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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Dec 23. 2020

아이에게 내 노후를 맡기려고 낳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딩크부부 난임부부가 되다'를 브런치북으로 만들어놓고 난 뒤 제안을 받았다. '열달후에' 라는 어플의 칼럼 코너에 내 난임 에세이를 업로드하고 싶다고. 우리동산의 영상도 재능기부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다면서 고료는 없다고 했다. 브런치북도 엄연히 저작물인데... 영상이야 유튜브로 연결되면 조회수가 올라가겠지만 글은 그런것도 아닌데다가 현재 인컴이 없는 내가 지금 재능기부 할 처지인가 싶었다.


글 업로드 과정에서 내 글에 다른 작가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작가분을 컨택했다가 불발되어서 나한테 요청한 걸 알게됐다. 그 사람의 난임일기를 나도 전에 봤었으니까. 담당자에게 작가명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도 그 어플을 통해서 난임부부들이 내 이야기를 보고 난임시술에 대해서 미리 알고 한편으로는 공감했으면 싶어서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딩크였던 내가 처음 아이에 대한 계획을 변경한 것은 남편이 아이를 갖고싶어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는 했다.  지금도 나는 일부 사람들처럼 아이를 열망적으로 갖고 싶어한다거나 여자가 결혼을 했으면 아이가 꼭 있어야지라는 진부한 생각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겼으면 하는 결정을 했으니 지체 없이 그 결정이 현실로 실행되기를 바랐던 건데 그게 내 맘대로 안되니 '짜증스럽다'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2년 가까이 지속되는 기다림에 열이 받았을 뿐. 지금은 원하는 대로 안되니까, 그리고 됐다 말았으니까 오기가 생긴 것 같고.


시술과정이 급박하게 돌아갈 땐 내 몸이 힘들어서 내가 왜 아이를 낳고 싶은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이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나니까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 조금은 욕심이 나는 것도 같더니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또 무덤덤하다.


얼마 전 시험관 시술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촌동생과 아이에 대해 런저런 얘기 끝에 동생은 딩크인 사람들은 댕댕이를 키우던데 언니는 6년 넘게 딩크였으면서 왜 동물을 안키우냐고 물었고, 난 똥 치우는게 싫어서 안키운다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사촌동생은 깔깔깔 웃었다. 이런 황당한 이유는 처음 들어본다며...


사람이고 멍멍이고 야옹이고 간에 남의 똥 치우는건 하기 싫었다. 일전에 회사 임원(사장 가족)이 본인 아이의 똥기저귀를 미혼 여직원더러 갈으라고 했던 얘길 듣고 그 앞에서 대놓고 경악했던 나다. 내 똥도 더러운데 남의 애 똥기저귀라니! (어린 아이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진짜 대단하다)


똥치우기가 싫은 것이 아마 내 딩크 선언의 10프로 정도 지분이 있을거다.




딩크부부였을 때 아이를 낳지 않으면 노후에 쓸쓸할 것이라는 협박을 많이 들었다. 특히나 배우자가 먼저 떠나면 의지할 데는 자식뿐이라면서.  남편의 부재를 못견딜 것 같아서 함께 가자고 하고있는 중이다. (아니면 내가 먼저 가든가)


그런데 그들은 알고 있을까? 편부모의 자식이 결혼시장에서 얼마나 하자품 취급을 받는지를? 이 건에 대해선 며느리병 탈출기에서도 한 번 쓴 적이 있다. 결혼시장에선 편부모에 대해서 이렇게나 부담스러워 하고 이렇게나 자식과 부모가 분리되어있기를 바란다.


사실 결혼시장에서는 편부모든 아니든 자식이 부모와 분리되어 있기를 바란다. 특히나 아들은 소유욕 강한 부모와는 완벽히 독립되어 있어야 자기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2020년 결혼시장의 정설이다.


배우자의 상실을 자식으로 보상받는다는 심리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식이 내 배우자가 아닌데. 물론 여럿이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 보다는 조금 나을 수도 있겠지만 배우자의 상실에 대비해서 애를 낳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이는 그 자체의 독립된 또 다른 사람인걸.


내가 별다른 변수 없이 일찍 죽지 않아서 맞이하는 노후엔 아마 자식들은 자기들의 세상을 꾸려나가느라 정신없는 나이일 것이다. 그 바쁜 아이들에게서 나의 쓸쓸함을 보상받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전혀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지금 내가 사는 것이 바빠서 부모님 댁 드나드는 것은 연례행사로 하는게 현실이니까.


그리고 온갖 게시판을 뒤덮는 결혼생활의 문제점은 고부갈등 장서갈등이 대부분인데 혹시 자식이 있어서 쓸쓸하지 않다는 것이 노년에 자식 내외랑 다투느라 또는 감정 싸움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결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 노후대비는 되어 있으신지에 대해서 체크한다. 만약 자식이 노후대비라면 형제가 많은지를 물어봐야 할텐데 아마도 여기서 쓰는 노후대비는 또 다른 뜻인가보다.


