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를 박살내라
<우리는 부패와 나태로 이끌고 있는 우리들 자신 내부에 있는 부정적 요인들과 싸워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이 싸움에 앞장설 것입니다.>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세요?”
토끼탈이 두 번째 유튜브 촬영을 하면서 가장 먼저 한 말이다. 카메라는 이미 돌기 시작했다. 이성한은 판에 박힌 인사말과 토끼탈을 소개했고, 지난 한 주 안부를 물었다. 지난 주 인트로 방송만으로도 구독자가 2만 명이 늘어서 이성한은 들떠있다.
“‘대통령으로서’라고 했으니 대통령 기자회견문 같은데... 윤석열 대통령이 몇 일전 한 말인가요?”
이성한은 아닌 줄 알면서 대충 사운드 공백을 메웠다.
“1993년 3월1일, 3.1절 기념사에 나온 말이에요.”
“1993년이라고요? 그럼...음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네요.”
“맞아요. 이 두 줄 문장에 곧 벌어질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요. 소설 <세타의 경고>를 낭독해 보겠습니다.”
이성한이 성우를 소개한다.
“소설 텍스트를 읽는 분량이 많이 있어서 딕션이 좋은 성우를 모셨습니다. 김조영 성우님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어서 성우 목소리로 소설 듣기가 시작된다.
취임 후 나흘 만에 세종문화회관에서 3.1절 기념사를 읽은 김영삼은 흥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취임사에서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하면서 첫째로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웠고, 곧이어 오늘 3.1절 기념사에서 부패와 나태가 내부의 적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말한 건 김영삼이 1983년 5.18 3주년에 시작한 22일 단식 때보다 더 단단한 결심을 했다는 뜻이다. 김영삼은 비서실장에게 명령을 내려놨다. 3.1절 기념식 직후 청와대에서 최덕 안기부장과 박영태 국방부장관과 점심을 먹겠으니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점심 식사 후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관영 비서실장, 최덕 안기부장, 박영태 국방장관이 김영삼과 함께 둘러앉았다.
김영삼이 먼저 얘기를 꺼낸다.
“내 노태우에게 하나회 명단을 받았지. 이노마 똥별들을 기냥 놔두면 내가 정승화 꼴난다. 하나회 야들 싹 날려야 해. 노태우가 지 체면 때문에 명단 유출을 먼저 말하진 못하지만, 9-9라인 대가리 노마들에게 언질을 줬을 꺼야. 앞으로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 국방장관이 계획을 세워봐.”
박영태 국방장관이 이어받는다.
“각하. 일전에 하신 말씀이 있어서 생각해 놨습니다. 김주영(육군참모총장)을 먼저 날리면 위험할 일은 없습니다.”
김영삼이 살짝 찌푸리며 말한다.
“듣기 싫으니 각하 소리 빼라고 했노 안했노. 아무도 몰라야 된다. 김희성(국방비서관;현역 군인)이도 몰라야 하고.”
최덕 안기부장이 말한다.
“대통령님이 주신 명단과 우리가 파악하고 있던 명단과 대조를 했더니 거의 들어맞습니다. 동향 파악을 해보니 하나회 쪽은 거의 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들을 치면 김주영 총장이 세상을 뒤집겠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동향은 없습니다. 미국 쪽과 조율도 마쳤습니다. 클린턴은 환영한다고 했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미국이 주변국에 협조요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김영삼이 안기부장에게 묻는다.
“북한은 어떤 상황인가.”
최덕이 대답한다.
“소련 해체 이후 지원이 끊어지면서 조짐이 좋지 않습니다. 김일성 건강도 썩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의 조언에 의하면 중국의 변화가 이미 시작됐고, 그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북한이 허약해지면 중국이 북한을 통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건가. 미국이 하는 말은 말이야.”
김영삼이 어깨를 앞으로 내밀며 안기부장에게 묻는다.
“북한을 말려 죽여야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곤란하다고 합니다.”
“두 가지?”
이관영 비서실장이 끼어든다.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고, 계속 핵실험을 통해 개량하고 수를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이 너무 쪼그라들면 김일성이 핵을 중국에 넘기고 사실상 식민지로 격하될 수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고민이 크다고 합니다. 한 달 전에 어린 클린턴정부가 들어섰으니 아직 우리에게 넘기는 정보가 많이 부족합니다.”
