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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Apr 21. 2021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의 대표작이자 인류가 낳은 위대한 명작, 전쟁과 평화를 읽고

다시 한번 톨스토이를 만나러 떠나다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이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은 표도르 토스토옙스키와 레프 톨스토이다. 러시아가 러시아 제국에서 소비에트 공화국, 그리고 현재 러시아 연방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했지만 두 위대한 작가의 위상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두 사람은 동시대에 활약했지만 서로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다만 각자 펼치는 문학 세계가 세계를 감동시킬 것이라는 건 파악하고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는 서신에서 서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 레프 톨스토이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러시아 문학에 발을 들인 건 톨스토이가 아닌 도스토옙스키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죄와 벌>이라는 작품은 숱하게 들어온 반면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는 성인이 되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서양의 중심에서 벗어난 ‘러시아’ 문학이라는 이유로 두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건 항상 후순위로 밀려났다. 미국 작가들의 간단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체가 나에겐 더 잘 맞았고 문학이란 미국 문학과 비슷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거라는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문학 방면에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밖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어릴 때부터 박힌 문학적 관념이 쉽게 바뀔 리 만무했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보면서 이들이 과거 세계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궁금해졌고, 유럽이야말로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화의 시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독후감을 쓰지 못한 작품 <돈키호테>

인도와도 안 바꿀 수 없다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또한 많은 작품을 내었지만, 그는 소설가는 아니었다. 현대 소설의 효시가 된 작품은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지은 <돈키호테>라는 작품이다. 1605년에 1편, 1615년에 2편이 출판된 이 작품은 전 세계 문학사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꼽히며 유럽의 문학은 이때부터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기 시작한다.

18세기 러시아 귀족들은 러시아어를 외면하고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스페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18세기 러시아는 나폴레옹이 등장하기 전부터 왕실 언어로 프랑스어가 쓰이는 등 귀족들이 러시아 문화를 하찮게 여기고 프랑스 문화를 받드는 기이한 상황에 처한다. 그만큼 유럽 전체에 걸쳐 문화의 전파가 쉽게 이루어진 것이다. 러시아 귀족들은 서유럽의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뛰어난 소설가를 배출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문화의 교류가 단절된 소비에트 공화국 시절 이후, 두 위대한 작가에 버금갈 만한 작가가 탄생하지 못했다는 건 러시아에게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대작 <죄와 벌>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직후 문학에 대한 나의 관념도 상당히 바뀌었다.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은 국적 불문하고 다양하게 읽어보자는 생각이 자리 잡았으며, 대중에게 일반적으로 유명한 소설은 외면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죄와 벌>이라는 작품을 읽게 되었고, 도스토옙스키가 문학가일 뿐 아니라 인간의 심리 묘사에 도가 튼 심리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죄와 벌>을 도스토옙스키의 대작이라고 꼽지만,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이야말로 그가 세상에 선 보인 문학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삶과 종교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다룬 심오함 등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만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특징은 끝이 없을 정도이다. 읽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보다 나에게 감동을 준 소설은 한 편도 없었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적인 두 작품을 읽고 난 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톨스토이가 남긴 대작으로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꼽을 수 있는데, 먼저 손이 간 작품은 <안나 카레니나>였다. <죄와 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의 첫 번째 작품인 것처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뽑은 건 문학동네가 이 작품을 대표로 내세울 만한 뛰어난 문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인 톨스토이 또한 <전쟁과 평화>보다 <안나 카레니나>를 더 좋아했다고 하니 <안나 카레니나>를 먼저 읽었던 건 당연한 선택 아니었을까.

톨스토이의 작품 중 먼저 손이 간 건 <안나 카레니나>였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지 몇 년이 지났기 때문에 소설의 줄거리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읽었을 당시의 감동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내면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고 하면, 톨스토이는 사람들의 관계에 따른 영향과 인간 사회에 바탕이 되는 철학을 소설 속에서 잘 나타내었다. <안나 카레니나>의 감동을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건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보여주었던 천재성이 전작인 <전쟁과 평화>에서도 잘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과 평화>의 줄거리

<전쟁과 평화>는 BBC에서 최근에 드라마로 제작하기도 했다

<전쟁과 평화>는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은 3부, 2권은 5부, 3권은 3부, 4권은 4부로 나누어져 있어, 총 15부의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러시아 소설이 그렇듯 수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며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이름이 사용되는 데다 수많은 애칭은 소설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전쟁과 평화>의 재미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이 참패한 아우스터리츠 전투

