 위험 또한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므로 빠져 있다. <자전거 여행>은 제목과 달리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수십 년 전 대한민국의 생활, 변하지 않는 우리 국민들의 정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살고 있는 곳이 고양 일산인 김훈 작가답게 이야기의 반 정도를 경기도가 차지하고 있다. 한강을 따라 동에서 서로 가면 김포가 나오고, 휴전선 역할을 하는 임진강 너머로 한 발짝만 넘어가면 북한 땅이 나온다. 급속한 산업화로 몇천 년 동안 유지되던 한강의 모습이 한순간에 바뀌고, 비옥한 땅이었던 일산의 평야가 고층 빌딩 숲으로 바뀌면서 느끼는 작가의 심정 또한 와 닿았다. 겸재 정선은 일만이천봉의 금강산을 좋아했지만 한강의 그윽한 풍경 또한 사랑해마지 않았다. 겸재의 작품이 오늘날 더 소중해진 건 옛 한강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새 보물 납시었네> 전에서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겸재 정선의 작품들이 보물로 지정되어 옛 한강의 경치를 보고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던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한강과 함께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건 대한민국의 수많은 갯벌이다. 간척하여 땅을 넓히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을 때 사라진 김포 전류리 포구, 만경강 하구 갯벌, 남양만 갯벌은 다양한 수자원의 보고일 뿐 아니라 철새들의 낙원이었다. 오랫동안 경상도에서 살아온 나에게 익숙한 건 끝이 없는 동해 바다와 섬으로 뒤덮인 남해 바다였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가본 서해의 바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충남 태안의 바다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백 미터가 넘게 차이가 나는 해변의 크기와 물에 잠겼다 떠오르는 할미할아비바위는 자연의 힘이 얼마나 엄청난 지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런 현상을 만들어주는 조석 현상은 서해의 수많은 갯벌들이 형성되고 유지되게 만드는 원인이다. 하지만 김훈 작가가 책에서 20년 전에 사라지는 갯벌을 묘사한 이후에도 수많은 갯벌이 발자취를 감추었다.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어 엄청난 양의 갯벌이 죽음의 땅으로 변했으며, 육지뿐 아니라 섬 곳곳에도 방조제를 만들어 땅 넓히기에 열심이다.
"갯벌은 막는 자의 것이다. 공유수면은 사유토지로 바뀌어간다. 서산 간척지는 현대그룹의 땅이고 인천 간척지는 동아그룹의 땅이다."
"산 것들은 모두 물 흐르는 쪽으로 몰려갔고 오래된 갯가 마을들은 내륙 속에 고립되었다."
한순간에 물길이 막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보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의 편리함 속에서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나 또한 이 죄악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발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대한민국의 금수강산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 외에도 김훈 작가는 우리 선조들이 이룩한 위대함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여주 고달사 옛터, 쌍계사・선암사・부석사와 같은 불교유적, 도산서원・담양의 정자들과 같은 유교의 선비문화, 근대로 넘어가고자 했던 실학 사상가들의 결실인 수원화성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의 향연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국사나 해인사를 꼽을 것이다. 신라 건축의 걸작인 불국사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이 있는 해인사는 가히 한국 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훈 작가가 가장 사랑한 절은 아마도 부석사가 아닐까 싶다.
"이 땅은 신령스럽고 산이 수려하여 참으로 법륜을 굴릴 만한 곳이다. 화엄은 이처럼 선하고 복 받은 땅이 아니면 융성할 수가 없다."
"부석사의 공간구조는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점차 확대되고 상승하는 서방정토의 모사를 보여주고 있다."
부석사 또한 고려 시대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무량수전으로 대표되는 절이지만, 무량수전 곁에 서서 그 풍경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부석사의 진정한 멋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한다.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계단에 오르는 순간 사람들은 속세에서 벗어나 의상 대사가 구현한 불국토로 진입하게 된다. 일주문・범종루・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까지 다다른 순간 뒤를 돌아보면 소백산의 능선과 어우러지는 화엄 강산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해인사의 장경판전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 부석사 무량수전에 올랐을 때의 감동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애써 만든 걸작이 부처님의 가르침보다 못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엄 강산의 모든 수목들 속에서 부처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강물이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버리면서 거느리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나간다. ...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새롭다."
행동과 경험은 말이나 글보다 언제나 앞선다. 개발 서적 아무리 읽어봐야 한 줄 코딩하는 것보다 못한 것처럼, <자전거 여행>을 읽는 것 또한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보다 못하다. 김훈 작가 또한 자신이 남긴 수필인 <자전거 여행>보다 그가 자전거를 타며 국토를 돌아본 경험을 더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 경험조차 없었다면 애초에 <자전거 여행>이라는 작품 또한 세상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토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면 자전거를 타고 집 밖으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는 한국과 눈으로 직접 보며 온 몸으로 느끼는 한국이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