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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Apr 13. 2021

빌러비드

흑인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작가 중심으로 소설을 찾다가 발견한 <빌러비드>

고전문학을 선택할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목록을 뒤지다가 이거다 싶은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일상이다. <빌러비드>도 마찬가지였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은 뒤 흑인이 직접 집필하고 묘사한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는 백인 여성이다.) 흑인들 또한 교육을 받는다면 백인들 못지 않은 재능을 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예상 또한 적중했다. '토니 모리슨'은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작가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빌러비드>를 비롯해 <자비>, <데스데모나>, <고향>,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등이 있다. <빌러비드>는 2006년 <뉴욕 타임스>가 조사한 1980년 이후 최고의 미국소설 1위에 선정되었고, 2008년 하버드대 학생이 가장 많이 구입한 책 2위에 뽑혔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뽐내고 있는 작품답게 문학동네에서도 세계문학전집 10주년을 기념하여 다른 9편의 작품과 함께 <빌러비드>를 리커버 특별판으로 출간하였다.

<빌러비드>는 <톰아저씨의 오두막>과 주제는 비슷할 지 모르지만, 이야기의 시간적 순서가 시도 때도 없이 뒤바뀌어 이해하는 것이 힘들 때가 가끔 있다. 처음에는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빌러비드>는 책을 읽을수록 '토니 모리슨'의 특이하고 천재적인 이야기 전개에 감탄하게 되고,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의 인과 관계가 이해되면서 결과가 더욱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이 기독교에 헌신하며 백인들의 탄압을 사랑으로 승화한 흑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빌러비드>는 백인들의 잔혹함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던 흑인 노예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에서 볼 수 있었던 맑고 고결한 사랑의 정신을 <빌러비드>에서 기대하고 읽으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빌러비드>는 단지 노예 생활이 고통스러울 거라는 관념만 가지고 있던 우리에게 실제 일어났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사건의 실체를 맞딱뜨린 독자들은 <톰아저씨의 오두막>과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과거 흑인들이 받았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빌러비드>의 줄거리

<빌러비드>의 이야기는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124번지에서 시작된다. 할머니인 베이비 석스는 이미 세상을 떠나 1873년에 이르자 며느리인 세서와 그녀의 딸인 덴버만이 그 집에 남아있었다. 세서의 두 아들인 하워드와 뷰글러는 열세살이 되던 해에 집에서 도망쳐나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124번지에는 원한을 품은 유령이 가족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집에 변화가 생긴건 과거 켄터키에서 노예생활을 함께 했던 폴 디가 찾아왔을 때였다. 세서와 함께 있던 남자 노예들은 폴 디 가너, 폴 에프 가너, 폴 에이 가너, 핼리 석스와 야생아 식소였다. 세서는 일년을 기다리다 배우자로 핼리 석스를 선택했다. 세서는 18년만에 찾아온 폴 디에게 백인들이 자기를 채찍질한 흔적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 와중에 오랜 세월 세서 가족을 괴롭힌 유령이 행패를 부리자 폴 디는 큰 소리를 질러 그 유령을 내쫓고 만다.


폴 디는 오랜만에 만난 세서와 함께 사는 길을 택한다. 덴버는 자기의 유일한 친구인 유령을 내쫓은 폴 디와 함께 사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세서는 딸에게 자기가 달아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다. 학교 선생과 남자애 둘이 그녀를 채찍질하고 백인 여자애가 그녀를 구해줬다는 사실 외에는. 폴 디가 찾아온 후 124번지에 사는 사람들은 서커스에 함께 가는 등 긍정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러던 와중 '빌러비드'라는 열하홉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애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다.


갈 곳 없어 보이는 '빌러비드'가 124번지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세서 가족의 삶에도 급격한 변화가 생긴다. 세서는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표식을 보고 어머니가 목매달려 죽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말한다. 폴 디는 정체 모를 '빌러비드'를 내쫓고 싶어했지만 세서와 덴버의 만류로 이를 이루지 못 한다. 세서는 폴 디와 이야기하던 중 남편인 핼리가 세서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정신이 나가 탈출하지 못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탈출을 시도한 다섯 남자 중 핼리는 정신이 나갔고, 폴 디 에프는 팔려가고, 석소는 불에 타 죽고, 폴 에이는 사라졌으며, 폴 디는 손이 묶인 채 재갈을 물었다.

