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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Ended Apr 02. 2022

똑똑하고 일 잘하던 여자 입사동기들 다 어디로 갔지?

당신의 후임으로 클론을 뽑지 마세요.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 시즌 1에서는 원 인터내셔널에서 근무하는 입사동기 네 명의 치열한 직장생활이 펼쳐진다. 네 명 중 유일한 여성인 안영이는 초특급 신입사원이다. 모든 부서가 탐 내는, 주인공 장그래를 비롯한 다른 동기들의 엄청난 조력자기도 하다


안영이가 계속 원 인터에 근무한다고 치자. 과연 세 명의 동기 중 (장그래는 시즌 1에서 계약 만료로 퇴사했으므로) 누가 임원이 되어있을까? 실력으로만 보자면 안영이가 당연히 1순위다. 하지만 안영이 상무 혹은 안영이 전무가 탄생할 거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윤태호 작가가 워킹맘 선영 차장의 일화에서도 그렸듯이 여성으로 직장에서 살아 남고 승진하기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현실 속에서도 여성 CEO, 여성 임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확한 수치와 통계를 근거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경험을 통해 이 현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워낙 두드러진 사실이다 보니 그 이유와 해결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나는 그 이유가 철저히 ‘현재 리더 포지션에 있는, 즉 현직 CEO나 임원들’에게 있다는 걸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째, 많은 리더들이 후임으로 자기와 똑 닮은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CEO나 임원들은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사람들이다. 오만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사실 하나만으로 자기가 지금껏 잘해 왔다는 것을 경쟁과 선발의 과정 속에서 알게 된다. 그러다 보니 후임을 뽑을 때 자신과 유사한 성격과 경험을 가진, 즉 자기 과거 모습을 빼닮은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안 그런 임원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CEO의 클론이 있다면 그 사람이 차기 CEO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게 승계 계획 (Succession Planning)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사진에는 닮은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남성들이 이미 장악해 버린 이사진에 그들과 ‘완전히 다른’ 사람인 여성이 껴 있는 걸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꺼운 천장을 뚫고 올라간 여성 임원 중에 남성 같은 이미지 혹은 업무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둘째, 어떤 리더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후임 (successor)으로 두기 꺼려한다. 물론 이는 위의 첫 번째 경우만큼 흔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에서 뛰어난 후임으로 인해 비교당하거나 자신의 부족함이 더 부각될까 봐, 혹은 차기 포지션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까 두려워서 더 잘난 사람을 키우지 않는 경우를 생각보다 많이 봐 왔다.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여성 리더들은 같은 직급의 남성들보다 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어찌 보면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일지 모른다. 만약 그 여성 리더들의 상위 직급에 있는 사람들이 그 못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면 그 역량 있는 여성들이 더 올라가지 못하게 할까 고민할 것이다. 이는 남성 리더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처럼, 힘들게 여성 임원이나 CEO가 된 이들이 마치 여왕벌처럼 자신의 잠재적 여성 경쟁자들을 숙청하는 모습도 종종 봤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그 원인 제공자인 ‘현직 CEO나 임원들’에게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먼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에 자신이 해 왔고 현재 하고 있는 방식이 당장 내일 그리고 내년에도 똑같이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 때는 말이야,’ ‘해 봤어?’를 직접 입에 담지는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지, 그 마음에서 비롯해 나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좋은 리더십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과거의 성공 스토리가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될 리 없다.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찍어 누르려고   주변 사람들이 그걸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자존감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나온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비교대상은 오로지 과거의 자신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따라서 (조금 세게 이야기하면) 객관적으로 우수한 사람을 인정하지 않거나 찍어 누르려한다면 그건 자기의 자존감이 낮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존감 문제를 떠나서라도 리더의 자격은 타인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리더 성비 불균형의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과 솔루션을 법과 제도 같은 시스템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문제가 워낙 고착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와 연결해서 사회적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등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적 해결은 여러 이해관계자가 서로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므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명의 주요 이해관계자, 즉 미래 여성 리더에 대한 직접 의사결정권자인 현직 CEO와 임원들만이라도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더 확실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이유와 솔루션 말고라도 ‘여자가 해 봤자 뭘 하겠어?’ 따위의 고리적 사고방식과 편견을 가진 사람들만 없어도 똑똑하고 일 잘하던 여성들이 퇴직하는 걸 보며 안타깝네 어쩔 수 없네 하는 상황은 줄어들지 모른다. 최근의 일반적인 조직문화를 보면 적어도 그런 사람들이 직장에 계속해서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기 때문에, 내년에는 후년에는 더 많은 유능한 여성 리더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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