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너무 비싸

외로우려면 돈을 벌자

by 아도르
스크린샷 2020-07-28 오후 9.37.03.png 외로운 사람에겐 치명적인 넷플릭스 광고


헨리데이비드 소로우의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무슨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라는 말이 있다. 작가의 깊은 통찰력과 이 문장을 좋아한다는 사람의 취향에 반해 메모해둔 문장이다. 잔물결 소리에 귀기울인다는 것은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말일 것이다. 잔물결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 소리에 집중한다는 말일 것이다.


‘외롭다’는 감정을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전에는 가끔 주어지는 고요가 감사했다. 크고 대단한 꿈을 꾸진 않더라도 지금 당장 즐거운 것을 하며 시간을 잘 보내는게 가능했다. 시간을 떼우기 위한 장치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게임이나 웹툰은 쳐다도 보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걸로 시간을 떼우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떼운다는 말 자체가 싫었다. 잔물결 소리처럼 내 마음의 작은 즐거움에 귀기울이고 그것에 집중하면 시간을 떼울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렇게 혼자의 시간동안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의 시간이 길어지고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혼자로서 살아가던 주변의 사람들이 내 일상의 중심에서 하나둘 빠져나가니 마치 홀로 섬에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외로움에 초조함이 더해진다. 어쩔수 없이 주어진 고요한 일상을 보내면서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이 고요를 떼우기에 급급하다. 시간을 떼우기 위해 무언가를 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이쪽도 저쪽도 제대로 하지 못해 불안한채로 완전한 이틀의 주말은 사라진다.


모두가 내 일상에서 빠져나가기전 나와 같이 잔물결 소리에 귀기울이는 단 한명의 사람으로도 충분했던 나의 일상에 이제 아무도 남지 않자 비로소 알게 된 건 나는 나로서 충분했던게 아니라 세상이 말하는 소리들에 귀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둘이어야 한다고 했고, 그것이 우리의 쓸모라고 하고, 혼자서는 쓸모를 갖지 못한다고 했다. 개의치 않고 단단한 혼자가 되어보려 했지만 막상 정말 혼자가 되고 나니 사정없이 외로워졌다. 나도모르게 ‘외롭다’, ‘심심하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 나로서 살아온게 아닌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딸로서만 살아온 것 처럼 말이다. 낯설고 새삼스러운 기분, 외롭고 외로울 정도로 외로운 기분이었다.


나는 갑자기 커진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게임도 다운받고 넷플릭스도 구독하고 웹툰도 결제하고 오디오북도 다운받았다. 코로나바이러스만 아니었어도 여행을 갔을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이렇게 비싼건지 왜 진작 몰랐을까. 이 평화로운 고독의 시간에 잔물결 소리에 귀기울이긴 커녕 이렇게 혼자여도 되는건지 불안해 하느라 잔물결 소리따윈 들을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갑자기 혼자가 되면 이런걸까,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여도 되는걸까, 모두가 가는 길로 발이라도 담궈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으로 그동안의 즐거웠던 내 삶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잘못 살아온걸까. 모두들 쓸모 있어지고 더 인기있어 지고 성공의 방향으로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나는 이렇게 아무 것도 쌓지 않은 채로 혼자 앞으로 남은 시간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번 거친 생각의 물결에 휩쓸리면 종잡을 수 없다. 어떻게하면 이 외로움을 잔물결 소리에 귀기울이며 지혜롭게 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외로움을 아주 잘 견딘 후 어느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꺼이 누군가를 섭섭하게 할지라도 혼자가 되어야만 한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시간을 갖고 오직 나만을 위한 무언가를 정성껏 고르는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내가 나로서 충분해 져야만 내 동생에게 좋은 언니가, 좋은 친구가, 부모님께 든든한 자식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러니 부디 당신, 외로워 달라고.


비싼 외로움 없이도 공허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잔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바다에 가서 소라껍질이라도 하나 주워와야 하나. 휴. 일단 돈을 써보기로 한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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