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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Nov 07. 2024

내가 작별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지리산의 하차순 할머니

ⅱ. 지리산의 하차순 할머니 

    

2013년에 보도연맹학살을 다룬 영화 <레드툼>을 관람하고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상상이 있다.

한 희생자가 웅덩이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면서 유언을 남겼다. 

"내 세상살이에 별 미련이 없습니다. 다만 가족들이 걱정이네요. 머리는 쏘지 말아주세요."

처형자들은 누우라고 했으나 위 말을 한 사람은 엎드렸단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등이 뜨겁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총알이 관통하면 이런 느낌일까. 내가 1945년에 제주의 청년이었다면, 1980년에 전남대 학생이었다면, 2014년4월에 원래 예약한 세월호를 탑승했다면 분명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힘들지만 떨치지 못하는 상상이 되풀이된다. 

2010년 7월에 대안학교 고등학생들과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함양군 마천면에서 즉석 리빙라이브러리를 개최했다.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람책으로 섭외해서 아이들과 함께 읽는(대화하는) 행사였다. 그중 하차순 할머니 사람책을 잊을 수 없다.

(아래 2010년 당시 일기)                                        



3일차, 아침 먹고 여행지 현장에서 리빙 라이브러리를 벌였다. 마을 정자에서 3분의 할아버지를 만나는 팀과 분리해서 우리 팀은 정자 뒷편 여염집을 찾았다.

"서울에서 여행 온 청소년 친구들에게 옛날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흔쾌히 우리를 들어오라고 허락한 82세의 할머니 책은 "하차순". 1929년 뱀띠. 평생 고단한 노동으로 손가락 마디 마디에 구슬이 들어간 듯 굵게 두드러지고 기역자로 꺾여진 꼬부랑 허리. 오늘도 5시에 고사리밭에 가서 한 자루 고사리를 꺾어와서 손질하고 계시는데 우리들이 책으로 모셨다.

왜 어린아이 손을 '고사리손'이라고 하는지 생고사리를 살피면서 알아본 우리들은 "책"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책과 대화를 시작했다. 언제 자신의 이름이 불렸겠는가. 할머니는 마치 이름을 잊은 듯했다. 

"하가 여"

"성이 하씨고 이름은?"

"차순이여 하차순"  

할머니는 시집와서 바로 해방을 맞이했다. 아직 초경도 치르지 않던 16살에 18살 소년과 혼례를 올렸다. 1년 여를 함양읍내 친정집에서 살다가 이곳 마천 시집으로 옮겨왔다. 시어머니 구박 받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고 또 일했다. 애는 생기지 않았다. 22살, 1950년 6.25 한국전쟁이 터진다.

산속에는 빨치산들이 천지였다. 밤에는 그들의 세상이었다. 밤에 그들이 대문을 두드리면 먹을 것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빨치산들은 젊은 남자들에게 식량을 짊어지게 해서 산속으로 사라졌다.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빨치산이 된 것이다. 청원경찰을 하던 남편은 밤에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있었다. 빨치산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상황을 할머니는 직접 목격한다. 남편이 군인의 명령으로 마을 초등학교에 갔기 때문에 할머니는 학교 울타리까지 몰래 가서 엎드려 운동장을 들여다본다. 끊임없이 도락꾸(트럭)로 사람을 실어 나른다. 지금은 지리산둘레길 함양군안내센터가 된 의탄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진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처녀, 총각 다양한 사람들이다.

운동장 한켠에 커다란 웅덩이를 파도록 명령한다. 웅덩이 가장자리에 둥그렇게 실어 온 사람들을 세운다. 이어지는 총소리. 세워진 사람들은 웅덩이 안으로 낙엽처럼 떨어진다. 사람들은 차례대로 웅덩이 가장자리에 둘러 세워진다. 그들은 모두 웅덩이에 함께 묻힌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모르겠어. 정말 무서웠어. 남편이 군인들 명령으로 웅덩이를 흙으로 덮었어."

24살에 첫딸을 낳았고, 이런저런 사업에 손댄 남편은 물려받은 땅을 다 말아먹었다. 3남매를 낳아 키우는 동안 남편은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수없이 부부 다툼이 있었다.

"그때는 왜 이혼을 생각 못 했는지 몰라. 지금 같으면 당장 갈라설 텐데."

"세상 참 좋아졌지. 다시 젊어서 새롭게 살아보고 싶어"

하차순 할머니는 뻔한 거짓말을 자꾸 되뇌며 강조한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여기저기 너무 아파"

이제 6살인 손자를 생각하면 오래 살고 싶기도 하다고 토를 달면서.

장가 가기 힘든 막내아들이 결국 필리핀 처녀와 결혼해서 다문화가정을 꾸렸다. 그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지금은 6살 손주 '동○○'이다. 할머니 방 벽면 한가운데 손주 사진이 걸려있다. 유치원에 갔기 때문에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사진만으로도 똘똘하고 귀여운 모습이다.

손주 사진을 보다가 옆에 함께 걸려있는 문선명 부부의 사진도 발견했다. 할머니는 함양에 있는 통일교 교회에 다닌다고 했다. 우리가 다시 와서 인사드릴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시라고 덕담하고 하차순 책과 헤어졌다.

"언제 다시 오실 것인데?"

"몰라요. 10년이고 20년이고 다시 인사드리러 올 날이 있을 거예요. 무조건 저희가 다시 올 때까지 살아계세요^^"

빨리 죽고 싶다는 노인네 넋두리는 거짓말이 분명하다. 무조건 살아계시라는 인사에 미소가 번진다. 알았다고, 그러마고 한다.

하차순 책은 대하소설 그 자체다. 일제식민지, 친일모리배, 보도연맹 학살, 6.25 한국전쟁, 빨치산 게릴라, 레드 컴플렉스, 한국 남성의 마초주의, 토지자본의 축적을 통한 농촌의 재구성, 장애인 복지정책(함께 사는 막내 아들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적장애인이 됐다), 최근의 다문화가정까지 모두 다루고 있다. 2시간 동안 다 읽기엔 벅차다.

우리 모두 한 권의 책이다. 학생들은 계속 써지는 책이다. 경술국치 100년, 한국전쟁 60년, 4.19 50년, 광주민주화운동 30년인 2010년이다. 앞으로 60년 후 2070년에 우리 친구들은 손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읽혀질 것인가. 하차순 책과 만남은 소중한 인연이다.


<레드툼>은 직역하면 빨갱이 무덤이다. 구자환 감독의 국민보도연맹 학살 시리즈 중 첫번째 영화이다. 이후 <해원>(2017) <태안>(2020)을 제작 발표했다. 레트툼의 시놉을 보면 이렇다.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피해자가 발생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작품 속 인선의 외삼촌도 제주에서 대구형무소로 이감됐다가 6.25 발발 이후 무차별 수형자 학살로 희생된 경우다. 이유가 없다. 너는 죽을 놈이고, 나는 많이 죽이면 출세한다-이런 사고 방정식은 면면히 흘러 지금까지 수맥이 이어진다. 어릴 때 수없이 들은 공식이 있다. ‘말 많으면 빨갱이’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지금은 다를까. 아니, 하나도 달라진 거 없다. 좌익으로 몰아 가두고, 경우에 따라 죽여서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태는 2024년 현재도 똑같다고 말하면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유감을 넘어 어이없지만 ‘지금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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