최덕 안기부장 얘기를 듣던 김영삼이 후우 한숨을 쉬고 말한다.
“내 90년에 고르바초프를 만났을 때부터 한반도 상황이 골치 아프다는 건 알았다. 내 팔자가 편한 팔자는 아니제. 그러니까 전격적으로 하나회 시키들을 내쫓아야한다, 알긋제.”
박영태 국방부장관이 대답한다.
“네. D데이는 일주일 후입니다. 각하, 아니 대통령님은 하나회 애들을 더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육참총장이 하나회 현역 우두머리라서 별도로 체포조를 준비하겠습니다. 저항하면 현장에서 처형할 생각입니다. 반란수괴라고 발표하면 됩니다.”
“그 다음엔 어쩔 건가?”
김영삼이 국방부장관에게 묻는다.
“같은 날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을 날리고, 앞으로 한달 이내에 하나회 똥별들은 몽땅 옷을 벗기겠습니다. 사안에 따라 기소해서 형사처벌을 할 생각이고, 덤비는 놈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하겠다고 하며 일단 민간인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 영관급들은 선별할 필요가 있어서 시간이 걸립니다.”
김영삼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서성이다가 말한다.
“박 장관. 박 장관 뒤에 내가 있다. 내가 책임진다. 니는 내 믿고 목숨 한번 걸어봐라.”
육사 15기 박영태 신임 국방부장관은 하나회 숙청이 실패할 경우 죽을 목숨이다. 성공할 경우 그동안 하나회 놈들에게 당한 설움을 일순간 되갚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김영삼이 자기를 국방부장관으로 끌어들일 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죽을 각오를 하고 문민정부 초대 국방부장관이 되기로 했다.
3월1일 저녁에 이관영 비서실장은 오랜 친구인 김주영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은 중학교 동기동창이고 아주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
“진영이가? 내다. 관영이. 저녁 먹었노.”
“웬일이가. 니 인수위에서 일한 이후로 전화 한통 없드니만.”
“할 말이 있어가. 니 옷 벗어라. 새로운 세상이 왔잖아. 조용히 벗으면 우리 보스가 니 좋은데 보내고 편하게 살게 보장할기다. 내가 니한테 전화한 걸 알면 내도 죽는다.”
“......”
“진영아, 듣고 있나. 말 안 들으면 죽는데이. 난 니가 죽는 거 보고 싶지 않다.”
뜸을 들이던 김주영 육참총장은 이관영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우리 보스 각하의 뜻이냐?”
“그래. 노태우가 하나회 명단 다 넘겨줬다. 받아들여라. 시대의 흐름이다.”
“야, 새끼야! 시대의 흐름? 웃기고 자빠졌다. 그 여우탱이가 대통령 후보할 때부터 우리도 준비했다. 800년 전에 왜 무신정권이 들어선 줄 아나. 내를 그렇게 바지저고리로 봤나?”
“야야! 안 된다. 무신정권은 전두환이고, 우리 보스 들어서며 동아줄 끊어진 거다. 너 그러면 죽어. 그래서 내가 몰래 전화하는 걸 알아야 한데이.”
“누가 죽는지 두고 보자. 후후.”
“이건 미국도 바라는 거야. 79년하고 달라. 우리 편하게 살자. 한반도에 군사정변 일어나면 다 죽어. 그걸 알아야지. 우리 어른이 앞뒤 계산 없이 무대뽀 아니야.”
“아, 듣기 싫다. 끊어.”
김주영 육참총장은 김진산 육참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8시에 장군 세 명을 소집하라고 지시했다. 아침 밥상을 두고 육참총장, 육참차장,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다섯 명이 모였다. 이들은 사실상 전두환과 노태우의 현역 대리인이었다. 한반도 남쪽에서 두려운 자가 아무도 없는 최고 권력자 다섯 명 누구도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먼저 서원수 기무사령관이 나섰다.
“우리도 시나리오를 가동해야겠습니다. 총장님.”
김진산 육참차장이 낮은 톤으로 말한다.