1권은 1805년으로 러시아가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붙어 참패한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중심이 되어 전개되고 있다. 1부는 전운이 감도는 시기 모스크바의 귀족 사회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피예르는 베주호프 백작의 사생아이며, 귀족에 걸맞지 않은 행동과 방탕한 생활로 다른 귀족들의 미움을 받는 처지다. 하지만 베주호프 백작이 죽게 되면서 피예르를 상속인으로 지정하는 유언을 남기자 피예르 또한 백작의 지위를 얻게 되면서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된다. 한편 모스크바의 교외 지역인 리시예고리에서는 퇴역한 육군 대장인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공작이 그의 딸인 마리야와 그녀의 말벗인 부리엔 양과 살고 있었다. 공작의 아들인 안드레이는 임신한 부인인 리자를 두고 전쟁에 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리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이는 결혼에 대해 회의를 가지며 전쟁에 출전하는 걸 감행한다.

로스토프 가의 두 여인, 나타샤와 소냐

2부는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벌어지기 전 러시아 군대와 프랑스 군대의 상황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안드레이는 러시아 군 사령관 쿠투조프의 부관이 되었고, 로스토프 가의 장남 니콜라이는 기마대의 수습 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쿠투조프는 오스트리아 군이 나폴레옹에게 항복했다는 사실을 듣고 러시아에게 전황이 지극히 불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프랑스 군과 전면전을 벌이기보다 시간을 끌며 퇴각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니콜라이는 프랑스군과 소규모 전투에서 대담하게 전진했지만 죽을 위기에 처하고 러시아 군에게 도움을 요청해 사소한 부상을 입는데 그친다.


3부에서는 피예르가 바실리 공작의 딸인 엘렌과 결혼하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바실리 공작은 아들인 쿠라긴 또한 부와 명예를 갖춘 집안에 결혼시키려 하지만 마리야가 그의 행실을 보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무산되고 만다. 전쟁터에는 러시아 황제인 알렉산드르 1세가 직접 찾아와 나폴레옹과의 전면전을 부추기고 있었다. 쿠투조프는 반드시 패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등에 떠 밀려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작전 회의가 열릴 때 안드레이는 머릿속으로 나름대로 작전을 구상해보았지만, 쿠투조프가 다른 사령관들이 작전을 세우고 있는데도 집중하지 않는 걸 보고 의아해한다. 만반의 작전 준비를 완료한 1805년 12월 2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은 오스트리아의 아우스터리츠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전면전을 벌였다. 하지만 전 날 완벽하다고 자신했던 작전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고 연합군은 프랑스에게 무참하게 패하고 만다. 안드레이는 부상을 입고 쓰러져 치료를 받게 되고, 니콜라이는 황제를 알현한 뒤 그의 매력에 빠져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쿠라긴의 유혹에 넘어가는 나타샤

(2권과 3권은 책이 멀리 떨어져 있어 나중에 적으려고 생각 중)


4권은 1812년 나폴레옹 군이 모스크바에서 빌나까지 퇴각하는 시기를 묘사한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뒤, 피예르와 나타샤, 니콜라이와 마리야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소설의 말미는 톨스토이가 역사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것으로 장식된다. 1부는 보르디노 전투에서 승리한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있을 때다. 니콜라이는 탈지트에서 마리야를 도와준 뒤 보로네시에서 그녀를 다시 재회한 뒤 사랑에 빠진다. 소냐도 니콜라이와 결혼하려는 희망을 포기하고 마리야와 결혼하라는 서신을 보낸다. 피예르는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할 때 방화범으로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한 프랑스 장교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난다. 나타샤는 부상당한 안드레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나 안드레이는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다.

쿠투조프는 불필요한 전투 없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쓴 러시아의 명장이다

2부는 나폴레옹이 알렉산드르 1세와 강화를 맺기를 기대하며 모스크바에 4주 동안 머물다 결국 퇴각하는 장면을 그렸다. 피예르는 귀족으로 장교들이 머무른 포로 수용소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지만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과 지내는 데 만족한다. 약탈과 방화로 폐허가 된 모스크바에서 식량을 공급받을 길이 막막한 처지였던 나폴레옹은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결국 10월 19일에 퇴각을 시작한다. 쿠투조프는 나폴레옹의 퇴각 소식을 듣고 러시아가 구원되었다는 것에 감사기도를 올린다. 하지만 프랑스군을 끝내버려야 한다는 다른 장군들과 달리 쿠투조프는 부질없는 전투가 벌어지는 걸 막는 데 집중했다. 나폴레옹은 폐허가 되어버린 스몰렌스크로 퇴각하였으며, 그가 퇴각을 결정한 뒤부터 프랑스군의 파멸은 정해진 결과임에 불과했다.

