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뤄질 수 있는 꿈만 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엄마는 자기 인생에 사위가 생기지 않을 줄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단다. 딸을 낳는 그 순간부터 꿈꿔온 잘생기고 듬직한 사위에 대한 로망을 내가 이뤄주지 못해 이번 생은 망했다고 했다. 습득력이 어찌나 좋은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급식체에 카카오톡을 확인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입이 떡 벌어진다.
하루는 티브이를 보다가 자기도 브런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살 날도 많은 너네끼리만 맛있는 것 먹고 다니냐고 급정색을 하길래 엄마더러 당장 일어나라고, 나가 사주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런 것들을 좋아할 줄 미처 생각도 못했다. 젊음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엄마도 하고 싶어 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아서 앞으로는 가끔이라도 엄마를 데리고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더랬다. 그런 건 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거니까. 엄마는 브런치를 먹으며 비싸고 짜다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소스 한 스푼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딸이 버는 돈은 한 푼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며, 갑자기 먹고 싶어 진 브런치가 미안했던 모양이다.
딱 한 번 브런치를 먹어본 엄마는 아침마다 브런치 비슷한 걸 만들어줬다. 장금이도 아니고 한 번 먹어본 브런치의 맛을 재현하는데 열을 올렸다.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소스를 이용해 아침마다 브런치 스타일의 식사를 만들어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내 화장대에 올려놓았다. 만 오천 원짜리 브런치보다 자기가 한 게 훨씬 더 맛있다고 식기 전에 먹으라고 아침마다 성화다. 자기가 만든 브런치는 3만 원 짜리라나. 엄마 그런데 브런치는 아침이랑 점심이 합쳐진 건데 이건 브런치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엄마는 자기가 할 말만 한다.
도대체 엄마는 왜 그런 걸까. 왜 그렇게 미안하고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고 왜 그렇게 자식이 애틋한 걸까. 엄마를 보면 나는 절대로 저런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아니 애초에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미안해지곤 했다. 카페에 갔을 때 옆 테이블에 아기가 있으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물고 빨고, 누가 보면 자기 손자인 줄 알겠다고 그만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렇게 예뻐할 수가 없다. 옆 테이블의 아기 엄마가 “따님분 어서 시집가셔야겠어요”하고 말할 때마다 엄마에게 죄짓는 기분이 들곤 했다.
우리는 종종 무슨 뜻인지 알겠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들을 하고 산다. 아이들이야 기분에 따라 솔직하게 자신의 언어나 표정을 표현하지만 어른 살이 어디 그런가. 솔직해지지 못하고 말하지 못해 그저 상상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일은 하기 싫다고, 매일 맥주를 마셔도 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요즘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우리 엄마에게 사위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가수 이효리는 뉴스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히고 싶지는 않아요.
이 말에 손석희 아나운서는 이해는 가지만 가능한 일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다시 대답했다.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나는 아직도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내가 봐왔던 결혼은 우리 엄마만 보더라도 그리 좋은 제도는 아니었고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봐도 부러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결혼을 결심하게 할 인연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거야말로 내 노력으론 되는 일이 아니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에서 더 멀어지는 내 기분과는 달리 사위나 손자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가는 우리 엄마에 대한 미안함은 날로 커져간다.
엄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사위가 밥 사 주는 거 보면 그렇게 든든하더라. ‘사위’라는 말이 그렇게 이쁘더라. 사위가 용돈 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우리 딸 예뻐해 주는 사위한테 밥 한 끼 해 맥이면 얼마나 행복할까. 사위 손 잡고 우리 딸 좋아해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우리 딸 혼자되지 않게 평생 옆에 든든하게 있어 달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자식이 혼자서 살게 될 앞날을 걱정하기보단 둘이라서 하는 걱정들을 하는 게 훨씬 마음이 든든해.
딸! 근데 진짜, 정말로 결혼 안 할 거야?
나는 점점 더 투박한 현실 속으로 가고 있고, 현실 속에서의 결혼은 점점 더 어렵다. 하고 안 하고를 떠나 누군가를 만나기조차 어려운 현실 속에서 엄마 아빠에 대한 미안함을 청산할 수 있는 날도 오긴 할까. 엄마 아빠가 원하는걸 나도 기꺼이 원하는 날도 오긴 할까?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오늘도 상상한다. 우리 엄마에게 사위가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에겐 손주가 생겼으면 좋겠다. 예쁜 손주가 할아버지하고 불러주는 순간을 꿈꿔왔다는 우리 아빠에게도 손주가 생겼으면 정말로 좋겠다.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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