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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ul 04. 2020

자식들의 결혼 생활을 지켜주세요

부모님의 욕심은 잠시 넣어두시면 좋습니다.

결혼하는 모든 신혼부부들은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인생의 반려자와 함께하는 우리의 오붓한 신혼 라이프! 우리 둘이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매일 헤어지기 싫어서 같이 살기로 했으니 돌아가기 아쉬워서 집 앞에서 머뭇머뭇 하는 일 없을거야. 우리 이제 매주 둘이서 신나게 놀러다니자!


우리 앞에는 행복한 꽃길만 있을야.


네. 아니더라고요. ㅎㅎ


 저도 주말만 기다립니다


결혼하고 나니 경조사가 3배는 늘어난 것 같고. 내 주말이 몽땅 사라졌습니다. 결혼 전엔 약속 없는 주말이면 퍼질러 누워있기라도 했는데,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매주 주말 호출하시는 부모님들 덕분에 마치 주 7일 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양쪽 집은 경쟁하듯 우리 부부를 호출합니다. 우리는 둘 다 첫째였고, 집안의 첫 결혼이었으니까요.


공평하게 양쪽 집 방문 횟수를 같이하자! 라고 하기에는 제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서 만만한(?) 우리집에는 가급적 꼭 가야할 일이 아니면 안갔습니다. 엄마는 집에 좀 오라고 했지만 우리의 아쉬운 신혼 생활의 주말은 1주일 중 단 이틀뿐인데 그 소중한 주말의 하루를 매번 거절도 못하고 시댁에 가야만했으니 그 남은 하루만이라도 우리 시간을 갖고싶었습니다. (엄마 아빠 미안해ㅠ)


피곤해서 집에 못간다고 하면 엄마,아빠는 내가 주중에 회사일 때문에 많이 지쳤나보다 라고 이해해 주셨습니다. 당시에 제가 다니고 있던 회사는 편도로 40키로가 넘어서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 넘었거든요.


주중엔 회사생활로 너덜너덜.

주말엔 시댁에 치여서 너덜너덜.

결혼을 했는데 그 곳에 부부의 낭만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만의 식탁이 갖고 싶어요


결혼을 하면 어설픈 솜씨로라도 우리끼리 음식을 차려서 다정하게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말마다 방문한 시댁에서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싸주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냉장고 속에는 먹지 못한 음식이 넘쳐나고, 그 많은 음식들을 처리하느라 제가 기대한 신혼생활의 낭만인 '어설픈 우리 요리'를 할 틈이 거의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남편을 굶길것이라고 생각하신 걸까요? 우리의 냉장고와 식탁은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으로 가득찼고 제 요리솜씨는 제자리 걸음이었습니다. (지금도 늘지않았습니다)


나도 이제 아내가 되었으니깐 내 살림과 내 요리가 해보고 싶어서 예쁜 그릇도 골라서 사고 조미료통도 사고 했지만 우리의 예쁜 그릇엔 어머님 음식이, 조미료통에는 유통기한 지난 조미료들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신혼 식탁은 시댁의 연장선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이가 약해서 뜯는 고기를 잘 못먹는데 어머님은 제가 이런지 모르셨는지 늘 남편이 좋아하는 LA갈비를 같이 먹으라고 엄청 많이 주셨습니다. 이러니 전 항상 얌체처럼 살코기 부분만 좀 잘라서 먹을 수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남편이 몽땅 다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남편이 LA갈비를 좀 무서워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냉동실에는 처치곤란 LA갈비가 있어요.


둘 다 직장생활 하니까 음식 챙겨주시고 싶었던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전 신혼이니까, 이 기간만이라도 어설퍼도 저희만의 식탁을 갖고 싶었어요.


엄마도 반찬을 해주겠다고 하셨지만 시댁에서 가져온 음식이 너무 많아서 처리하느라 고생인데 엄마까지 보태지 말라고 합니다. 엄마 역시 직장다니는 딸이 음식 할 시간 없을까봐 물어보신 걸텐데... 제가 나쁜 딸이네요 -_-


이제는 음식 하기가 귀찮아서 반찬 좀 해주셨으면 싶은데 안 물어보시네요?? ㅎㅎ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을 잔뜩 기대했다가 폭망한 저는 결국 결혼한지 두 달 만에 울며불며 남편에게 이렇게는 못산다는 말을 꺼내게 됩니다. 매 주말마다 시댁에 방문하면서 사는 것이 결혼이라면 나는 더 이상은 너와는 힘들어서 같이 못살겠다고. 결국 남편이 '중요 대소사 때 빼고 우리 부르지마. 음식도 필요없어' 로 정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 그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전화벨만 울려도, 카톡만 와도 심장이 두근두근했습니다. 또 집에 오라고 하시면 어떡해? 그렇게 저의 신혼생활은 스트레스와 눈물 바람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첫 인상이 오래가는지 시댁이 꽤나 불편하게 느껴지는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단 한 번 뿐인 신혼 시기, 둘이서 잘 지내라고 해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싶기도 하고, 얘랑 결혼 또 할 것도 아닌데 우리의 신혼은 싸우다가 망했습니다.


가뜩이나 신혼 땐 연애와는 달리 생활을 공유하는 결혼은 둘 다 처음이라 둘의 사는 방식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습관도 다르고 하다보니 그걸 맞춰 나가느라고 둘이서 투닥거리게 됩니다. 그렇게 다투다가 잠든 모습 보면 마음이 짠하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신혼 시기가 지나고, 아이가 생기고 그렇게 가족이 되어가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둘 문제로도 벅찬 시기인데 부모님들 주말 방문 문제까지 얽히면 갓 시작한 부부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내 품안의 자식이 잘 자라서 새로운 인연과 가정을 꾸린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해서 자주 보고 싶은 마음 들겠죠.  그런데 자식들의 소중한 신혼은 그들 일생에서 오로지 그 때 뿐입니다. 신혼은 길어야 1년이고, 이 시기가 지나면 둘이 노는게 재미가 없어져서 어차피 부모님 찾게 됩니다. 아기가 생기면 더 자주 찾게 되기도 하고요.


자식들 인생의 단 한번 뿐인 소중한 시간을 지켜주시기 위해서, 부모님들이 조금만 더 배려심을 발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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