“오늘 아침 우리가 모인 것도 안기부와 미국 CIA에서 체크하고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세상이 걷잡을 수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20년 만에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나오고, 클린턴이 취임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소련은 사라지고 북한은 핵을 보유했구요. 중국도 경제발전 최우선으로 치달으면서 우리와 수교했고, 재작년에 남북이 유엔 회원국 됐습니다. 우리가 나서기에 주변 상황이 알맞지 않습니다. 여우탱이도 그걸 믿고 있을 겁니다. 신중하셔야 합니다.”
“끙.....”
김주영 육참총장이 짧은 외마디를 내질렀다.
“박영태 이 개새끼. 씹어 먹어도 부족한 새끼.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안정호 수방사령관이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이게 다 안기부 새끼들이 친 덫입니다. 김기춘이 서동권을 앞세워서 노태우 이후를 설계한다는 첩보를 말씀드린 적이 있었잖습니까. 이렇게 전격적으로 치고 들어올 줄 몰랐습니다.”
서원수 기무사령관이 김기춘을 끄집어냈다.
“김기춘 그 새끼가 여우탱이랑 동향이잖아. 각하를 업은 박철언이하고 서동권이 해외로 뛸 때 김기춘이 안기부 비선실세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었던 거야.”
김주영 육참총장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여기서 잠깐 끊고 갈게요.”
이성한이 텍스트 종이를 읽으며 연기하는 성우를 멈춘다.
“김기춘은 노태우 정부 출범과 동시에 2년 임기 검찰총장을 꽉 채워하고, 반 년 쉬었다 법무부 장관을 1년 반 정도 합니다. 법무부장관 물러날 때가 92년 10월이고, 이후 변호사로 일하다가 15대 국회의원을 시작한 게 1996년이에요. 그런 김기춘이 문민정부 출범과 동시에 전격 단행한 하나회 숙청의 배후라구요?”
이성한이 토끼탈에게 물었다.
“누구나 다 아는 초원복집 사건이 장관 퇴임 직후잖아요. 92년 12월에 부산 초원복집에서 있었던 ‘우리가 남이가’ 사건 말입니다. 김기춘은 부지런해서 쉰 적이 없었어요. 5공 때 죽을 뻔하다가 노태우 밑에서 신세 역전했지요. 노태우 황태자 박철언과 3년 동안 안기부장을 하며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을 성사시킨 서동권하고 검사 선후배로 막역한 사이였어요. 김기춘은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타이틀을 가지고 안기부 개편에 공을 들였지요. 5공 때 보안사와 한 몸이었던 안기부를 보안사와 분리하고 검사 파견을 받으면서 김기춘의 안기부로 키웠어요. 서동권이 국내 파트 공작을 김기춘에게 맡기고, 김기춘은 대학 후배이자 검사 후배이자 안기부 대공국장 후배인 정형근을 통해 강기훈 유서대필공작을 비롯 여러 공안사건을 기획하고 진행했구요. 정형근이 워낙 잔인무도한 고문을 저지르며 일처리를 잘 해서, 김기춘이 정형근을 데리고 함께 15대부터 내리 3선 국회위원을 지내지요.”
이성한이 다시 물었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에서 김기춘이 안기부를 장악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70년 대 말에 김기춘이 보안사 쪼인트를 깐 것처럼 문민정부 시작과 동시에 하나회 숙청에 성공한 건 김기춘의 치밀한 기획의 결과이에요. 결국 군사정권을 종식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문민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까지 국내 정치는 안기부와 이름을 바꾼 국정원 손바닥 위에서 이루어졌어요.”
“그럼 하나회 숙청 이후 군부는 어떤 흐름으로 갔나요?”
“93년 이후 20년 동안 군부는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어요. 안기부가 율곡사업 이후에도 국방예산이 워낙 엄청나니까 똥별들에게 떡고물을 계속 제공하면서 정치권력은 생각지도 못하게 윽박질렀거든요. 기무사도 개점휴업 상태였고, 군부가 힘을 쓸 수 있는 물리적 토대가 와해되고 복구할 상황이 되질 않았으니까요.”
여기서 이성한이 녹화를 마무리 했다.
“이성한의 극중TV 시청자 여러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로 유명하죠.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바로 하나회 숙청을 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직진돌격의 의지를 나타낸 말입니다. 하나회 숙청으로 군부의 20년 푸대접이 시작됐다는 오늘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주 금요일에 다시 만나겠습니다. 토끼탈님 고생하셨습니다. 김조영 성우님 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