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많은 부부들이 고부갈등을 겪다 못해 결국 시부모님과 연을 끊고 삽니다. 부부라기보다는 며느리와 시부모님이 연을 끊고사는게 맞겠네요.남편을 매개로 가족이 된 사람들이 서로 이제 연결되기를 거부하고 살기로 하는 것이 '연 끊기'입니다.
며느리가 시댁과 연을 끊는 것은 착한 며느리병에 걸린 며느리, 그런 며느리를 마음대로 대한 시부모님, 그리고 본인의 부모님이 애틋하여 중간 역할을 하지 못한 남편의 합작품입니다. 여기서 기본전제는 '며느리를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쟨 왜 저리 유난이라니?'라는 시부모님과 '네가 그냥 한 번만 참고 어른들한테 맞추면 안돼?'라고 하는 남편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상대방의 '호의'라 해도 받는 사람이 그건 호의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자꾸 강요만 하면 상대방은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착한 며느리병에 걸리면 며느리들은 일단 참습니다. 시부모님이 어렵기도, 아직 친하지 않아 불편하기도 하니 내 속의 이야기를 시부모님한테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른인데, 그래도 시부모님인데 하면서 직접 이야기 할 수는 없다가 점점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결국 옆에 있는 남편에게그 화살이 향합니다. 이렇게 되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1차적으로 깨집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자기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라는 와이프가 달가울 리가 없거든요. 그렇게 서서히 부부 관계가 나빠집니다. 시부모님과 남편은 전혀 바뀌지 않고 며느리에게만 계속 맞추라고 하는 상황이니까 관계가 회복이 안됩니다.
그렇게 꾸역꾸역 참던 며느리도 사람인지라 결국은 어느 순간 폭발합니다. 이건 빨리 터지냐, 늦게 터지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차라리 착한 며느리병에 걸리지 않은 며느리는 그나마 낫습니다. 이미 본인이 뭔가 불편하다고 느꼈을 때 바로바로 이야기를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K-며느리들은 꾹꾹 참습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남편에 대한 원망까지 겹쳐지면서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이 터져나옵니다. 이쯤 되면 겉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정도 까지 왔을 때 며느리는 이젠 이혼해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들어서터뜨리는 것이니까요.
그럼 여기서 시부모님들이 '아이고, 내가 그 동안 너무 심하게 대해서 우리 며느리가 결국 쌓아둔 감정이 터졌구나. 내가 더 신경쓰고 배려해야 겠다' 라고 할까요? 아니요. 대부분은 이런 반응이 나오죠. '니가 감히 쌍심지를 켜고 덤벼? 내가 뭘 어쨌다고? 쟤는 왜 저런다니?'
말로 터지는 경우도 있고 그냥 시부모님이 갑자기(?) 툴툴대는 며느리 행동이 별로 마음에 안들어서 연끊고 살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너에게 그따위 말, 또는 이런 대접 받을 사람이 아니니 이제 우리 그만 보고 살자' 뭐 이런 류의 이야기가 오갑니다. 이 이야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내가 이렇게 화났으니, 또는 기분이 나쁘니 니가 냉큼 달려와서 내 마음 달래주고 손이 발이 되게 빌면서 사과해' 인 것 같습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이거 어디서 많이 본 멘트죠? 맞습니다. 남녀 사이에 여자가 화가나서 헤어지자는 말로 남자를 협박할 때 자주 등장하는 멘트입니다.
남녀 사이일때 남자가 마음이 남아있다면 얼른 쫓아가서 여자한테 빌고 여자는 못 이기는 척 받아주면서 관계가 풀리겠습니다만은 고부간에 이 얘기가 나오면 쉽게 풀릴 리 없습니다. 이미 며느리는 쌓일대로 쌓여서 터진거니 시부모님이 연 끊자한다 한들 시부모님한테 가서 '제가 잘못했어요' 라고 안합니다. 많은 경우 '그러세요'라고 하게 되는 거죠. 사실 생각해보면 며느리가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그냥 '시부모님이 보기에 딱히 별로 좋지 않아서, 내가 이만큼 하는데 너는 왜 하라는 대로 안하느냐, 우리 때는 너희보다 더 힘들게 시집살이 했다.' 등의 생각에서 파생된 괘씸죄가 적용이 된 경우가 많거든요.
문제는 이렇게 연을 끊으면 며느리가 매우, 굉장히 편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초반에는 끊임없이 그간의 쌓아둔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마음을 괴롭게 하거든요. 여기서 만약 남편이 '우리 부모님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네 진짜!' 라면서 전적으로 와이프 편을 들어주면 마음의 병이 빨리 회복되고 관계개선의 여지가 생기겠지만 그런 남편들은 일이 생기기 전에 이미 부모님과의 상황을 어느정도 컨트롤 했겠죠.
그러니 완벽하게 남편이 아내 편을 드는 연끊기는 없는데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나이 든 부모가 너무 안쓰럽지도 않냐면서 와이프를 세상 나쁜 인간으로 몰아갑니다. 이렇게 와이프 탓을 하고나면 어찌보면 이 난리가 모두로 인해 벌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유난스레 반응한 와이프 탓으로 돌려버린 것이니 다들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집니다.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나이 든 부모를 내가 어떻게 바꿔? 그리고 와이프는 원래부터 성질이 유난했어' 라며 회피 방어기제를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부모님은 며느리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강요나 말이 있어왔고 와이프는 원래 성질이 유난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와이프와 시부모님이 연을 끊었거나 끊기 직전 상태에 와있는 가정의 남편분들의 경우 잘 생각 해보세요. 자신의 부모님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언행을 하는 분들이었는지. 본인이 성질유난한 와이프에게 무슨 희한한 매력을 느껴서 결혼했는지.
