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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Mar 14. 2021

2년 8개월 28일 밤

타고난 이야기꾼 살만 루슈디식 천일야화

살만 루슈디를 다시 만나다

살만 루슈디를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엔 수험생 신분이라 여가 시간에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없었기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중 그나마 도움이 되는 취미생활은 독서였다. 수험생들은 좋든 싫든 대학 수학능력시험 언어능력을 치러야 하므로 남는 시간에 다양한 소설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책을 읽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서점을 찬찬히 둘러보며 흥미로운 책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당시 내 영혼에 악마가 들어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베스트셀러에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악마의 시>라는 책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책의 줄거리는 제쳐두고 작가의 약력을 보니 이 소설을 썼다는 것만으로 작가의 목에 현상금 300만 달러가 걸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도대체 어떤 소설을 썼길래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었을까. 멋도 모른 채 두 권으로 된 <악마의 시>를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악마의 시>

하지만 일개 고등학생이 <악마의 시>를 쉽게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악마의 시>는 특이한 구성으로 쓰여 있으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묘사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악마의 시>가 문제가 되었던 건 이슬람교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희화화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악마의 시>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의 대립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에서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고등학생이 교과서에 적힌 일부 지식만 반복 학습하는 상황에서 세상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거시적인 시야를 가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중학생 때 9・11 테러라는 있어서는 안 될 끔찍한 사건이 터졌음에도 종교 때문에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건 대학생이 되고도 한참 뒤였다.

<악마의 시>의 저자 살만 루슈디

그렇게 <악마의 시>를 책장에 꽂아두고 잊은 지 어느덧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학교까지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쉬던 도중 사놓고 안 읽은 책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훑어보았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악마의 시>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읽기 힘든 책이었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주인공들의 이름과 세상과 동떨어진 환상적인 분위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새로운 사건 등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슷하게 첫 삽을 뜨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장미의 이름>과 매우 유사하게도 한 번 이야기에 빠지면 다시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로 몰입감이 있는 소설이었다. 왜 이슬람 국가에서 살만 루슈디의 목에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인 이야기를 통해 이슬람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조차 신성모독이 되기 때문이었다.

소전서림은 건축학적으로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2년 8개월 28일 밤>을 만나게 된 건 청담에 있는 '소전서림'에 갔을 때였다. 반나절 입장료가 3만원, 종일 입장료가 5만원에 육박하는 '소전서림'에 가게 된 건 다양한 책을 하루 종일 읽을 수 있는 것 외에 건축학적으로도 흥미로운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소전서림'에 들어서자마자 "아, 나도 재력이 있다면 이런 공간을 만들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전서림'은 도서관만큼 엄청난 양의 도서를 구비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야별로 나눠진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은 먼지가 쌓아 읽히지 않는 그런 도서가 아닌 최신 유행에 맞게 선별해진 책들이었다. 넓은 광장 외에 복도에도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좀 더 전문적인 서적은 계단을 타고 뒷공간을 통해 갈 수 있도록 설계한 건축 또한 흥미로웠다. '소전서림'에 있는 동안 세 권의 책을 선택하여 읽으려고 했으며, <2년 8개월 28일 밤> 또한 '소전서림'의 추천도서에 있기에 주저하지 않고 고르게 되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으로 고른 책들을 전부 읽지는 못 했기에, <2년 8개월 28일 밤>은 서점에서 직접 구매해 집으로 들고 와 읽기 시작했다.

소전서림 추천도서에서 찾은 <2년 8개월 28일 밤>
소전서림에는 재미있는 책들이 많다

<2년 8개월 28일 밤>을 세어보면 며칠인지 감이 오는가? 고전 소설을 좋아하는 눈치 빠른 독자들은 '2년 8개월 28일'이라는 시간이 '1000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살만 루슈디가 중동의 구전 문학들을 정리해 유럽에 소개한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에서 소재를 얻어 이야기를 만든 것이 바로 <2년 8개월 28일 밤>인 것이다. <천일 야화>가 세에라자드가 생사를 걸고 밤마다 왕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2년 8개월 28일 밤>은 <천일 야화>처럼 개별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된 소설은 아니다. 마족이 인간 세계에서 벌이는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는 건 맞지만, 이야기는 소설이 말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끝없이 진행된다.


