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때 폭풍같이 지나간 유산 후 약 4개월이 흘렀다. 굉장히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고작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정체되어 있던 것 같은 작년과 달리 나름 바빴나 보다.
그냥 초기 유산이니 괜찮을 것이다 생각했던 몸은 나날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온갖 증상이 다 생기더니 결국에는 참지못할 골반통과 함께 생리가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먼저 시작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전에는 날짜는 제 때 시작을 했지만 오버나이트를 한시간에 하나씩 갈아대야 할 정도로 출혈이 심한 생리였다. 몸도 추스르기 전에(사실 괜찮은 줄 알았다) 일을 시작했던 터라 쏟아지는 피를 막으려고 탐폰과 대형 생리대를 같이 쓰면서 어지러워서 간신히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유산은 짦은 기간 스리슬쩍 지나갔지만 몸은 고스란히 그 충격을 견디고 있었던가 보다.
같이 시험관을 시작한 후배의 쌍둥이 임신 소식을 들었다. 어렵게 가진 아이니 축하한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냥 임신 된 사람들의 임신 소식에는 그닥 축하하는 기분이 안들었는데 같이 고생하다가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잘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시험관을 한 번 더 했으면 성공했을까 하는 생각도 불쑥 들었다. 인생은 삼세번이라지 않는가. 나는 두 번을 시도했고 두 번 다 실패했으니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했으면 혹시 성공이지 않았을까.. 더 땅파고 들어가기 전에 후배에게 물어봤다. '신선이야, 동결이야?'
후배는 동결로 성공했다고 한다. 그 대답을 들으니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냉동이 안나와서 계속 신선으로 실패를 한 것이었고 '신선은 너무 무리가 많이 가니까 동결이 안나오는 나는 어쩔수 없었다' 라는 일종의 면피를 할 구실이 생긴 것이었다.
실제로 시험관 카페에서도 신선으로 성공한 사람보다는 동결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덜 간 상태로 이식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과연 내가 삼세번째의 기회를 잡아보겠다고 또 신선을 했다 한들 과연 성공했을지...?
시험관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제는 또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한 번만 더 해보지?' 이다. 사람들은 참 남의 인생을 쉽게 이야기한다. 그 한 번만 더 해보는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시험관 하는 사람들만 아는 것일까.
저 말에는 나에 대한 일종의 비난이 숨어있다. 될 때 까지 해보지도 않고 두 번만에 포기해? 적어도 서너번은 해봐야 되는 것 아냐? 엄마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될 때까지 시도한다던데 넌 간절한 마음이 별로 크지 않았구나?
나도 안다. 난임 지원 비용은 적지 않은 차수를 지원하고 있고(물론 조건이 있고 나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은 정부지원대상이 아니다) 정부에서도 사람들이 그 정도 횟수의 난임시술을 하겠거니 해서 만들어둔 차수일테다. 나는 시험관 시술을 고작 '두 번' 밖에 하지 않은 여자 따위이며 쟤는 아이를 갖겠다더니 끈기도 없이 될 때 까지 시도도 안해본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돌려 까는 것 같은 그 무례한 말들이 나에게 수시로 쏟아졌다. 오히려 당사자(?) 인 남편은 시험관 안하겠다고 하는데 남들이 더 난리부르스였다.
경부암 검사를 하러 방문한 산부인과 의사는 기왕 시험관 시작한 거 한 번 더 해보지 나이도 있는데 왜 안하냐고 나를 나무랐다. 내가 시험관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시술을 더 안할거냐고 물었고 꼭 '시험관도 하다보면 결국 된다던데...'로 끝을 맺었다.
나는 저런 멘트가 싫었다. 그렇게 아쉬우면 당신이 하든가!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는 시험관을 안한다고 뭐라 하더니 이제는 시험관을 했는데 왜 더 하지 않느냐고, 기왕 시작한 것 끝을 보지 않느냐고 한다. 그럼, 아이가 계속 안생기면 난 폐경이 올 때 까지 시험관을 해야 하는 것인가?
졸지에 나는 끈기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지난한 시험관의 과정과 징그러운 과배란 주사와 질정과 내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우려하지 않고그저 시험관을 하다가 만 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보니 굉장히 서럽고 억울해졌다. 그런 말을 들은 날은 내가 왜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이런 딜레마에 빠져야 하나 싶어졌다. 누누이 말해왔지만 나는 그저 사랑하는 남편과 재밌게 살고 싶어서 결혼한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해왔던 시가도, 이제는 내 몸을 아작내고 있는 아이도 결혼 당시에는 나의 결혼 옵션에서 전혀 고려하지도,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이었다.
두번 째 유산이 되었을 때 신선 1차에서 어렵게 만들어냈던 냉동 하나가 있어서 그걸 써버리고 시험관을 완전히 종료하려 했었다. 하지만 차병원에서는 최소 3개월 정도는 쉬고 병원에 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연이은 신선 시술과 유산에 냉동 이식이 무리라는 의사의 처방이었다.
