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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Jan 22. 2021

삶이 고이는 방 호수

호수 찾아 헤매는 고된 20대 이야기

언제 어디서 이 책을 샀을까.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서울의 어떤 독립서점에서 구입한 건 기억이 나는데 들린 독립서점이 다섯 군데가 넘는 터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독립서점을 들리면서 찍은 사진을 뒤져보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엔 너무 귀찮다. 어쨌든 <삶이 고이는 방 호수>를 읽은 건 구매한 뒤 1년이 거의 다 되어서였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때 마스크를 끼고 어느 독립서점을 돌아다니다 산 거 같은데 왜 샀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독립서점에 간 만큼 시중 대형서점에서 구입하기 힘든 책을 골랐던 것만 어렴풋이 뇌리를 스쳐갈 뿐이다.

띠지에 적혀 있는 "어디로 가야 하죠 1인 가구?"라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20대 청년이 집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다. 수없이 집을 찾아 헤맨 글쓴이와 달리 대학교・대학원 시절에는 기숙사, 전 직장에서는 회사 사택에서 살아온 나는 집을 찾은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다. 30대가 되어서야 발품을 팔아 처음으로 집을 구했던 것이다. 집을 구할 때 고려한 첫 번째 조건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사까지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범위를 정해놓고 나니 자연스럽게도 전세나 월세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이 되었다. 이매역과 모란역에 있는 집을 둘러봤는데 모란역 주변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오피스텔이 맘에 들었다. 깔끔하기도 하고 모든 가전제품이 갖춰져 있으며, 주방은 공용이라 청소할 공간이 줄어드는 것까지 전부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월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전세 계약이 아닌가!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된 초기에는 큰 불편 없이 살았다. 새로 가구나 가전제품을 구입할 필요도 없었다. 책상도 있었기에 의자만 사면 언제든지 일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주말이면 밖에 나가 하루 종일 있다 들어오는 나였기에 집은 그저 잠을 잘 공간에 불과했다. 집이 점점 불편해지는 걸 느낀 건 여행이나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쌓이는 짐이 늘어날 때였다. 혼자 사는 협소한 공간에 잡다한 물건들과 책이 쌓여가기 시작하자 놓을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창원으로 내려갈 때 짐을 많이 들고 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빈도는 많지 않았다. 책을 택배로 보내려니 택배 기사분에게 죄송한 마음도 들어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어느새 침실과 서재가 분리되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이 내 꿈이 되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렵고 재택근무를 하는 요즘에는 더 넓고 쾌적한 공간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게 되었다.

서울은 각 동네마다 골목의 특색이 달라 좋다

<삶이 고이는 방 호수>는 이 시대 더 좋은 집을 찾아 방황하는 대부분의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쪼달리는 돈의 현실 앞에서 몸 하나 들어가기 힘든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것부터 시작해 친구와 거실을 갖춘 투룸에서 살 때까지 청년들이라면 한 번쯤 해봤음직한 이야기들이 책을 펼치면 쏟아진다. 휴학을 할 때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살다가 홍대 근처 원룸텔로 옮긴 저자는 햇빛의 중요성과 방음으로 생기는 불편함, 공용 공간을 사용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불만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룸에서 살아본 이라면 쉽게 공감을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다. 독립을 한 번 경험해 본 뒤 글쓴이는 가족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이 싫어 대구로 귀향하고 난 뒤에도 학교 주변에 원룸을 구했다. 서울과는 달리 저렴한 가격에도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음에 놀랐다. 포도 농사를 짓는 주인 할머니의 따뜻함 또한 대구 생활의 매력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거리

대부분의 지방 출신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글쓴이도 직장 때문에 졸업 후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다시 시작한 공동생활 와중에도 서대문구 원룸 생활은 나름 만족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하늘공원이 인접해 산책을 즐기기 쉽고 매력 있는 카페가 즐비한 동네는 외로운 타지 생활에 한 줌의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 친구와 투룸 생활을 하면서 가구를 고르고 집을 꾸미는 등 집 다운 집에서 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같이 살았던 친구를 좀 더 이해하지 못하고 이사 나올 때 크게 다투는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며 생길 수밖에 없는 고충도 토로한다.


부록으로 '1인 가구 도시 이방인의 다음 이사는 어디로 갈까'가 첨부되어 있다. 서울의 살만한 동네를 직접 걸어보고 느낀 감상에 대한 이야기다. 연희동・성산동・부암동・상도동・후암동・응암동・자양동・앙평동이 그 주인공들이다. 마을 공동체나 도서관의 유무, 산책이나 미술관을 즐길 수 있는 윤택함, 평균적인 비용, 여자가 혼자 살아가기에 안전한 지 여부 등 다양한 방면으로 각 동네를 검토하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서울의 문화시설, 국립중앙박물관!

이야기는 그렇게 길지 않아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원룸 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점도 많았다. 하지만 '살 집을 고르는 데 이렇게 많은 것을 고려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놀라움이 더 컸던 것 같다. 나 또한 산책이나 미술관을 좋아하긴 하지만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수도권에 사는 이상 굳이 가까워야 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내 도착할 수만 있다면 주말에도 그런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별의 차이도 클 것이다. 노숙자들도 많고 유흥가가 많은 모란역은 글쓴이가 한 바퀴 돌아봤다면 '안전'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고 탈락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은 다양하고 집을 보는 기준 또한 가지각색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어디든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맘대로 살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20대・30대 청년들은 제한된 후보군에서 기준을 만족시키는 집을 찾아나가야 한다. 100% 만족할 수 있는 곳은 없지만 최대한 괜찮은 곳을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이 고이는 방 호수>는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닌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집을 인식하게 된 요즈음의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나는 언제쯤 침실과 서재가 분리된 넓은 공간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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