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은 볼 수 있다
목적지 없이 지하철을 탔다. 주말을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만 하며 보내기를 몇 달째였다. 늦잠이 더 이상 달콤하지 않다는 건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나가고는 싶고 몸에는 게으름이 장착되어 머리와 몸이 마치 두 사람인 것처럼 싸워댔다. 그 두 인격이 합의를 볼 때쯤엔 이미 오후 세시를 넘기고 있었다. 시간을 핑계로 또 토요일을 누워서 보낼 것 같아 마스크를 끼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걷기는 걷는데 발걸음은 분명하지 않고 불안한 눈동자는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된단 말일까.
일단 지하철역으로 나를 데려갔다. 역에 도착했으니 카드를 찍었고, 찍었으니 지하철을 타는 게 순서다. 출발은 했지만 도착지가 없으니 대략 난감이다. 토요일을 나처럼 보내는 사람도 있을까, 이 지하철에 목적지가 없는 사람도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삶의 허무가 밀려왔다. 매 순간 사람들은 이토록 많은 결정을 하고 사는 걸까, 새삼스레 삶이 어려운 기분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오늘 가고 싶은 곳을 결정하는 걸까. 그저 가야 할 곳들을 오고 가며 사는 걸까? 하는 생각들을 하며 지나치는 역들을 구경했다. 역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그냥 돌아갈까'하는 생각과 '어디라도 가자'하는 생각이 충돌했다. 돌아가기엔 좀 멀리 왔다 싶을 만큼 꽤 많은 역들을 지나치고 나서야 나온 김에 맛있는 커피나 마실까 하고 생각했다.
평일에는 갈 수 없는 곳을 찾다가 낯선 곳 중 가장 익숙한 곳이 떠올랐다.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sns를 찾아보니 좋아하는 카페가 역 근처에 새로 오픈했다. 아이스라테를 한잔 주문했지만 자리가 없었고 여름치곤 선선한 날씨에 커피를 들고 일단 걸었다. 걷다 보니 광고판이 보였다. "종로에는 한옥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중 청운 문학도서관이 눈에 띄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날씨가 좋았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주어 걸을만한 날씨, 도서관으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처음 가보는 오르막길을 만났다. 올라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두고두고 그 오르막길 위가 궁금할 것 같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자 점점 더워졌다. 괜히 올라왔나 생각하는 찰나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장소가 보였다. 마치 이 장소를 발견하려고 오르막을 오른 사람처럼 뿌듯했다. 그래 오늘은 이걸로 됐다 라는 생각이 들만큼 풍경은 아름다웠다. 고궁들이 군데군데 섞인 서울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후회되고 걱정됐던 모든 것들은 이 풍경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만큼.
목적지 없이 지하철을 탔고 즉흥적으로 순간의 발걸음을 결정했다. 이런 결정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 기분 좋은 우연을 만나려면 정해진 길이 아니라 예상에 없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길은 안정감을 주지만 그 안정감 이면에 가려진 우연과 기대를 발견하기 어렵다. 늘 정해진 길로만 다니고 갈 곳이 없는 날엔 방 안에서 그 길들을 생각하기만 한다면 걱정을 잊게 만드는 풍경을 만날 수 없다.
늘 먹던 커피, 늘 가던 길에서 얻는 안정감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목적지 없는 지하철을 타고 즉흥적인 발걸음을 즐겨도 될 것 같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이탈, 소박한 방황이야 말로 일상을 새로이 보게 해주는 소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보여주기 좋은 예쁜 것들도 처음에는 누군가 목적지 없는 지하철을 타고 발품 팔아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닐까.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한 반짝거리는 것들을 발견하며 사는 것이 아마도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목적지 없는 지하철을 타고 조금 시무룩한 하루를 보내는 당신이라면 조금 안심해도 되겠다. 당신은 이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차례니까.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난다.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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