노예주인 켄터키에서 오하이오강만 건너면 자유주에 속한 신시내티가 나온다

세서는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가 사는 신시내티 124번지로 탈출을 시도했다. 기력이 떨어져 사경을 헤맬 때 백인 여자애인 에이미가 그녀를 도와주었고, 오하이오 강을 건널 때 스탬프 페이드와 엘라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베이비 석스는 동네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며, 세서 또한 그녀와 함께 생활한 첫 이십팔일 동안 노예가 아닌 삶을 살 수 있었다.


폴 디는 탈출에 실패한 뒤 조지아 주 앨프리드 수용소에서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 다행히 비오는 날 수용소에서 탈출한 폴 디는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델라웨어로 도망칠 수 있었다. 델라웨어에서 만난 여인과 18개월을 산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삶을 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빌러비드가 한밤중에 폴 디가 살고 있는 오두막으로 찾아와 둘은 성교를 하게 되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 폴 디는 세서에게 이 사실을 전하려 하지만 거짓말을 하게 된다.

노예주인 켄터키와 자유주인 오하이오・인디애나와 경계가 되는 오하이오강

베이비 석스는 가너 씨가 살아있을 때 스위트홈에서 일했다. 가너 씨는 다른 농장주들과 다르게 흑인들이 돈을 받고 일을 하게 하였고, 몸값을 치르면 노예에서 해방될 수도 있었다. 베이비 석스는 아들인 핼리가 몇 년동안 노력해서 번 돈으로 마침내 자유인이 될 수 있었고, 신시내티에 살면서 이웃 흑인들을 감화시키는 삶을 살았다. 베이비 석스의 평화로운 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된 건 학교 선생, 조카 한 명, 노예 사냥꾼과 보안관 네 명이 124번지에 들이닥쳤을 때였다. 베이비 석스는 며느리가 온 것을 기념하여 마을의 모든 흑인을 초대해 호화로운 잔치를 열었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이웃들은 며느리를 잡으러 온 백인들을 보고도 피하라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세서는 학교 선생 (스위트홈의 주인)이 지척에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야 헛간으로 도망쳤으며, 다시 노예로 끌려가게 될 상황에 처하자 자식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학교 선생이 그들을 발견했을 때 사내애 둘은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딸 하나는 톱으로 목이 잘린 채 죽어있었고, 갓난아기가 엄마에 의해 막 벽으로 내동댕이쳐지기 직전이었다. 덴버는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막내 딸이었다.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몰랐던 폴 디에게 스탬프 페이드가 해당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를 보여준다. 폴 디는 신문기사의 주인공이 세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세서에게 해당 기사를 보여주며 사실여부를 판단하려고 한다. 세서는 이를 부인하지 않은 채 자식들을 스위트홈이 아닌 안전한 곳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 사실에 충격을 받은 폴 디는 124번지를 떠난다.


폴 디가 떠난 뒤 스탬프 페이드는 베이비 석스를 생각하며 124번지에 다시 찾아가려하지만 이를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 한다. 세서는 과거 생활을 회상하면서 가너 씨가 죽은 뒤 직책을 물려받은 학교 선생의 행동을 떠올린다. 학교 선생은 흑인 노예들을 보며 공책에 뭔가를 적고 있었는데, 세서는 무엇을 적고 있는지 알게 된 뒤 충격에 빠진다. 흑인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특성과 동물적인 특성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서는 빌러비드의 행동을 보며 빌러비드가 자신이 직접 톱으로 죽인 딸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죽은 딸의 비석을 세우기 위해 몸을 팔았던 석공의 작업실을 떠올리며 빌러비드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200년 전 흑인들은 오하이오 강을 현재보다 더 넓게 보았을 것이다