<2년 8개월 28일 밤>의 줄거리

소설의 시작은 '이븐루시드'라는 철학자와 그를 사랑했던 마족인 '두니아'로부터 시작된다. '이븐루시드'는 이성・논리・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세 개의 기둥을 통해 '비이성'이라는 존재와 맞서 싸웠다. 그의 경쟁자인 투스의 '가잘리'는 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원인과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븐루시드'는 가잘리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 궁궐을 떠나 2년 8개월 28일동안 귀양을 가게 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마족인 '두니아'와 살며 수많은 마족 후손들을 탄생시켰다. 두니아의 후손들은 귓불이 없었으며, 팔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구에서 인간들과 함께 번창했다.


평화롭던 인간 세계에 변화가 생기게 된 건 정원사 '제로니모'의 발이 공중에 떠 있게 되면서였다. 그의 몸이 공중에 떠 있기 시작한 지 2년 8개월 28일 동안 인간 세계는 혼돈에 빠진다. '제로니모'는 인도 봄베이에서 가톨릭 성직자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제로니모'는 머나먼 뉴욕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가 정원사로 일하게 된다. 그 뒤 '찰스' 삼촌과 함께 봄베이로 돌아와 아버지인 '제리 신부를 만나 자신이 마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제로니모'는 '엘라 엘펜바인'과 결혼하여 살게 되지만 '엘라'는 그녀의 아버지처럼 벼락을 맞아 죽게 된다. '제로니모'는 이후 정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철학녀'라 불리는 알렉산드라의 정원을 돌보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제로니모'의 몸이 공중에 떠 있기 시작한 때 '철학녀'와 제로니모는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고 '알렉산드라'의 집사 '올드캐슬'은 이를 질투한다. '알렉산드라'의 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전 세계는 다양한 재난과 신비한 일로 인해 혼돈에 빠지게 된다.


'이븐루시드'와 '가잘리'는 무덤 속에서도 이성과 미신의 싸움에 대해서 토론한다. '가잘리'는 세계가 곧 멸망한다고 예측하면서 인간은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이븐루시드'는 혼란에 빠진 세계를 보며 연인이었던 '두니아'에게 자신들의 후손이 '하나님'과 맞서 싸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두니아'는 마족이었음에도 인간 세상에 오래 있었던 탓에 인격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녀는 인간 세계와 마족 세계의 틈새가 벌어졌을 때 옛 인연을 되찾기 위해 인간 세계로 돌아오게 되지만, 불행히도 다른 마족 또한 인간 세계로 침입하게 된다.


'지미 카푸르'는 만화가를 꿈꾸는 청년으로 '나트라지 히어로'라는 허구적인 인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만화가 인정받지는 못 하고 있던 어느 날, 웜홀을 통해 '나트라지 히어로'가 현세에 등장하게 된다. '나트라지 히어로'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흑마족이었으며, 그 흑마족이 두 번째 등장했을 때 '지미'는 웜홀에 자기 몸을 집어넣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틈새에 들어가 죽을 뻔한 그를 구해준 건 마족 혈통인 그의 머나먼 조상인 '두니아'였다. '두니아'는 그에게 '두니아자트'라 불리는 그녀의 후손을 찾아 마족에 대항해 연합하라고 말한다.


어느 날 뉴욕 시장인 '로사 패스트'의 집무실에 '스톰 베이비'라는 아기가 등장한다. 그 아기는 부도덕한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아기를 안은 사람이 부정부패를 저질랐다면 몸이 괴사해서 썩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영국 작곡가 '휴고 캐스터브리지'는 이를 우리 세계에 넌더리가 난 신이 내린 심판으로 보았다. 헤지펀드 갑부인 '세스 올드빌'은 부자를 낚는 탕녀인 '테리사 사카'와 불륜을 저지르다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테리사 사카'는 그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어느 날 번개를 사용해 그를 죽인다. '두니아'는 이처럼 테리사 사카, 지넨드라 카푸르, 베이비 스톰, 휴고 캐스터브리지와 같이 그녀의 후손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그동안 흑마족의 영향은 점차 강해져 '제로니모'는 지면에서 9센티미티나 떠 있게 되었다. '제로니모'가 사는 집의 주인은 '시스터'는 그를 쫓아내려 하지만 꼭대기층에 사는 '블루 야스민'이 이를 말린다. '루시아'는 그녀의 후손인 '제로니모'를 만나러 가지만 실수로 '블루 야스민'을 마주친다. 이때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연재해가 일어났으며, 흑마족의 우두머리인 '주무르드'와 그의 세 측근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전쟁의 시작을 알린다.


