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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an 21. 2021

고상한 옆집 어르신도 누군가의 시어머니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다 보니 본의아니게 남의 집 상황을 듣고 보게 되는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저희집도 다른집들에게 어느정도 가정사가 오픈되어 있겠죠. 복도식 아파트들은 환기한다고 방충문만 닫아두고 현관문을 열어두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혹 옆집에 아들내외가 올 때 손자들이 저희 집 앞에 서서 저희가 티비보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혼나고 옆집으로 끌려가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오래된 아파트다보니 각 집의 구성원들이 노부부, 신혼부부, 아기 하나 있는 집, 독신가구가 대부분입니다. 저희 집 옆에도 노부부, 독신가구들이 쭉~ 있죠. 아마 저희 층에 저희 집이 유일한 신혼(?)부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자주 있다보니 이웃분들과 종종 마주칩니다. 쓰레기 버리러가 가다가, 공원에 나가다가, 마트에 가다가도 마주치고... 서울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산다고 하는데 희한하게 여기서는 옆집 분들이랑 엄청 많이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오후 2~3시면 이 동네 할머니들이 매일 옆 집에 모이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간혹 음식재료도 가져다 주시고, 저희도 뭐 많이 사면 가끔 나눠드리기도 합니다.


https://blog.naver.com/ghkduddl3233/221119275815


주변 분들과 마주칠 때 마다 어르신들이니 저희도 깍듯하게 인사를 드리지만 그분들도 저희에게 굉장히 예의있게 대해주십니다. 이웃이니까요. 옆집 분들은 저한테는 늘 새댁이라고 부르십니다. 새댁이라고 불리기엔 너무 결혼 연차가 오래되어 들을 때 마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뭐... 그분들이 보시기엔 아이없는 집이면 신혼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며가며 인사하다 보니 엘리베이터에서 짧게 대화하는 경우가 많아 아마 저희가 난임병원에 다니는 것도 알고 계실겁니다.


요즘 집에 있다가 깜짝 놀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간혹 옆집에 아들내외가 방문 하는 상황에서 그 어르신들이 며느리를 대하는 모습을 보거나 대화하는 것을 보거나 들을 때 '내가 아는 그 분이 맞나?' 싶은거죠.


복도식 아파트는 복도에서 떠들거나 문 열어놓고 크게 말하면 옆 집에 다 들립니다. 대화하면 그 소리가 고스란히 옆집에 들려서 내 의사와 상관 없이 남의 집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에게는 그렇게 예의있게 말씀하시던 분이 며느리한테는 얘, 너 등등... 말투까지 완전 다르시더라고요. 한번은 뭘 가져가라 하셨는데 며느리가 그냥 간다고 했는지 '너는 가져가라 하면 들은척도 안한다'고 며느리에게 막 화를 내시더라고요. 방에서 책읽고 있다가 그 소릴 듣고 '아, 저분도 누군가에게는 시어머니구나'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저에게는 다정하고 교양있게 말씀하시던 그 분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옆집 분들을 보면서 저도 가끔 생각합니다. 나의 시부모님도 타인과의 객관적인 관계인 경우에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 이라는 평을 받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시부모님은 저에게 왜 매번 서운하고, 매번 뭘 하라고 강요를 하시고 결국 나에게만 불편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요? 이런 걸 보면 고부관계는 남보다도 못한 관계인가 싶습니다.


고부관계도 저렇게 서로 예의를 갖추는 사이라면 애초에 고부갈등이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어차피 시부모님과 며느리는 아들을 매개로 연결된 관계라 그 아들이 아니었으면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부모와 아들 관계가 주종관계나 갑을관계가 아닌데 왜 그 아들과 함께 왔을 뿐인 며느리에게는 갑자기 갑을 관계처럼 그 관계구조도가 변화하는 것인지.


저는 옆집 분들을 보면서 결론을 냈습니다. 며느리도 엄연히 타인이므로 옆집 어르신이 평소에 저를 대하는 것 처럼 기본적인 예의를 서로 갖춰야 하는 것이 맞는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아들의 부속물로 생각하니 결국 그게 태도와 말로 나타나서 결국 고부갈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왜 시어머니라는 타이틀을 가지면 갑자기 월권을 행사하고 싶어지시는 걸까요? 그 며느리는 그 집에서만 며느리 취급을 받는거지 밖에선 누군가의 귀한 딸, 일 잘하는 직원 또는 오너, 오다가다 마주치는 수많은 평범한 일반 여성일텐데요. 시어머니가 그 여성들에게 하대하거나, 본인의 입장만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감정이 서운하다고 화를 내거나, 제사나 집안일을 떠넘기거나 하는 일들 할 수 없잖아요. 단지 그 대상이 며느리니까 그렇게 할 뿐.


며느리는 시어머니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예의를 차리는 경우, 사실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잘 하시면서 왜 비단, 며느리에게만 그러시는걸까. 사실 며느리는 내 아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내 아들과 평생 사는 사람이라 더 조심해야 되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고부갈등으로 인해서 아들 부부의 사이가 나빠지면 어차피 아들 손해인걸요. 그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때문에 쌓인 불만을 누구에게 풀까요? 다 고스란히 아들에게 돌아갑니다. 부부 사이가 나빠지는것은 당연지사고요. 시부모님은 늘 너희들만 잘살면 된다시는데 항상 보면 부부가 못살게 만드는데 가장 크게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부부싸움의 가장 큰 3대 원인은 시댁, 자식, 돈이라잖아요.


며느리에게 과도한 간섭과 역할 강요를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아직 과도기에 계시는 분들이 많은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만, 낡은 악습을 계속 답습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리갈굼은 하지 말아야 될 나쁜 관습입니다. 내가 당한것에 비하면 요즘 애들은 진짜 살만한거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고통의 강도는 시대와 사람마다 다릅니다. 시부모님의 기준에서 잘해주는 것이 며느리의 기준에 불편할 수 있습니다. 저역시 같이 일하는 어린 직원들이 난해할 때가 많으니까요.


요즘 며느리들이 드세다고 하기 전에 시대가 바뀐 것에 너무 느리게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예의와 배려는 상대방에게 가장 빠르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좋은 방식입니다. 왜 이걸 며느리에게만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도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요즘 며느리들이 싸가지가 없다 하지만 어른 공경하는 법을 모르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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