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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Mar 16. 2021

너희끼리 잘 살면 된다는 말의 역설


결혼을 하고 나면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희끼리 잘 살면 된다.' 저 역시 결혼 후에 양가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게 친정과 시댁의 뉘앙스 차이가 있는 이야기더라고요.


결혼 후 며느리가 된 제 입장에서 느끼기로는 이 '너희끼리 잘 살면 된다'는 말이 친정에서는 결혼했으니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이제부터는 부부가 알아서 잘 살아라'라는 말이었던 반면 시댁은 '우리와 함께 부부도 잘 살아야 한다' 였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완전 정반대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저희가 결혼하고 이 이야기를 딱 한 번 덕담처럼 말씀하셨는데 시부모님은 볼 때마다 자주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니들만 잘살면 된다고. 


문맥 그대로 이 문장의 내용을 보면 결혼한 부부끼리 알아서 잘 살면 된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유난히 간섭이 심한 시부모님을 만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희끼리만 잘 살면 된다시던 분들이 전혀 우리의 인생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딜레마를 겪어야 했습니다. 저는 문맥 그대로 받아들여서 남편과 잘 살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거든요. 주말마다 방문해야 했던 시댁, 자주 연락드리지 않으면 곧바로 연락이 뜸하다며 서운하다로 날아오는 며느리에 대한 비난 때문에 남편과 지겹도록 싸워야 했습니다. 요즘도 남편은 제가 본인 집 일이라면 덮어놓고 싫어한다면서 면박을 줍니다만 저는 그건 다 과거에 학습된 좋지 않은 기억에 의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부부가 부모님께 해야 할 기본 도리를 챙기고 나머지 시간에는 우리가 알아서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각자 생각하는 이 기본 도리의 범위가 달랐던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가족이 늘어 경조사가 두 배가 됩니다. 저는 이 경조사가 한쪽 집안의 경조사 * 2로 생각했고 결혼을 했으니 미혼일 때보다는 조금만 더 바삐, 경조사가 생기면 남편과 함께 참석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양가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몸을 분리하고 싶...), 명절, 김장(??), 연말연시, 제사(ㅜㅜ) 정도를 챙기는 것으로도 부부는 꽤 주말마다 바빠집니다. 혹시라도 부모님 생신이 같은 달에 연달아 있으면 연이어 부부의 주말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요.(저희 집은 명절과 양가 어머니들 생신이 같은 달에 다 모여 있습니다. 와우!) 여기에 친척들의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 등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부가 집안 행사를 챙기다 보면 152번의 주말 중 기본적으로 10회 정도의 주말은 가족행사에 사용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부부 입장에서는 평균적으로 월 1회는 양가 가족을 만날 일이 생기고 각각의 집 입장에서는 두 달에 한번 꼴로는 만날 일이 생기는 겁니다. 물론 이 조차 하기 싫으면 결혼하지 말거나 이민 가서 살거나겠죠.


바쁘신 시부모님을 둔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제 주위에 제 나이 또래 기혼자들의 부모님 연배로 봤을 때는 부모님들이 대부분 은퇴 이후 세대이고 일을 하시는 경우는 있어도 정치인처럼 바빠서 외부활동이 엄청 많거나 하신 경우는 별로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들 내외를 주말마다 호출하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요. 손주라도 있는 경우에는 더 자주 보고 싶어 하시기도 하고요. 여기서 주말 + a 가 발생하게 됩니다.  