'주무르드 샤'는 오랫동안 푸른 병에 갇혀있었던 흑마신이었다. 그를 꺼내 준 건 다름 아닌 '가잘리'였으며,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가잘리'는 '주무르드'를 해방시키고도 소원을 말하지 않았다. '가잘리'는 생전에는 어떤 소원도 말하지 않다가 죽은 뒤에서야 '주무르드'에게 인간에게 두려움을 심어 달라는 소원을 말한다. 그는 '이븐루시드'가 세월이 흐르면 인간이 신앙을 버리고 이성 쪽으로 돌아서리라 확신하는 주장을 꺾기 위해 이러한 요구를 한 것이다. '주무르드'의 세 측근은 주술마 '자바르다스트', 미혹술의 '루비', 흡혈마 '라임'이었다. 흑마신인 이들은 인간 세계에서 다양한 사건들을 일으키며 '가잘리'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한다.


'두니아'는 마침내 '제로니모'를 만나게 되며 '이븐루시드' 이후 인간과 두 번째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마족의 세계에서 마왕과 흑마신은 서로 증오하는 사이며, 자신이 마왕인 샤흐팔의 딸 '아스만 페리'라고 밝힌다. '제로니모'는 '두니아'를 만나 다시 지면에 발을 딛게 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게 되면서 '제로니모'는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갈 곳이 없어진 '제로니모'는 '두니아'를 따라 마신들의 세계인 '페리스탄'에 가게 된다. '제로니모'는 페리스탄에 가자 기뻐하기는 커녕 '두니아'가 전 아내인 '엘라'로 둔갑해 자기를 매혹한 것을 깨닫고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때 밀정인 '오마르'가 마왕이 흑마족에 의해 중독되어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전한다.


'두니아'는 아버지에게 언어의 독을 선사한 찬합을 열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이라가이라'가 사는 마을에 독재자가 들어서면서 기능도 불분명한 기계를 만드는 이야기・존이라는 대장장이가 언어가 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 침묵병을 퍼뜨린 이야기 등이 찬합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나온다. '두니아'는 원래 '주무르드'를 비롯한 흑마족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마족이 철학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자바르다스트'의 말을 듣고 그들과 영원한 절교를 선언했다. 찬합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결말까지 가는 것이 하나도 없고 의미 없이 온통 부조리하게 흐르고 있었다. '두니아'와 '오마르'는 찬합에서 나오는 소리를 견디다 못해 쓰러지고 '제로니모'가 찬합을 하늘 높이 던져버림으로써 그들을 구하게 된다. 마왕은 생애 마지막 순간에 다시 눈을 뜨게 되고 '두니아'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개입하여 '가잘리'와 '이븐루시드'의 논쟁에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분을 참지 못하고 죽게 된다. '두니아'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싸우기로 다짐하고 '주무르드' 일행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두니아'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한 뒤, 인간 세계는 흑마족이 저지른 갖가지 주술로 인해 더욱더 황폐해져 갔다. '두니아'의 후손들은 본격적으로 흑마족들과 싸우기 시작했으며, '제로니모'도 인간 세계로 돌아와 공중에 떠 있는 '철학녀'와 '올리버'를 내려오게 하는 등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한다. '주무르드'는 '가잘리'로부터 인간을 두려움으로 이끌라는 가르침을 받게 된다. '두니아'도 '이븐루시드'를 만나게 되지만 사랑이 증오보다 강하다는 그의 말을 뒤로한 채 단지 지금은 따지기보다는 행동해야 될 때라며 작별인사를 전한다. 흑마신들은 자존심이 세고 화합하기 힘든 존재였다. '자바르다스트'는 전 세계를 사등분하자고 제안하였고, '주무르드'가 동양, '자바르다스트'가 서양, '라임'이 아프리카, '루비'가 남아메리카를 다스리게 되었다. 정복전쟁은 더욱더 치열해지게 되었고, '두니아'의 후손들은 마족의 힘을 발휘해 흑마족과 싸운다. '제로니모'는 공중에 떠 있는 사람들을 구하면서 '철학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니아'는 흑마족의 뒤를 쫓으며 발광마 '루비'와 흡혈마 '라임'을 죽였다. 이를 본 마계의 여마족들은 같은 마족을 죽이는 그녀의 잔혹함에 등을 돌리게 된다. '자바르다스트' 또한 두니아자트인 '휴고 캐스터브리지'를 먹으며 '두니아'를 찾지만, 이는 아버지를 중독시켰던 독약으로 '자바르다스트'를 처단하려는 그녀의 계획이었다. '주무르드'는 '두니아'에게 정식으로 마지막 결투를 제의하였고, '두니아'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정복전쟁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두 마족 모두 막상막하인 상태로 전투를 벌이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전세를 역전시킨 건 '철학녀'였다. 그녀는 '두니아'가 마지막에 외친 주문을 한마디도 잊지 않고 외워 '주무르드'를 파란 유리병에 가두었다. 전투가 끝난 뒤 상계와 하계를 잇는 웜홀은 닫히게 된다.


