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부들은 살면서 갈등 상황에 놓입니다. 육아, 돈, 성격차이 등의 문제를 넘어서 도박, 빚, 주식, 게임중독, 외도 등등의 심각한 문제들도 있겠죠. 그런데 부부의 갈등 상황 중에서 가장 흔한 경우는 아무래도 시댁과 며느리의 갈등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며느리병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많이 받은 댓글 중 하나가 '도대체 당신은 왜 그러고 사냐' 였던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제가 대답 할 수 있는 한마디는 '저는 K-며느리였으니까요' 밖에 없겠네요.
앞선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느끼셨다시피 저에게 씌워진 K-며느리라는 굴레는 언제나 저를 을의 입장으로 만들었고 시부모님의 말을 거역하면 안되는 존재, 자기 의사를 밝히면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결국 저의 소심한 반항이 '연 끊기'로 돌아왔으니까요. 제가 며느리가 된 순간 부터 저에게 요구된 역할은 시댁 식구들과 잘 어울리고 양가 부모님께 효도하며 모두가 행복하고 화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부를 때 마다 달려가는 존재, 그리고 그걸 제가 조금이라도 저해하려 하면 돌아오는 반응들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저 역시 남편과 오랜 기간 싸워왔고 제가 생각한 결혼 생활은 이게 아닌데 라면서 자괴감도 느끼고 나는 그저 소소하게 당신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을 뿐인데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이었다고 하소연 해온 세월이 길었습니다. 물론 모든 시간이 지옥은 아니었겠죠.ㅎㅎ 아이러니 한 것은 남편과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참 슬프죠. 부부사이는 좋은데 그 가족들로 인해서 부부 관계가 깨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아, 물론 남편은 지금 제 마음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이젠 남편은 '우리집을 불편해하는 니가 이제 나도 싫어' 정도로 느껴진달까요. 하지만 슬프게도 전 아직 남편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줄 글이라도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면서 지내온 시간이 쌓이고 이혼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제는 지치는 그 시점에 부부는 마지막 관문으로 부부상담을 고려합니다. 사실 상담을 고려하는 부부는 그나마 희망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부부가 그 상담도 거치지 않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정신과 내원을 고려하던 와이프에게는(이미 병원을 다니고 있을 수도 있고요) 남편의 '같이 부부상담이라도 받아볼까' 한마디는 조금은 희망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습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사람이라고 한들, 지적 명망이 높은 사람이라 한들 가정사를 끌고 들어와서, 게다가 이게 본인과 자기 부모님의 문제인 경우에는 냉철한 사람이라도 객관적인 판단이 흐트러지는 것이 바로 부부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상담사의 말에 의하면 부부 상담의 사례에서 부부 중 한 명의 외도나 폭력, 도박 등의 부부 내부의 문제인 경우 상담을 진행할 때에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라 의외로 어렵지 않게 해결 방법을 찾아나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갈등의 원인이 고부갈등이거나 시댁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문제의 원인제공자가 상담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케이스이지만 또 서글프게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형태의 부부 상담사례라고 합니다.
다행인 것은 각 지자체별로 위기가정을 위해서 무료상담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하면 부부상담을 6회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고 추가로 진행을 원할 경우에는 2회까지는 회당 15,000원을 지불하면 되니까 상담비용이 굉장히 저렴합니다. (2020년 기준)
일반 부부상담센터나 크리닉에 등록을 하면 회당 15~2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부부상담의 경우 최소 5~6회는 진행을 해야 어느정도 가닥이 잡힙니다. 1회 상담으로는 부부의 현재 상황 파악하기에도 버거운 시간이거든요. 일반 업체를 통하면 최소 백만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한 것이죠. 물론 가정지원센터의 상담을 원하면 꽤 긴 대기는 감수해야합니다. 그렇게 상담을 원하는 위기가정이 많다는 것에 놀랍긴 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구에서 운영하는 상담은 전부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센터에 방문하지 않아도 되니 한편으로는 편할 수도 있겠네요.
다만 센터 상담의 경우 상담선생님을 내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만난 선생님의 나이가 이 분도 누군가의 시어머니이지 않을까 싶은 연배의 선생님이셔서 내심 걱정했는데 전문가는 역시 전문가시더라고요.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장 난감한 부분은 며느리병의 경우 부부갈등의 문제가 외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부부끼리의 문제라면 그 문제 요인을 제거하면 어느정도 해결이 진행될 텐데 시부모님과의 갈등은 갈등유발자의 일부가 상담에 응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해결이 매우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상담 진행자들이 다자간 상담을 진행하면 훨씬 효과가 빠르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만약 다자간의 상담을 원한다고 한들 진행이 될까요? 그 자리에 시부모님을 오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요?
이런 경우에 솔루션으로 나올 수 있는 부분은 부부 사이에서 남편의 역할을 강조해주는 것(무조건 아내 편 들어주기), 그리고 상담자는 아내가 받은 상처에 적극 공감해주는 것이 전부인 듯 했습니다. 그냥 저들이 나를 미워하게 내버려두고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버리라는 것이죠. 상담선생님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시부모님이 바뀌는 것은 어려우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본인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였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를 해결할 수 없으니 소위 상처를 입고 있는 사람의 멘탈을 강화시켜주는 겁니다. 그럴 수 밖에요. 원인제공자를 함께 상담할 수 없으니 상처입은 자의 정신 치료와 극복에 목적을 둘 수 밖에 없을겁니다.
전문상담사가 개입하면 부부간에 늘 싸움으로 번지는 서로의 속 얘기를 강제로 들어야 됩니다. 사실 이런 고부갈등의 문제 해결은 서로 대화가 안되어서 더 일이 커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기 부모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하는데 그걸 듣고 싶어하는 남편은 없잖아요. 그런데 아내 입장에서는 속이 안풀리니까 계속 그 이야기가 마음 속에서 입으로 나옵니다. 그럼 남편들은 항상 아내에게 핀잔을 하죠. '대체 언제까지 그 얘기 우릴건데. 사골이냐?' 남편 역시 자기집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듣기는 커녕 화부터 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상담중에는 '상대방의 말 끊을 수 없음, 끝까지 들어야 함'의 규칙이 적용되니까 듣기 싫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계속 들어야만 했습니다.
황당한 것은 아내가 백날 이야기한 것은 듣지도 않았는데 상담선생님이 아내가 한 말을 똑같이 했는데 그건 또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전문가의 의견이니까요. 이런 것을 전문가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지난한 과정에서 남편이 왜 그런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는지 끝까지 듣다보니 서서히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간 서로의 감정이 너무 힘들어서 각자의 이야기만 강요하고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상담이 완전히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진행될 상담의 양상도 어찌 될 지는 대충 짐작이 갑니다. 아마 며느리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이 될 겁니다. 며느리의 마음 속 방패를 단단하게 쳐서 방어에 주력하는 전법을 구사하는 것.
한편으로는 왜 부부가 이렇게 오랜 시간 들여서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화가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나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부부 사이가 깨질텐데.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게 되는 것이 부부상담 아니겠습니까. 긴 시간을 들이는 만큼 작은 해결법이라도 찾아야 겠죠.
부부상담에서 상담선생님이 백번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새롭게 만든 내 가족인 아내와 아이를 꼭 지키라고요. 부모님은 잠시 서운할 수도 있지만 아들이 계속 내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한 방향으로 가면 결국 해결이 된다고. 남편이 계속 가운데서 갈팡질팡 하면 모두가 힘든 시간만 길어진다고.
이 이야기, 저 역시 남편한테 꽤 자주 했는데 이제는 들어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