이야기는 또 과거로 흘러간다. 학교 선생의 횡포를 견디다 못 한 흑인들은 탈출 계획을 세우나 세서가 덜컥 임신을 하게 되며 곤경에 처한다. 냇물이 마르게 될 때를 계획 실행 시점으로 본 그들은 탈출 날짜가 되어서 냇가에 모이게 되지만 학교 선생을 비롯한 백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냇가에 온 식소와 폴 디는 사로잡히게 되고 미쳐버린 식소는 그 자리에서 불에 타 죽었다. 폴 디가 사로잡힌 직후 세서가 폴 디에게 자기도 탈출을 시도할 거라 말한 뒤 임신한 채로 백인들에 의해 강간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세서가 그 사실을 가너 부인에게 말하자 그 벌로 채찍질까지 받은 뒤 학교 선생을 비롯한 사내 아이들은 그녀가 탈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세서는 임신한 상태로 피투성이 몸을 이끌고 겨우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124번지의 세 여자는 폴 디가 떠난 뒤 처음에는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빌러비드가 세서 곁을 떠나지 않고 세서 또한 빌러비드의 요구에 맞춰 직장 생활을 게을리 하자 수입이 사라져 버렸다. 배고픔을 참지 못 한 덴버는 레이디 존스를 찾아가 음식을 얻기 시작했다. 세서는 톱질에 대한 보상을 하려 애썼고, 빌러비드는 그 보상을 받고 있었다. 덴버는 둘을 돌보기 위해 나가서 일하기로 결심하고, 보드윈 씨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덴버를 통해 이야기를 들은 서른 명의 여자들은 다 같이 124번지에 찾아온다. 악마처럼 환생한 빌러비드를 기도로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백인인 에드워드 보드윈씨도 이에 동참하려 집으로 찾아오자 눈이 뒤집힌 세서는 칼을 들고 그를 찌르려고 집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엘라의 제지로 참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폴 디가 세서를 위로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마거릿 가너 사건

마거릿 가너 사건을 묘사한 그림

1856년 1월, 켄터키 주의 노예였던 마거릿 가너는 <빌러비드>의 주인공 세서처럼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얼어붙은 오하이오 강을 건너 신시내티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삼촌이자 노예 출신인 조 카이트의 집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추격에 나선 노예 사냥꾼과 보안관들이 집을 포위해 끝내 붙잡힐 지경에 처하자, 그녀는 자식을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두 살배기 딸을 칼로 베어버리고 다른 자식들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한다. 이후에 마거릿 가너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보통 도망노예에 대한 재판이 단 하루면 끝나는 데 반해 이 재판은 이례적으로 길어졌는데, 그녀의 행동에 대한 인간적 이해나 연민 때문이 아니라, 마거릿 가너를 '사람'으로 인정하여 딸을 죽인 살인죄로 기소할 것인가, 아니면 1850년에 발효된 도망노예법에 따라 단순히 잃어버린 재산으로 취급하여 무죄방면할 것인가 하는 논쟁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지만 마거릿 가너의 변호사는 그녀를 살인죄로 재판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고, 가너 역시 자신의 행동을 그저 이성이 없는 노예의 미친 짓으로 여기고 관대하게 넘기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마거릿 가너는 한 명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재판받지 못하고 노예로 생을 마쳤다.


<빌러비드>가 전해주는 메시지

'마거릿 가너 사건'은 <빌러비드>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사건이지만, 토니 모리슨이 이 사건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기 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저자인 토니 모리슨 또한 1974년 랜덤하우스에서 일할 때 흑인 역사에 대한 책인 <블랙 북>을 편집하다가 이 사건을 접했다. 그녀가 단지 충격적인 이 사건에 집착해 흑인 노예 역사의 가혹한 참상만을 써내려갔다면 <빌러비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 했을 것이다. 토니 모리슨은 <빌러비드>를 통해 노예제를 겪은 흑인들의 내면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비록 그녀가 노예로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당시 아픔을 겪은 노예들의 상황에 대해 연구한 끝에 인류가 내세울 수 있을 하나의 걸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흑인들의 아픔을 내면에서부터 전해서였을까. 노예제의 참상은 <톰아저씨의 오두막>에서보다 <빌러비드>에서 더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잔혹한 주인 밑에서 일하면서도 숭고한 가치를 잃지 않는 톰 아저씨의 위대함보다 자식들을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일념 하에 살인자가 되어버린 세서가 더 인간적이기 때문일까. 이는 어쩌면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톰아저씨가 되는 것보다 세서가 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일 것이다. 세서는 자식이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누리지 못할 바에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흑인 또한 '재산'이 아닌 '인간'임을 보여주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


<빌러비드>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뿐 아니라 구성 또한 특이한 소설이다. 세서와 딸 덴버가 살고 있는 124번지에 폴 디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수없이 넘나들며 펼쳐진다. 처음 이야기를 접할 때 왜 세서와 덴버가 유령이 나오는 집에서 음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124번지를 떠나 살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빌러비드'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가 등장하게 된 이유 또한 서서히 실마리가 풀리게 되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토니 모리슨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성서처럼 엄숙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책 읽는 재미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위대한 작가로 평가할 만하다. 문학동네에서 그녀의 또다른 작품인 <솔로몬의 노래>도 출간했던데 이 작품 또한 찜해놓고 나중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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