나는 그냥 빨리 남은 냉동 이식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었으나 최소 생리 3번 지나고 오라는 의사의 말을 뒤로 하고 '내가 다시 이 병원에 올 일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서울역을 지나왔던 기억이 벌써 4개월 전이다. 그리고 이번달, 열흘 빨리 시작된 생리가 끝나면서 의사가 말한 생리 3번이 지났다.
냉동 이식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지금의 대답은 No 다. 일단 7월이면 시작될 교직원 백신 접종에서 누락되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크다. 그놈의 혹시라도 임신일지도 모르니까의 무한루프 때문에 백신 접종기회까지 날려버리면 정말 화가 날 것만 같아서 남편에게 엄포를 놨다. 나 7월에 학교에서 주사 맞을거라고. 그리고 애써 다시 찾은 교직의 기회를 임신으로 인해 다시 중단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내 몸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학교에 계속 남으려면 결국 임신을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항상 좋지 않다.
나는 왜 시술 때문에 내 미래조차 이렇게 불편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은 시험관 후유증으로 몸이 계속 좋지 않으니 산부인과에 자주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병원은 전부터 나한테 시험관하라고 난리를 치던 주치의를 미처 바꾸지 못해서 꾸역꾸역 다니고 있던 병원이었다. 동네에 그 병원이 제일 크기도 했고, 같은 병원 내에서 의사를 바꾸는 것도 좀 애매했기에 그냥 가끔 가는 병원이니까 기분나쁜 건 잠깐 참지 뭐, 라는 생각으로 다니던 곳이었다. 그런데 진료 예약을 하려 하자 그 의사가 그만뒀다는 것이 아닌가?
안그래도 지난 번 진료 때 나보고 나이가 자꾸 드는데 왜 시험관 더 안하냐고 한 말에 딥빡이 와서 이번에 가면 담당의를 바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만 뒀다니 잘됐네. 전에 봐둔 선생님으로 바꿔달라 해야겠다 하며 찾은 병원은 AZ접종 지정기관이 되어있었고 원무과 앞은 노인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으며 덕분에 진료를 받아야 하는 배부른 산모와 갓난쟁이 업은 엄마들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 있어야 하는 난리통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냥 홑몸인 나는 당연히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되는 상황이었고.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예상보다 늘어지는 대기에 출근시간이 다급했던 나는 제일 빨리 되는 선생님으로 배정해달라고 했고 찍어뒀던 선생님은 대기 20명을 달리는 중이라 남자 선생님이 배정이 됐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후딱 진료 보고 출근해야지 싶었는데 그 선생님은 기존의 내 진료기록을 보고 역시나 시험관은 쉬고 계신거냐고 물었다. 또 시작인가 싶어서 퉁명스럽게 이제 그만할까 생각중이라고 했더니 뜻밖에도 본인 원하는 대로 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노력해도 그렇게 해도 안되는데 될 때 까지 붙잡고 있으면 너무 힘들지 않냐고. 없으면 없는대로 이렇게 검진 잘 받으면서 전처럼 잘 살면 된다고. 나도 모르게 "네?"라고 반문해버렸다. 그런 얘기는 첨 듣는 기분이었기에. 그것도 오늘 바뀐 산부인과 의사한테서? 다들 나보고 나이 더 들기전에 빨리 시험관으로 쇼부를 보란 말 밖에는 하지 않았는데?
진료실에서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들 나한테 왜 시험관 더 하지 않냐고 나무라기만 하는데 의료진이 나에게 더 이상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다니. 물론 그 의사는 내가 너무 지쳐보여서 그냥 한 말일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 의외의 멘트를 들은 기분이었다. 항상 산부인과에 가면 혼나는 기분이었는데... 촌스럽게 눈물을 떨구기 전에 후다닥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동안 다친 것은 몸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몸보다 마음이 더 크게 다쳤었던 것 같다.
될 때 까지 시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으니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다.
될 때 까지 시도하지 않으면 뭐 어떤가. 이번엔 될 것만 같아서 한 번만, 한 번만 더 해보자 하다가 정부지원차수를 다 쓴 사람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기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에 매몰되 가다 보면 결국 부부사이도 돌이킬 수 없이 나빠질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얼마나 남편과 많이 싸웠는지...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끔찍하다.
시험관 카페에 '저는 이제 시험관을 포기하고 이 카페를 떠납니다' 라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봤다. 나 역시 그렇게 글은 쓰지 않았지만 그 카페를 떠난 지 시간이 좀 지났다. 사실 처음에 그 글을 봤을 땐 그 글을 쓰기까지의 그 사람의 고통 따위는 모르던 때라서 남들처럼 그래도 끝까지 해보지...라는 생각을 했던 나였다. 내가 뭐라고 그들에게 될 때 까지 하지 않냐는 잣대질을 한 걸까. 부끄럽고 미안하다.
이젠 그렇게 떠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될 때 까지 시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 몸과 마음이 더 소중하니까. 그리고 아이가 없으면 어떠한가. 부부 둘이 잘 살면 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