요즘은 맞벌이가 대부분이라 5일을 일하고 주말 이틀을 쉬는 것인데 그 중 하루를 시부모님 방문에 써야 하면 나머지 하루를 친정에 가기에는 피곤하고, 만일 여기에 육아라도 겹친 상황이면 피로도가 더 가중됩니다. 며느리병에 걸린 며느리들은 어른이 부르시는데 안 간다고 하기도 그렇고 손주 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애가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이라 혼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그리고 그때 되면 그리 안 부르더라고요) 애만 덜렁 할머니 집으로 보낼 수도 없고, 주말에 좀 쉬거나 우리 가족끼리 나들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울려대는 시부모님의 호출 전화를 외면할 수도 없다보니 너무 힘이 듭니다. 분명 너희끼리만 잘 살면 된다 하신 것 아니었나요? 근데 왜 너희끼리만은 아니고 우리도 함께 같이 살자라고 들리는건 기분탓인지.


전 아이는 없고 그냥 남편과 주말에 쉬고 싶어서 일하는 5일 내내 휴식의 주말만 기다렸는데 이번 주말에도 또 시댁에 오라는 전화를 받으면 그 주 내내 그 스트레스가 가시지를 않더라고요. "지난주에 남편 사촌 결혼식이었는데 이번 주에 또 시부모님 댁에 가는 것은 피곤해요. 저 주말에 쉬고 싶어요"라는 말이 왜 그리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까요. 아마 우리 엄마가 이렇게 불렀다면 "나 피곤해!! 주중에 죽도록 시달리다가 주말만 쉬는데 왜 자꾸 불러! 나 좀 내버려 둬!!!"라고 했겠죠? 전 아무래도 착한 며느리병에 단단히 걸렸었나 봅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제발 우리 부모님처럼 그냥 꼭 만나야 할 때만 만나자고 하시면 좀 좋아? 우리 부모님은 나 일하느라 피곤하다고 주말에 쉬라고 배려해주시는데" 라면서 시부모님에 대한 서운함 차곡차곡 쌓여가더라고요. 그리고 왜 항상 시부모님들은 "주말에 시간 괜찮니?"도 아니고 "이번 주에 집에 좀 와라!"라고 명령조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 가족들은 '혹시 주말에 일정 있니?'라고 물어보시던데. 



https://blog.naver.com/bumodream/222236083018    이 책의 저자분은 딸에게 말씀하신 것이라 진심이셨을 듯...

너희끼리만 잘 살면 된다고 하셨는데 우리끼리 잘 살려고 했더니 서운해하시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부에게 주말은 매우 소중합니다. 자기 계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취미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여행을 다니는 경우도 있고요. 물론 가만히 쉬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말에 잘 쉬고 재충전을 해야 다음 일주일을 잘 보내는 원동력을 얻으니까요.


아마 대한민국 며느리들 중에 시부모님을 만나는 것으로 주말 재충전이 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애를 봐주시면 또 얘기가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애 키우는 제 동생도 시댁에 가는 것보다 그냥 남편이랑 애들이랑만 놀러 다니는 것 좋아하던데. 여하튼 남편이야 자기 집에 가는 것이니 본인은 편하겠지만 며느리들은 아니잖아요. 전 시댁에 다녀오면 주말에도 일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술을 좋아해서 금요일 저녁에 한 잔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들인데 결혼 초에는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집에 오라는 시부모님 호출이 너무 잦아서 많이 다퉜습니다. 그러면서 왜 매번 너희끼리만 잘 살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싸움의 9.5할은 시부모님 때문인 것 같은데.  


부부 싸움의 3대 원인이 '애, 시댁, 돈'이라는 것은 시부모님들도 아시면서 '우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는 어차피 서로 좋아서 결혼한 사람들이니 잘 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삽니다. "너희 끼리만 잘 살면 된다"는 멘트는 부부의 의사와 개인생활을 존중하는 부모님이 하시지 않은 이상 며느리에게는 간섭 내지 참견으로 들리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리 굳이 주문처럼 저 얘기를 할 이유도 없고요. 저 역시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린 알아서 잘 사는데 왜 자꾸 저런 얘기를 하시지?우리가 못 사는 것 처럼 보이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너희끼리만 잘 살면 된다고 자꾸 말 안하셔도 돼요. 그냥 가만히 두면 저희끼리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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