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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Mar 19. 2021

결혼도 며느리도 처음이라서요

착한 며느리병 극복을 위해서

며느리병 이야기를 쓰면서 짧지도 길지도 않은 결혼생활 동안 참 별일이 다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냥 단순하게 이 남자가 좋아서 시작한 결혼이었는데 그 긴 시간동안 참 많이 다쳤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나와 이 남자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이렇게 큰 욕심이었던가. 다른 사람들은 결혼생활을 다 잘 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왜 이렇게 나는 힘들까.


제 주위에 유독 편안히 사는 사람들이 많고, 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고, 결혼을 아직 안한 친구들이 많고 해서 상대적 상처를 더 받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브런치나 인터넷에는 저보다 더 힘든 분들이 많아서 제가 그 분들께 위로를 받은 적도 많았거든요.


아니면 너무 내밀한 개인의 이야기라 지인이거나 친구인 경우에는 자기 얼굴에 침뱉기라 서로 더 잘 사는 척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괜찮다는데 저 혼자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낯뜨겁게 느껴져서 속으로 삭인 적도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삭이며 쓴 글이 벌써 스무편이 넘어섰고 이렇게 브런치 북으로 묶기까지 왔습니다. 매거진을 쓰는 동안 꽤 많은 글들이 다음 메인, 카카오 뉴스 메인에 걸리면서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결혼생활이 10년에 가까워 오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냥 처음부터 나쁜 며느리로 마음 먹고 싫은 소리와 불편한 요구에 귀를 닫아버렸더라면 내 결혼생활이 조금은 괜찮았을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부모님께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라지 않았습니다. 어른은 공경해야 하고 친구와는 사이좋게 지내야 하며 가족들과는 친밀하게 지내야 된다고 배웠거든요.


그렇게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혹시 나에게 어떤 불편함을 줄 때에 대해서는 저희 부모님은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워낙 성향이 온순하신 분들이었고 당신들의 자식들 역시 온순하고 순탄하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죠. 어릴 때 부터 '굳이 나서서 트러블 만들지 말아라'가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거나 무시해버리는 것 보다는 좋게좋게 넘어가고 내가 좀 참고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도 그리 말씀하셨고 나 하나가 참으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제가 병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입니다. 성향이 너무나도 온순하고 착하셨던 나의 친어머니는 어머니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보다 어린 30대 때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때문에 속으로 계속 참으면 암 걸린다는 얘기가 그냥 있는 것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했던 적 있습니다.


부모님의 인생 방식에 대해서 잘못됐다고 따지거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 분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셨고 그리 살아오셨고 손해는 좀 보셨지만 그래도 평생을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이니까요. '살다가 불편한 사람을 만나면 어떡해?' 라고 물었을 때 '그냥 무시하면 되지' 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 저는 그게 참 힘들었던가 봅니다. 제 타고난 기질은 부모님처럼 온순한 타협가가 아니었거든요. 저는 불편한 사람을 만나면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같이 가야 하는 관계라면 시비를 가려서 정리를 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방식이 맞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과 냉철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늘 딜레마가 있었고 그것이 결국은 제 결혼생활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부모님과 저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었고 상하관계 역시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아들과 동급이라면 부모 자식관계에 가까워야 할 관계인 것이 맞겠죠. 그러니 그 관계는 일방적인 명령하달의 관계가 아닌 관계여야 하는데 전 며느리가 된 후로 마치 상사와 부하직원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 내내 불편했던 것이었습니다. 우스개소리로 월급이라도 받았으면 좀 덜 불편했을까요? 아마 그래서 금전적으로 지원 많이 받은 여자들은 시댁 스트레스를 잘 참고 산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게 아닌가 봅니다. 그냥 부장님 모시면서 산다고 생각해버리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테니까요. 회사생활에서도 월급은 욕값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제 인생에 결혼도 처음이었고, 며느리가 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이라 생긴 시행착오 치고는 크게 아팠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꿈꿔왔던 행복한 결혼생활인 적도 있었지만 불시에 치고 들어와 할퀴고 지나가는 상처에 크게 다쳐 운 날도 꽤 많았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아이도 어쩌면 도망쳐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가끔 남편과 이야기 합니다. 아이가 여긴 내가 살 곳이 아닌가보다 판단하고 급히 떠나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착한 며느리병에서 벗어나서 조금은 더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보려고 합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고, 제 신혼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테고 반짝거리며 빛나던 결혼을 시작했던 우리의 30대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앞으로 40대 이후의 시간들이 제 앞에 있으니까요.


시부모님이 원하는 만큼 잘 하지 않아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해도 제 마음은 더이상 죄송스럽거나 불편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굳이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추려 하지도 않을거고요. 그리고 의도하지 않으셨더라도 저를 다치게 하는 상황과 말에는 그냥 가만히 참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이 땅의 며느리들은 결혼 시작부터 이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며느리들의 상황이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고 인륜지대사이고 어쩌고 하지만 그 말들이 다 며느리병을 유발하는 나쁜 말이라는 것, 이제는 압니다. 이러니 다들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낳고 출산율 0.98명의 초저출산 시대를 만든 것 아닐까요? 대한민국에서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이제 며느리병 극복을 위해서 다시 결혼을 정의하려고 합니다.

내가 행복한 결혼이 진짜 결혼이라고요.


*이 매거진은 브런치 북으로 변경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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