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여름 Feb 12. 2023

도망치는 것은 때때로 도움이 된다.


나는 도망치는 것을 좋아한다. 너절한 진흙탕 싸움이 될때까지 해보다가, 도저히 안될것 같은 환경을 포기하고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는 일을 선호한다. '버티는 사람이 승리'라는 말은 돈을 많이 주거나 대단한 권력을 쥔 조직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우리가 매일 고민하고 전전긍긍하는 대부분의 집단들은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갖다 바칠만큼 대단하지 않다.


나의 도피를 말리는 이들은 늘 회사 상사다. 자꾸 도망치는 버릇은 좋지 않다는 말, 물론 그것이 진심이며 나를 위한  조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도 는 법이다. 내가 그랬다. 나는 일찌감치 비효율적인 부당함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알게 된 이후로 밍기적 거리지 않고 소신에 따라 행동한 것은 스스로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도망치는 것은 도움이 된다. 도망치는 결정을 하기까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렇다. 핵심은 스스로에게 당당할만한 성실성이다. 그 요건만 충족된다면 크게 망설일 필요는 없다. 정년퇴직이 미덕인 시대는 분명히 지나지 않았나. 10년간 3차례의 이직으로 얻은 생각이라면, 스스로를 아끼는 사람은 자신을 덜 불행한 곳으로 옮겨준다는 것이다. 지난한 불평만 늘여놓을 것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확실한 자기 사랑의 척도다.



나의 건강보험득실자격증서에는 총 6개의 회사가 나열되어 있지만, 잠깐 스친 인턴따위를 제외하면 의미있는 회사는 4곳이었다. 첫번째 회사에서 가장 불행했고, 두 번째 회사에서  덜 불행했으며, 세번째 회사에서 그보다 조금 덜 불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다지 불행하지는 않다. 나의 삶은 드디어 불행에서 불행하지 않은 곳으로 이동했다. 허덕거리며 마이너스 통장을 갚아낸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식으로 조금씩 더 좋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기 위해 노력했다.


제주를 택할때도 그랬다. 당시 사는곳이 마음에 들고 일도 그럭저럭 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거기서 멈추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 회사보다 나은 환경에 감사했지만 더 발전하고 싶었다. 나만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리스크였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서 배워야 실력이 늘텐데, 그럴 수 없었다. 열심히 하면 실력이 늘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오랜 고민끝에 나는 다시 한번 나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옮겨주기로' 했다.


그러므로, 나의 유배는 스스로가 선택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제주도에 혼자가서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라도 행동하는 존재인 것이다.  여리고 소중한 나를 세상으로부터 어떻게든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자기 사랑이다. 그러려면 성실해야해. 다른 곳에서 나를 원할 수 있도록. 성실로 무장한 실력만이 망망대해의 거친 바다에서 나를 지켜주는 배가 되어줄테니까. 우리는 거친 세상에 맞서 스스로를 무장한 채로 끊임없이 불행으로부터 도망쳐야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 건너 유배의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