원래는 모두가 다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남편을 매개로 만나서 한국적 고부관계 속에서 극한까지 치닫게 된 겁니다. 그들이 연 끊자고 드잡이하는 동안 남편들은 손 놓고는 혼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이 커지면 와이프 탓을 하죠. '니가 좀 맞추라니까. 다른 집 여자들은 잘 참고 사는데 왜 대체 당신만 이렇게 유난이야?'
연 끊기는 처음에 며느리로부터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시부모님들이 며느리나 아들에게 '이제 연 끊고 살자' 라고 통보를 합니다.
연을 끊으면 며느리들은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느정도 해방이 됩니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마음 불편한 시기만 잘 넘기면 크게 손해볼 것이 별로 없어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시부모님이 손해가 큽니다. 손주 못 볼 확률 높아지죠, 가족들 모임이라도 있을라 치면 며느리가 안 나타나는게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닙니다. 외아들이면 모를까 형제, 자매라도 있으면 며느리가 갑자기 왜 안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참 낯뜨겁거든요.
처음에는 동네방네 며느리 이야기하느라 재밌던 것도 슬슬 재미가 없어집니다. 친한 엄마들이 며느리 얘기 하는것도 듣기 싫고 오죽하면 며느리가 그랬겠냐는 편드는 소리까지 들리면 짜증이 납니다. 명절이나 가족행사라도 다가올라 치면 다른 가족들 앞에서 면이 안섭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아들에게 이제 슬슬 와이프 데리고 오라고 독촉하는데 이게 잘 안통합니다. 며느리들은 내가 정말 나쁜년이 되어야만 했나 싶어서 속만 좀 불편하고 나면 그 외는 좀 편하거든요. 가장 많은 다툼의 원인과 분리가 되고 나니 남편이랑 싸울 일도 별로 없고 가정도 좀 평화로워집니다. 그러니 시부모님은말 안듣는 며느리가 점점 더 괘씸해집니다. 그래서 가족들 볼 낯이 없다고 며느리를 또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애초에 연 끊자 한건 시부모님이었는데 이제는 다시 데려오라고 하니 며느리 입장에서는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해?'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상황까지 오면 여기서 또 남편이 문제가 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건데? 그냥 니가 좀 져주는 척 하고 같이 가면 안돼? 어른 그만 이겨먹고 고집 좀 그만부려' 라는 말을 꺼내면 다시 며느리에게는 도돌이표 지옥이 시작이 됩니다.
연을 끊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집은 없을 겁니다. 서로 불편한 마음으로 있게 되거든요. 며느리는 그동안 속끓임의 원인인 시부모님을 안만나니까 어느정도 마음은 편안하지만 며느리 역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괜히 우리 부모님 욕먹이는 것 아닌가? 싶은 마음이 한 구석에 있습니다. 명절이나 생신이 다가오면 이런 마음이 더 크게 듭니다. 아예 정말 부모랑 원수가 되어서 연을 끊어버린 것이 아니라 고부갈등이 원인이 되어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면 결국은 모두가 불행합니다.
여기에서 남편의 역할이 진짜 중요합니다. 부모님이 좀 너무한다 싶을 땐, 그리고 아내가 시부모님으로 인해서 상처받았다고 했을 때 남편이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그게 계속 문제가 됩니다. 나이 든 부모님이라 절대로 안 바뀐다고요? 아니요. 바뀝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상 외로 많은 시부모님들이 며느리가 아들과 결혼한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일종의 아랫사람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며느리를 다른 집 딸이라고 생각하면 대부분 해결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며느리 말은 잘 안들어줘도 아들 말은 듣습니다. 고부갈등이 적은 집들 보면 아들이 목소리가 큰 경우가 많아요. 아들이 의지를 가지고 부모님을 설득하면 결국은 해결됩니다.
시부모님이 며느리에게 또는 아들 내외에게 연 끊자 했을때 남편이 단단하게 와이프 편 들고 서 있으면 기세등등 하던 부모님도 결국은 누그러집니다. 아들이 이제 내가 만든 나의 가족을 보호하겠다는데 그걸 깨뜨릴 부모는 없으니까요.
간혹 시부모님들 중에 아들에게 '내가 이 나이 들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 라는 등의 부모님의 늙어감을 무기로 내세워서 감정적으로 공략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부모님이 나이 들어가시는 것 물론 자식 입장에서 너무 슬픕니다. 그런데 그러다 와이프는 암 걸려요. 이미 정신병은 왔을겁니다. 혹여 부부가 시부모님 때문에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부부 문제 때문에 헤어지는 것도 아니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상황까지 왔을 때는 와이프 마음의 상처도 큰 상황일겁니다. 가족이 되겠다고 남편의 손을 잡은 것 하나로 너무 큰 상처를 겪은 상황이잖아요. 부모님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혼을 했으면 이제 내 가족은 아내라는 것을 남편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마음이 풀려가면 끊긴 연도 다시 맞닿아서 마주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착한 며느리 하지 말고 할 말은 하는 것을 연습하고 시도해보세요. 쌓아뒀다 터지면 정말 큰일이지만 그때그때 해결하면 좀 낫습니다.(라고 하지만 저도 잘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