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정도 주말마다 바쁘게 지내느라 한주 리뷰를 하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써보는 한주 리뷰)
경북으로 돌아오면서 기회가 되면 경주에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2박 3일로 경주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기대했던건 황리단길. 거의 3일 내내 이곳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
첫째날은 낙지칼국수와 감자전을 먹고 여기저기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문화재(?)처럼 생긴 곳에 들어가 피하다가 비가 그치지 않아 가장 가까운 카페로 피신했다.
따뜻한 허브차를 주문하고, 짐들을 갖고 앉으니 약간 추웠다. 카페에 마련된 담요를 들고 누워있자니 꾸벅꾸벅 졸음이 밀려왔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반투명한 플라스틱 지붕이 있었는데, 그리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유난히 더 거세게 들려왔다. 언젠가 이렇게, 푹신한 소파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밖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빗소리가 점점 더 거세졌고, 반쯤 잠든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은채 선잠에 들었다 깼다 반복했다. 얇은 담요가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니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비가와서 꼼작도 못하는 지경이었지만, 이 풍경만은 정말로 아늑하고 행복했다.
2.
블루리본이 달린 어떤 카페에 들어갔지만,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디저트는 먹지 못하고 적당히 블렌딩 된 차만 마셨다. 갓 나온 따끈한 차를 받아들고 2층으로 올라가니 여린 풀들이 적당히 자란 능이 한 눈에 보였다. 사람들은 비가 오는데도 능 사이를 걷고 있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우연히 처마밑에 자리잡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누가 키우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 몰골. 고양이도 비가 싫었는지 자신만의 작은 아지트인 양 자리를 잡고 연신 몸을 다듬었다. 내가 자신을 보는 걸 알고 처음에는 경계하더니, 이내 자리를 잡고 눕는다. 고양이들은 늘 여유롭고 느긋하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은 항상 좋아한다. 신기해.
3. 사무실 동료가 간 김에 미피하우스에서 석굴암 미피 키링을 사오라고 부탁해서 미피를 사러 갔다. 여기에만 있는 특별 에디션이란 말에 몇개를 더 계산했다. 해내야할 퀘스트를 해낸것 같아 마음을 쓸어내린다.
하반기 인사이동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무실 내에서의 관계도 재편되었다.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딱히 바란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내 또래의 사람들 몇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며 커피를 마실때는 20대로 돌아간것처럼 기쁘고 즐겁다. 그러다가 문득, 친하게 지내다가도 멀어졌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에 브레이크를 건다. 관계를 맺는건 주식을 사는 것 같다. 다 잘될거라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그 끝은 분명하게 갈린다. 그동안 실패해던 수 많은 관계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이렇게 즐거우면 안될것만 같다. 하지만 사람과 친해질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 또한 만나지 못했겠지. 나는 항상 어딜 가든 적게는 한두명, 많으면 네다섯 정도의 사람을 남겨왔다. 여기서는 과연 누가 남을까 궁금하다. 아니, 남긴 남을까 그것도 모르겠어. 일단은 지금 이 사람들과의 시간을 조금 즐거워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