러시아 원정으로 인해 전 병력 대부분을 잃은 나폴레옹

3부에서는 러시아 일부 군대가 전속력으로 달아나는 프랑스군을 섬멸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총사령관 쿠투조프는 황제를 포함한 대부분의 러시아인들과 달리 패주하는 프랑스군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프랑스군은 러시아의 바람대로 러시아 영토에서 달아나고 있었고, 러시아 군 또한 추위와 보급 문제로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었다. 단지 일부 카자크만 뿔뿔이 흩어진 프랑스 군에 천천히 하지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돌로호프는 프랑스군을 섬멸하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로스토프가의 막내인 페탸는 카자크의 활약을 보고 자신도 합류했지만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하고 만다. 포로가 된 피예르는 돌로호프에 의해 구출되었으나, 카라타예프를 비롯한 수많은 러시아 포로들은 굶주림에 지쳐 낙오되고 사살되었다.


4부에서는 1812년의 전쟁이 끝난 뒤 살아남은 사람인 피예르, 나타샤, 마리야, 니콜라이의 삶이 나타난다. 피예르는 포로 생활에서 해방된 뒤 그동안 고뇌하며 찾으려 했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위대하다고 느껴진 인물이나 사상을 쫓는 것보다 자유를 느끼며 사는 삶의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된 것이다. 피예르는 모스크바로 돌아와 나타샤와 재회한 뒤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에필로그 1부는 1812년 전쟁이 끝난 지 7년이 지난 뒤 러시아인들이 평화를 찾은 모습이 나타난다. 니콜라이는 마리야를 좋아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리야가 니콜라이의 내면에 감춰진 자기희생의 마음을 깨닫고 그를 붙잡게 되고 1814년 마침내 둘은 결혼하게 된다. 나타샤는 1813년 봄에 피예르와 결혼해 딸 셋과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영지에 거주하며 농민들과 함께 영지를 경영하는 데 집안의 빚을 갚는데 온 힘을 쏟는다. 피예르는 페테르부르크에도 자주 들리면서 자유에 대한 그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운다. 안드레이의 아들인 니콜렌카는 피예르를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잠에 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전쟁과 평화>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세 인물, 피예르・나타샤・안드레이

에필로그 2부는 톨스토이가 기존 역사가들의 관점에 대해 비판하고 이를 논증하는 내용이다. 인간 중심의 사상이 등장하기 전에 역사가들은 신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성서를 비롯한 각종 종교 서적들은 신의 의지에 따라 세계가 움직이고 각종 사건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기존의 역사가들은 인간이 중심이 되었음에도 몇몇 ‘위대한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가 움직인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단지 ‘신’이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 1세 같은 ‘위대한 인물’로 대체된 것뿐이다. 몇몇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전 인류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모순적이다. 역사가들은 사건이 일어난 뒤 분석하여 사건과 관련된 중요 인물의 관점을 원인으로 내세운다. 이는 이미 일어난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역사를 일으키는 인류 전체를 분석하는 것이 복잡하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19세기 초 전 유럽을 뒤흔들었던 나폴레옹 전쟁을 ‘나폴레옹’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필연적 흐름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과 평화>의 배경, 나폴레옹 전쟁

<전쟁과 평화>의 배경이 된 사건은 19세기 초 유럽 전역을 뒤흔든 나폴레옹 전쟁이다. <전쟁과 평화>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내가 그동안 몰랐던 나폴레옹 전쟁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소설을 읽는 도중에 내가 모르고 있던 전투가 있으면 구글에 검색을 하면서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프랑스가 유럽을 제패하게 된 아우스터리츠 전투부터 모스크바 점령 후 퇴각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각종 자료를 통해 공부했다. <전쟁과 평화>가 프랑스와 러시아의 전쟁을 중심으로 묘사되지만, 프랑스가 승리를 거둔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이베리아 반도 전쟁,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와 나폴레옹이 몰락하게 된 라이프치히 전투와 워털루 전투까지 나폴레옹 전쟁 전체를 알면 소설의 재미가 배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든 프랑스 육군 '그랑드 아르메'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천재적인 전술과 지도력으로 강력한 프랑스 육군인 ‘그랑드 아르메 (Grande Armée)’이 유럽 전체를 제패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통신이 열악했던 당시 상황을 비추어 보면 나폴레옹과 장군들의 전략이 최전선의 장교와 병사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리 만무했다. 프랑스군이 강력했던 이유는 가장 비옥한 땅을 자랑했던 프랑스의 풍부한 물자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토대로 많은 병사들을 징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 보병을 종대로 편성하여 진격을 빠르게 하고 병사 개개인의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훈련을 시켰기 때문에 이에 익숙지 않은 다른 유럽 국가들이 연전연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 전쟁 후반부에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 또한 훈련을 거듭해 보병의 대열을 정비하자 이들 국가는 프랑스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모스크바는 3일 내내 불타고 만다

