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리스본에 올 생각은 없었는데

by 이재리

여행 계획 마지막에 리스본을 일정에 추가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 발견기념비였다.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난 자리에 엔히크 왕자 사후 500년을 기념해 세웠다는 이 기념비. 기존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역시 보러 오길 잘했어. 500년도 더 된 성당들보다 이 커다란 탑 하나가 내게는 더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컸던 발견기념비

이 기념비의 사진을 처음 본 것은 내 나이 28살 여름, 서양사강좌라는 책 속에서였다. 보통 한 번 본 영화는 웬만해서는 다시 보지 않고, 한번 읽은 책은 다시는 잘 보지 않는 내가 이 책은 4번 이상 읽었다. 남들에 비하면 자랑할만한 횟수는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는 특별했다. 서양사에 무지했던, 그러나 필히 전문가가 되어야 했던 내게 서양사의 묘미를 알려준 책이니까 말이다.


책 속의 한 페이지에 엔히크 왕자를 선두에 두고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과학자와 종교인들을 조각해 놓은 이 탑을 본 나는 당시 이 사람들이 가졌을 염원에 대해 처음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과거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서 과거의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을 상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또 불가능한 일인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회의를 품으면서도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과거로 돌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다.


28살로 살았던 그 해는 내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한 해였다. 더 이상 나의 무능을 부정하기 어려워졌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았다. 반차를 내고 혼자 바닷가로 달려가 한참을 울었다. 나는 언제까지 이 좁디좁은 인생에 발목 잡혀 살아야 하나요, 나 스스로가 특별하지 않으며, 실은 굉장히 하찮고 또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동시에 직시하며 살아야 하나요. 누구에게 물어도 답은 없었다.


그런 자괴감에 시달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나의 존재 이유를 묻고 또 물어도 답을 찾을 수 없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내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회사의 작은 부품에 불과하던 나는 기껏해야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영어 실력으로 입사했지만 원어민 뺨치는 후배들의 영어 실력을 들으면서 계속해서 작아지고 있었다. 일머리가 좋고 손이 빠르다고 인정을 받아도 내가 하는 것은 실상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저 작은 톱니바퀴였는데, 겨우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그동안 그렇게 아등바등 발악을 하고 방황했는지 의문스러웠다. 더 나아가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인정받으며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30대 중반만 넘겨도 결혼한 여자 선배들이 줄줄이 퇴사를 했다. 나라고 다를 리 없었다. 누구보다 특별히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런 일이라고 한들 그런 능력을 내가 갖추지 못했으므로.


Generalist가 아닌 specialist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참을 수 없는 지점에서 회사를 그만뒀다. 하면 할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고, 내 전문 분야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부터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꼬박 책만 봤다. 5개 153일 동안 1590시간의 공부량을 채우고 합격하며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그때는 합격 외의 모든 세상의 일이 무의미했다. 회백색의 세상. 나는 유채색의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그 모든 일이 벌써 몇 년 전이다. 그 시기를 견디고 버티며 이 앞에 서 있다. 새삼 지난날의 나에게 고마웠다. 자주 절망하고 좌절하고 또 절규하며 회의감을 느끼고 그 끝에 결단하던 내가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관광객에서 핸드폰을 건네며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사실 여행 중에 있었던 어느 관광지에서 보다도 많은 사람에게 여러 차례 사진을 부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지, 다짐하면서 멋진 포즈를 취했다.

멋진 연주를 하고 있던 그를 멀리서 한참이나 바라봤다.

발견기념비를 등지고 돌아와 베라르도 현대 미술관으로 향했다. 도로가 공사 중이기 때문이었는지, 지하 통로를 지나서 가야만 했는데 통로 맞은편 입구 쪽에서 한 할아버지가 멋있게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어둠 속 끝에, 밝은 빛을 받으며 노래하고 있는 그를 보니 새삼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생에 어두운 터널은 어쩌면 필연이지. 터널 끝에 밝은 세상이 무조건적이진 않지만, 밝건 어둡건 그 어떤 세상이건 우리는 계속 건너갈 뿐이지.


흘러가야만 하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꿈이니 희망이니 하는 것은 왜 주셨나요, 신을 원망하던 날들이 있었다. 나약한 운명을 타고난 우리에게 끝없는 절망과 불운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인데, 그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인데. 하나의 터널을 건너온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그건 아마도 어떤 터널 하나를 건너왔다는 자신감만으로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전히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들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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