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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ul 08. 2020

50년대생 며느리와 8~90년대생 K-며느리

그들은 다 며느리였다

저는 80년대 초반 생으로참 이상한 결혼 프레임의 시기를 거쳐왔습니다.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넌 결혼이 늦었다면서 얼른 결혼해야 한다고 주위사람들이 난리였거든요. 여자는 30살 넘으면 안된다며.


이런 주변의 푸시에 28살에 가장 많은 친구들이 결혼을 했던 것 같습니다. 29살은 또 아홉수라면서 안하려다보니 결혼하려던 친구들은 서둘러서 28살에 제일 많이들 결혼을 했습니다. 이런 미신은 대체 왜 믿는 것일까요? 당시만 해도 여자는 서른까지 결혼을 못하면 낙오자 취급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30살이 넘었을 때 '요즘은 다들 결혼 늦게한다더라' 로 말이 바뀌었습니다. 서른 다섯 전에만 가면 된다고. 언제는 30살이 넘으면 큰일 난다면서요?' 서른다섯 전에만 가면 된다'는 지금까지도 통용이 되는 이야기 인 것 같습니다. 주위에 후배들을 보면 다섯은 안넘기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을 보니.


요즘은 하도 집값이 비싸고 비혼이 많은 추세라 결혼을 그렇게 푸시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 합니다만, 제가 결혼을 하고 보니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50년대생 어머니 세대의 기혼 여성들과 8~90년대생 저희 세대 기혼 여성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치관의 충돌이 이렇게 크게 나타난 세대가 없을테니까요.




일전에 남편 쪽 종친회 모임이 있다고 해서 저까지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거기에 왜 따라가야하는지 당최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을인 며느리는 시부모님 호출을 거역 못하고 주말에 나가야만 했습니다. 시아버지 고향 쪽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오셨더라고요.


파주에 들렀다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어르신 한 분이 어머님께 말씀하셨습니다. '남편 정년 퇴직했다고 밥 안차려주고 그러면 안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남자 어른들이 어머님께 맹공을 쏟아붓더군요. 남자가 일 안한다고 무시하면 안된다는 둥, 여태 벌어다 준 돈으로 잘 먹고 살지 않았냐는 둥...... 제가 듣기로는 그 분들이 그렇게 당하고 사시는 중인가보다...로 들리더라고요.


저는 그 말에 맞서 싸우고 싶어서 전투력 레벨이 막 용솟음치고 있었는데 남편이 막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제가 거기서 그런 소리 하시는거 아니라고 어른들과 맞짱을 뜨면 저 집 큰며느리 잘못 들였다고 욕할게 뻔한 상황.


어찌저찌 분노를 가라 앉히고 나니 어머님이 참 짠했습니다. 어른한테 이런 표현 안될 듯 하지만 그냥 그 때 마음이 그랬습니다. 어머님은 평생을 저리 사셨을 것 아닙니까?  




엄마가 저에게 시집가라 노래를 할 때 마다 전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결혼해서 행복해?"

엄마는 선뜻 대답을 못하셨어요. 그리고 제 등짝을 때리면서 때가 되면 여자가 시집가야지 쓸데없는 소리가 많다고 뭐라 하셨죠.


저희집은 큰 입니다. 할머니께선 상경한 큰아들에게 서울은 사람 살 데가 아니라며 못 올라간다시며 시골에서 꿈쩍도 안하시는 바람에 작은집에서 제사를 모셔야 했고, 저희 부모님은 매번 장손이 제사도 못 지내서 동생에게 맡긴 죄인마냥 발바닥에 불이 나게 시골에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때 먹은 멀미약은 냄새만 맡아도 지금도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아요.


제사를 모셔오고 나서 부터 장거리 여행은 사라졌지만 엄마는 제삿상 스트레스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엄마 입장에선 내 조상도 아닌데 단지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 집 제삿상 차리느라 허리도 못 펴고 전 구워, 생선 구워, 손님 맞이하느라 진빠져... 준비하고 치우는데 최소 1박 2일은 걸리는 이 대규모 행사를 때마다 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였을까요. 그나마 친척들은 다 지방에 있고, 우리집은 서울에 동떨어져 있어서 제사들은 집에서 간단히 지냈지만 친척들이 올라오시는 명절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습니다.


엄마는 저보고 늘 제사 없는 집 찾아서 시집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사랑 명절마다 상차려내는 것도 지긋지긋 하다 하시면서. 결국 엄마는 제사는 우리대까지만 지내고 애들한테는 넘겨주지 말자고 아빠랑 싸워서 결국 이기셨더라고요.