전투가 끝난 뒤, '두니아'는 자신을 바쳐 두 세계 사이의 틈새를 막았다. 흑마족들과 맞서 싸운 '테리사 자카'는 너희가 우리 세계를 유린했듯이 우리도 너희 세계를 작살내겠다고 말하며 마계로 들어가려 하지만 실패해 죽게 되었다. '지미 카푸르'는 그가 만든 '카트라지 히어로'처럼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제로니모 또한 이성・관용・너그러움・지식・절제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하는 <조화로움>을 집필해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성적인 존재, 인간

<2년 28개월 28일의 밤>은 마치 판타지 소설과 같은 줄거리지만, '살만 루슈디'가 <악마의 시>에서 반복해서 말한 주제와 이어져있다. <천일야화>가 셰에자라드가 꿈만 같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면, <2년 28개월 28일의 밤>은 천일 간의 정복전쟁을 통해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그렸다. '살만 루슈디'는 마족이 인간 세계에 들어와 온 세상을 어지럽힌 시간을 천일 동안의 짧은 시간으로 묘사한다. 즉, 신이라는 존재가 탄생해 인간들 사이의 온갖 갈등을 유발한 시간이 전체 인류의 역사로 보면 보잘것없는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은 국가가 탄생하고 국민을 통제하려는 군주들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소설에 나와있듯이 흑마족들이 지배자들을 조종해 두려움을 유발하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게 한 것처럼, 신 또한 단지 중앙 집권형 국가를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자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움을 갖게 되지 않은 사람들 간의 갈등은 점차 줄어들었으며 인류가 하나다라는 생각이 도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소설의 에필로그에 나온 문장은 <2년 28개월 28일의 밤>이 신이 사라짐으로써 인간이 마침내 이성적 존재가 되고 행복하게 되었다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두려움은 결국 사람들을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 했다.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고, 두려움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비로소 신을 폐기처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성적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갈등이야말로 오랫동안 인류를 규정하는 서사였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우리 사이의 차이점, 예컨대 인종, 지역, 언어, 관습 따위는 더 이상 우리를 갈라놓지 못한다. 오히려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사로잡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이 신을 폐기처분함으로써 세계가 평화로워졌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신'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비이성적인 사고의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 본연의 마음속에 자리한 갈등의 씨앗은 '신'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사람들을 가르는 요소는 종교가 아니라 '부(富)'다. '신'이라는 비이성적 존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종교가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를 줬던 건 '사랑'이라는 가치를 대부분의 종교에서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종교가 버려짐으로써 개인은 자신들의 부귀영화만 쫓게 되었으며 점점 더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은 소설에서 결론지은 행복을 느끼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욕심과 본능만을 쫓는 '마족'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신이 있었던 시대를 꿈으로 묘사한 <2년 8개월 28일의 밤>은 '살만 루슈디'의 사상과 상상력이 잘 녹아든 천재적인 작품이다. 소설의 첫 부분에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와 함께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라는 말이 왜 적혔는지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을 정도로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소설의 구성은 치밀하다.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철학자의 논쟁이 무의미하며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행복으로 나아갈 길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성적인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이성적인 것인가. 지도자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마저 이성에 대한 자각 없이 부정부패에 빠져드는 대한민국 사회는 바람직한 세계인가.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시피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과연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내지 못하는 내가 현재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자각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아 갈등의 불씨 하나를 지웠다고 여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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