자식들에겐 노후대비가 잘 되어있고 유산을 많이 주시는 부모님이 좋은 부모고 나이 들어서 자식에게 손벌리는 부모님은 능력없는 부모 취급을 받는 것이 서글프게도 현실이다. 이런걸 보면 자식 키우는데 드는 돈을 내 노후 대비에 올인하는게 훨씬 나아보인다.


애초에 내가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에게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내 동생 역시 방방 뛰는 망아지같은 아들을 둘이나 낳아 키우고 있지만 그 애들이 나중에 자기에게 효도하면서 자신들을 부양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식이 노후대비를 해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자식을 키우는 일은 부부의 노후자금을 빼서 쓰는 일에 가깝다.


당장 아이가 생기고 자라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좁아서 이사를 해야 할 테니 주거비가 추가되고, 입이 하나 늘었으니 식비는 당연 추가될 것이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차도 바꾸어야 할 것이고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교육비가 들 것이며 나는 이삼만원 짜리 티셔츠를 입어도 별 상관이 없지만 내 아이는 학교가서 무시당할까봐 브랜드 옷이나 가방을 사주게 될 것이다. 지금도 나와 남편은 나이키 매장에 가서 운동화를 들었다 놨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사주게 되겠지. 꾸준히 아이에게 용돈도 줘야 할거고 그러다보면 아이 대학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혹시 유학이라도 보내달라고 하거나 아이가 예체능계로 진학하겠다고 하면 예상보다 더 큰 돈이 들지도 모른다. 지금 아이를 낳으면 환갑이 지날 때 까지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 될 것 같다.


이 얘기를 남편에게 하니 남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능력을 더 키워서 돈을 더 벌어올게.


심플했다...

혹시 대한민국의 가장의 무게를 짊어져보고 싶었던건가.


아이에 대해서 논의할 때면 나는 남편에게 늘 이야기했다. "너랑나랑 둘이 살면 둘이 벌어 풍족하게 살 수 있고 노후대비 하면서 안정적으로 별다른 변수 없이 살 수 있어. 그런데 왜 그 모든 편안함을 포기하고 아이를 가지려고 해?"


남편은 그냥 그 모든 편리와 편안함을 두고서라도 아이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자기가 다 책임질거라고. 저렇게까지 확신에 차서 책임을 진다니 나는 남편 의견을 존중했고 여기까지 왔다.


아이는 태어나서 5살까지 자기 몫의 효도를 다 한다고 했다. 그 때 까지가 제일 예쁘고 귀엽고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는 나이라고. 우리 주위에 아이를 키우는 집들이 대부분 갓난아기부터 5살 정도의 아이들을 키우는 집들이니 남편이 그 예쁜 아이들 모습에 홀딱 빠져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기도 했다.


특히 우리 다섯살짜리 첫 조카는 잘생겨서 얠 보고 있으면 아이 생각이 난다. 나눠주는 것을 원체 좋아하는 아이라 입고 있는 잠바가 예쁘다고 칭찬해 줬더니 나에게 벗어주려고 했다. 네껀 작아서 못입는다 했더니 이모한테 예쁜 잠바를 사주겠다고 했다.


너, 약속 꼭 지켜라? ㅎㅎ




요즘은 자식들이 부모 노후대비는 커녕 등골이나 안뽑으면 다행이라고 한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고 캥거루족들이 많아서 부모가 다 큰 자식 봉양하는 집들도 허다하다.


한편으로는 부모님 세대가 힘드셨다고는 하는데 어쩌면 가장 돈 많이 번 세대인 것 같기도 하다. 응답하라 1988 보면 예금 이자가 25% 밖에 안된다고 한다. 지금은 1프로도 어려운데 은행이자가 25%라니! 당시에는 직장 마음대로 골라서 들어가면 정년까지 꾸준히 다닐 수 있었고 아파트 값은 쑥쑥 올라갔다. 은퇴 후에는 연금 받아 해외여행 다니시면서 쉬신다. 업계에서는 은퇴한 60대가 가장 소비력이 큰 고객층으로 보고 실버 마케팅을 따로 할 정도다.


우리 세대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내 아이의 세대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우리는 부모님처럼 연금받으면서 사는 세대는 안될 지도 모르겠다.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얘기는 벌써부터 있었고 몇 번의 금융위기를 보면서 투자상품도 위험하다는 것을 많이 봐왔기에 우리 부부의 노후대비는 사실 막연하고 막막하다.


내 미래도 상상이 안가는데 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가 살게 될 세상은 더욱 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제는 사회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니까. 런 상황에서 아이가 노후대비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잠깐 임신이 되었을 때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이 아이를 보람 티비 같은 것이나 BTS 같은 연예인을 시켜서 돈 많이 버는 아이로 만들어서 나를 모시라고 해야겠다!


유산이 되고 보니 그냥 건강하게만 나와서 잘 크기나 해라 싶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시작할 시험관이 문제 없이 잘 진행되기를 바랄 뿐.


사람 마음 참 갈대같이 잘 흔들린다  :)


p.s 며칠간 또 상상임신 코스프레에 시달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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