 



남존여비 사상에 치여서 산 세대가 50년대 생들. 바로 지금 우리 어머니 세대였습니다. 전쟁 세대에 태어났으니 어렵기 짝이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고 6.25 전쟁의 후폭풍을 극복하고 새마을 운동을 겪으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면서 살아온 세대. 그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 남자들은 일터에서 피와 땀을 갈아넣었고, 여자들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내조를 해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50년생들이신 분들은 오빠나 남동생 학교 보내느라 본인들은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분들도 있을 정도였죠. 직장을 다녔더라도 결혼과 동시에 퇴사해야 했고 능력과 관계없이 결혼하면 집에 들어 앉아 아이를 키워야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는 일찌감치 결혼해서 갖은 시집살이란 시집살이는 다 당한 분들이 바로 우리의 엄마들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시동생들 거두어 키운 분들, 애기 낳자마자 농사지으러 나간 분들, 시댁 식구들 뒤치닥거리 하면서 애도 서넛씩 키웠던 분들 등등 별별 여성들의 고난과 역경사들이 많습니다.


가장 끔찍한 일은 아들 강요로 인한 낙태가 당연한 시기였다는 겁니다. 때문에 80년대 후반생부터는 남자아이 대비 여자아이가 적은 성비 불균형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들 낳을때 까지 아이 낳으라고 해서 딸 셋인집, 딸 둘에 아들 하나인 집들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저희집도 딸 둘, 막내아들 하나입니다.


게다가 이 시기는 '가사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죠. 집안일을 비용으로 환산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가사노동을 급여로 환산하면 월 400만원 가까이 쳐주는 시대지만 그 시대에는 그런 것이 어딨나요. 여자는 그냥 집안일 하는 사람이었던 시절인데.  


그런 엄마를 보면서 자란 사람들이 지금의 8~90년대생 며느리들입니다.


여전히 남아있던 아들 선호 사상 때문에 어릴 땐 아들과 차별을 받으면서 컸지만, 그깟 남자애들쯤은 한 주먹에 처리할 수 있는 강한 여성이 되었던 아이들이 8~90년대 생이었고,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는 균등했습니다.


고등 교육이 여성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 많은 여성들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더이상 사회에서 남성의 보조 역할이 아닌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고, 나는 엄마 세대처럼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났으니 경제력을 가진 여성들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커리어를 단절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결혼 시기는 당연히 늦춰집니다.


그런데 이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맞닥뜨리고 나면 멘붕이 옵니다. 당연히 사회에서처럼 남자와 동등한 입장으로 설 줄 알았던 것이죠. '그런데 대체 왜 여긴 아직도 20세기 인 것이지?'


이런 며느리를 만난 윗 세대는 어이가 없습니다.

'내가 살면서 당해온 것 처럼 안 살게 해주려고 잘해주는데 얘들은 왜 내가 잘해준건 생각도 안하고 내가 뭘 어쨌다고 시짜만 나와도 거품을 물지?'




너무 많이 참아왔던 세대와,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 부정하며 자라온 세대의 충돌.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 만큼이나 이 두 세대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정서적 갭이 생깁니다. 여기서 가장 큰 피해자는 아마도 8~90년생 며느리랑 결혼한 남자들이 아닌가 합니다. 두 여자 사이에서 쥐어뜯길테니.


사회가 요구한 역할에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50년대생 며느리와, 그 사회가 잘못 되었다고 온 몸으로 깨고 나온 80년대생 며느리는 애초부터 화합할 수 없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K- 며느리들이 묻습니다.


왜 모든 명절에 시댁에 먼저가야 하나요? 두 명절 중 한번씩 번갈아서 각각 집 먼저 가는 것이 평등하지 않아요?

왜 제사를 지내야 해요? 조상덕 본 사람들은 다 해외여행 다닌다던데.

왜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하고 대접받는데 나는 시댁에서 일꾼인가요?

왜 사위의 도리는 없는데 며느리의 도리만 있나요?

왜 시는 댁이고 처는 가에요?  

등등.


이 질문을 꺼냈을 때 좋은 대답을 들은 며느리들은 거의 없을겁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렇다고 생각이 바뀌지 않는 어른들이랑 매번 싸울수도 없고 계속 참고 살자니 이건 아닌 것 같고. 저도 꽤 오랜 시간 딜레마에 빠졌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답이 없습니다. 둘 다 한발씩 물러서는 것. 아니면 한쪽이 완전히 지는 것.

생각해보니 딱히 좋은 결론이 없네요.


오랜시간 쌓인 고착화된 관습을 한번에 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식과 사회는 계속 바뀌고 있고, 언젠가는 8~90년대생 며느리들의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또 그 이후 세대의 며느리들과 갭이 생기겠죠? 하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고부갈등이 심각하진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K-며느리들은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는 법을 잘 알고 있거든요.


서로 내가 맞다고 싸우기 전에 내 생각을 너무 상대방에게 강요만 하고 있지 않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나쁜 관습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모두의 관계에 좋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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