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달콤한 '폭포수', 갈수록 쓴맛 나는 '애자일'의 진실
"애자일 한다면서 왜 '룰' 뒤에 숨으시나요?"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매일 아침 15분씩 서서 스탠드업 미팅을 하고, 2주마다 스프린트를 돌리고, 지라(Jira) 티켓을 열심히 옮깁니다. 겉보기엔 완벽한 '애자일' 조직입니다. 그런데 정작 프로젝트가 삐걱거리면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가이드라인대로 다 했는데요? 책에 나온 대로 프로세스 따랐으니 제 잘못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볼까요? 이건 애자일이 아니라 '면피'입니다. 그냥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게 마음 편하기 때문이죠. 시키는 대로 하면 욕먹을 일도 적고, 해고당할 걱정도 덜 하니까요.
하지만 오늘 저는 여러분께 조금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그 달콤한 '편안함'이 아니라, 뼈아픈 '명료함'이라는 사실을요.
1. 규칙은 '생각'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애자일(Agile)을 도입한다고 선언하면, 많은 조직이 두꺼운 '방법론 교과서'부터 찾습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성경처럼 따르죠. 하지만 애자일 선언문을 만든 사람들조차 "애자일 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규칙은 안전합니다. 하지만 규칙 뒤에 숨어서 '생각'을 멈추는 순간, 그 조직은 죽어갑니다.
나쁜 예 (Comfort): "프레임워크에서 하라는 대로 했으니 결과가 안 좋아도 어쩔 수 없지." (규칙에 의존)
좋은 예 (Clarity): "우리 팀 상황에 이 규칙이 안 맞네? 왜 그럴까? 바꿔볼까?" (지속적인 성찰)
애자일의 핵심은 '어떤 규칙을 쓰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개선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코번(Cockburn)이 말한 것처럼, 진심으로 성찰하고 개선하는 데 시간을 쓴다면 어디서 시작하든 우리는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2.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착각을 버리세요
조직에서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가 있습니다. 어떤 애자일 프레임워크를 도입했다가, 금방 효과가 안 나오면 바로 이렇게 외칩니다.
"에이, 이거 우리랑 안 맞네. 애자일 실패! 다 집어치워!"
이건 마치 헬스장 하루 다녀오고 몸짱이 안 됐으니 운동은 효과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 시도해보고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실패한 게 아닙니다. 효과가 없는 부분을 찾아내 '수정'하는 과정 자체가 애자일입니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애자일 별거 없네"라고 말하는 건, 사실 일하는 방식을 깊게 고민하기 싫다는 게으름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3. 달콤한 '가짜 확실성' vs 불편한 '진짜 명료함'
우리가 애자일을 하기 전, 일명 '폭포수(Waterfall)' 방식으로 일할 때를 떠올려봅시다. 프로젝트 첫날, 우리는 모든 기능을 엑셀에 쫙 나열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웁니다. 고객은 행복해합니다. "오, 4개월 뒤에 이 완벽한 물건이 나오는군요!" 모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희망 사항이지 계획이 아닙니다.
4개월, 아니 단 한 달 사이에도 세상은 변합니다. 경쟁자가 신제품을 내놓고, 애플은 iOS를 업데이트하며, 법 규제가 바뀝니다. 처음에 느꼈던 그 확실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배신감으로 바뀝니다. 결국 고객과 우리는 "왜 약속 안 지켜?" 하며 싸우게 되죠.
반면, 애자일은 시작부터 솔직합니다(조금 불편할 정도로요).
고객: "얼마 들고 언제 다 돼요?"
우리: "일단 핵심 기능부터 만들고, 2주마다 결과물 보면서 조정합시다."
처음엔 고객이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2주마다 동작하는 제품을 눈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기능을 넣고 빼면서 상황은 반전됩니다.
'가짜 확실성'이 사라진 자리에, '진짜 신뢰'가 쌓이기 때문입니다. 폭포수 방식이 시간이 갈수록 고객과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면, 애자일은 시간이 갈수록 고객과 '한 팀'이 됩니다. 우리의 이익과 고객의 성공이 일치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죠.
결론: 불편함을 즐길 준비가 되셨나요?
명확함을 유지하는 건 어렵습니다. 때로는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엑셀 속에 숨어있는 게 훨씬 마음 편할 수도 있죠.
하지만 "프로젝트 첫날만 기분 좋은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마지막 날 고객과 웃으며 악수하는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 당장 규칙이라는 방패를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팀원들과, 고객들과 '진짜 대화'를 시작하세요.
그 불편함 속에 진짜 성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