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었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아빠였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1학년처럼, 대학생이 되는 것처럼, 돈을 버는 사회인이 된다는 것처럼, 어제의 나와 크게 다른 사람일리가 없었다. 생각보다 크게 변하는 것은 없지 싶었다. 아내는 엊그제 처음으로 태동을 느꼈고, 초음파로만 확인했던 아이가 존재감을 드러내자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담아놨어야 한다.)
- 첫 태동을 말해주는 아내의 표정
아내는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태동을 느낀 게 맞는 것 같아'
긴가 민가 하는 표정으로 이게 태동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어제의 아내 표정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있는 확신. 그 눈빛이 달랐다. 아빠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영역. 첫 태동.
영화나 드라마, 상상했던 표정은 뭔가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인 것 같은 신비로움을 담은 표정이었지만, 아내의 표정은 그보다는 일상적인 그 표정이었는데, 자신이 느낀 것이 태동이 맞다는 확신, 안에 있는 아이가 움직인다는 신기함이 확신이 되어 담긴 눈빛. 그 표정이 기억속에 남아있는데, 평생 잊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아기 침대를 당근으로 나눔 받았다. 태동 이후 아내의 급박한 서치. 연관관계가 없진 않을거다. 태동을 느낀 날 아기 침대를 마련한 일이. 물론 이전부터 고민이던 아기 침대였다. 좁은 집에 어떻게 놓을지 걱정했는데, 당근으로 나눔해주시는 분께 고맙게도 받아왔다. SUV에도 힘겹게 들어갈 침대지만 주차장에서 침대를 해체해서 싣고 가져오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 차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던 하루. 그 침대가 집에 놓이자 갑자기 내가 또 한 번 아빠가 되었다.
결혼하면서 꼭 지키고 싶었던 아내의 화장대를 조금 이동시키고, 그 자리에 아기 침대가 딱 맞춤 사이즈로 들어갔다. 어떤 아기들은 4번도 안쓰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사기가 겁났는데, 이렇게 당근 나눔으로 가성비 있게 준비를 했다. 고마운 일. 그렇게 들여온 아기침대는 생각했던 것보다 사이즈가 컸다. 그 큰 존재가 집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용품들을 하나하나 정리를 하게 된다. 정리의 끝에서 찬찬히 침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이의 존재감이 이만큼 더 커졌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빠가 되는 일이 나의 의지나 계획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걸 생각한다. 어느 순간 아내의 화장대 곁에 자리한 아기 침대처럼 아이가 삶의 존재로 그렇게 하루 하루 다가오는 거라니. 내가 아빠가 된다는 것도 그만큼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내게 맡겨지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한 하루.
아빠가 되었는데, 아빠가 될 준비를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아빠가 되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평생 그러는 거겠지. 아이가 잘 커주고 있다고 하니, 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잘 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