나폴레옹은 영국 해군을 상대할 수 없어 대륙봉쇄령을 펼치지만, 이를 따르지 않는 러시아를 혼쭐내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나 모스크바로 원정을 떠난다. 협상이란 없으며 무력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을 어찌 위대한 영웅이라 칭할 수 있는가. 천재적인 지략과 전술을 펼치는 사람이 보급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 3,000km에 달하는 거리를 진격할까.  나폴레옹이 실패했던 건 그 또한 자신을 영웅으로 착각하고 몇몇 지도자들만 굴복시키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막상 러시아로 들어서자 나폴레옹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한 러시아인들은 프랑스군에게 도움이 될 자원을 불태워 없애버림으로써 프랑스군을 패주 시켰다. 나폴레옹 전쟁은 전쟁에 미친 미치광이인 나폴레옹과 그에 현혹된 프랑스인들이 프랑스를 도태에 빠뜨리게 만든 전쟁이다. 인구 강국이었던 프랑스는 수차례 징병을 통해 나라를 지탱할 젊은이들 상당수를 잃어버렸고 국력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프랑스는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풍부한 자원을 가졌음에도 현재도 이웃나라인 영국과 독일에 비해 인구가 적다.


희대의 명작, <전쟁과 평화>가 던지는 메시지

‘전쟁’을 소재로 한 많은 소설이 명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알기 힘든 전쟁의 참화를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싹트는 인류애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무기여 잘 있거라>는 세계 대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평화> 또한 전쟁으로 주요 인물들이 죽어 나가지만 앞의 두 소설과 달리 전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전쟁과 평화>는 ‘전쟁’을 인류 역사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고 있으며, 우리가 영웅으로 칭하는 ‘나폴레옹’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읽는 내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역사관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오쩌둥과 공산당의 지도력과 전략이 뛰어나서였을까. 국민당이 패한 이유는 지도부가 전략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중국 국민들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일반 병사들이 국민당 군대에서 탈주하고 공산당에 가담하는 상황에서 장제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했을까. 대한민국의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내세운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인가. 몇몇 국민들이 정부로 화살을 돌리지만 가격 상승은 나라 전체의 흐름에 따른 것이다. 국민들 또한 자기가 보유한 주택 가격이 떨어지길 원하지 않으며, 불로소득을 바라며 부동산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흐름을 돌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역사는 위대한 영웅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는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톨스토이는 피예르라는 인물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는 과정을 그려내었다. 피예르는 귀족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프리메이슨의 숭고한 가치를 따라 살아보기도 했지만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은 건 프랑스군에 잡혀 포로 생활을 할 때였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병사들이 그를 위해 내어 준 감자를 먹으며 부가 본질적인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포로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게 되자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자유를 누리며 다른 사람들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피예르가 발견한 진정한 행복이었다. 니콜라이는 자유를 설파하기 위해 중대한 사건을 일으키려는 피예르에 반대하지만 그 또한 살아가는 방식이 피예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농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단란한 가정 속에서 살아가는 니콜라이 또한 나름의 행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왼쪽은 안드레이의 삶에 대한 깨달음, 오른쪽은 피예르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다.

‘전쟁’, 그것은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인류 역사를 보면 전쟁과 평화는 끝없이 반복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전쟁 후 찾아온 평화를 통해 인류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 깨닫게 되지만 이를 잊어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부자가 되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내면을 보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세대 갈등을 넘어 남녀 갈등이 격화되고 있으며,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 마치 <전쟁과 평화>의 배경이 된 나폴레옹 전쟁을 보는 것만 같다.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 현대인들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피예르가 자유를 제일 소중한 가치로 깨달은 것처럼 우리 또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


소설의 배경이 된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의 성스러운 두 도시,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항상 고전 소설을 읽고 나면 소설의 배경이 된 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진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고흐가 머물렀던 조그마한 도시인 프랑스 아를에 가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전쟁과 평화>를 읽고 나자 러시아의 두 도시에 가고 싶다는 열망은 더욱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던 모스크바와 러시아의 또 다른 수도이자 성스러운 도시인 페테르부르크는 어떤 모습일까. 인류가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받는 지금 여행을 떠나는 건 요원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가장 먼저 찾을 여행지로 두 도시를 선택하며 <전쟁과 평화>의 감동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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