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에그타르트를 좋아하세요?

by 이재리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엄마보다 에그타르트를 더 좋아하면 틀림없이 각오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 순간의 등짝 스매싱보다 무서운 몇 년에 걸친 불평과 투정을. 에그타르트 하나로 사람 간의 신뢰를 잃을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Pasteis de Belem의 모습. 파란색이 포인트다.

포르투갈 리스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팔기로 유명한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에 널린 것이 에그타르트를 파는 가게이긴 하지만 특히 유명한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압도적인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Pasteis de Belem으로 벨렘지구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위치해 있다. 나머지 하나는 Manteigaria로 카르모 수녀원 근처에 있다.


간밤에 Manteigaria에서 산 에그타르트를 먹지도 못하고 저녁 일찍 잠들어 버린 나는 그걸 챙겨 와 벨라르도 미술관에서 먹고 바로 Pasteis de Belem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다시 에그타르트를 사서 MAAT(Museu Arte Arquitetura Tecnologia, 예술 건축 기술 박물관) 앞에 앉았다. 개인적으로 파스테이스 드 벨렘이 덜 달고 담백해서 내 취향에 더 맞았다.

Pasteis de Belem의 에그타르트. 당연히 맛있다.

그렇게 두 개의 유명한 에그타르트 맛을 연속으로 보고 비교하고 있자니 문득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엄마와 함께 떠난 홍콩, 마카오 여행이 생각났다. 그때 우리 엄마는 생의 최저 몸무게를 찍은 상태였고 그 덕에 사진은 기가 막히게 예쁘게 찍혔으나 동시에 무리한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게다가 11월이래도 홍콩과 마카오의 여름은 한국의 그것에 비할 만큼 더웠으므로 빡빡한 일정에 엄마가 힘들어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어려움이 많았다. 먼저는 예산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서 돈을 모아 오기는 했지만 나뿐만 아니라 엄마의 여행 경비를 모두 책임지려니 시간이 갈수록 벅찼다. 생각한 것보다 여행에 드는 돈이 많았고, 그걸 아무 죄책감 없이 요구하고 더 많은 돈을 쓰는 엄마가 미웠다. 둘째는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엄마를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디를 가도 더워서 힘들어하고 또 시큰둥해하는 엄마 옆에서 나는 적잖이 지쳐버렸다.


게다가 자칫 잘못해서 길이라도 잃거나, 목적지를 찾지 못해 헤매기라도 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촉촉하게 났으며 그럴수록 나의 민망함은 엄마를 향한 원망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친구들이 입을 모아서 맛있다고 말한 마카오의 에그타르트는 꼭 먹고 싶어 여러 가게를 돌아다녔다. 유난히 쨍한 햇볕 아래에서 지친 엄마는 결국 화를 내며 너 그 빵 먹는 거 때문에 엄마가 곧 기절하겠다며 타박을 했다. 나는 일순 무안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우리는 홍콩으로 돌아오는 차와 페리 안에서 말없이 서로를 곁에 두고 떠오르는 수만 가지 생각을 정리할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함을 건네고 사과한 후 좀 더 서로에게 양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러나 역시 잘 되지는 않은 채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엄마와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여건이 안 됐고 상황이 안 받쳐줘서 그런 것이 더 컸지만 가려면 분명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MAAT의 전경. 건물부터가 건축 예술 그 자체다.

여행을 하는 도중 일정 상 필요한 경우 패키지여행을 하루 정도 할 때가 있다. 커다란 버스에 40명가량의 한국인들과 동행하게 되는데 엄마와 단 둘이 여행하는 딸들을 여전히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중엔 지난날의 나와 엄마처럼 투닥거리고 서로 감정이 상해 말을 나누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와 엄마를 떠올렸다. 왜 우리의 여행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까?


우리는 여행에 있어서 체력과 요구가 많이 달랐다. 나는 엄마 나이대가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가 여행하는데 어떤 체력적인 어려움을 겪는지 실질적으로는 알 길이 없었다. 나만해도 20대와 30대의 여행은 너무 다르다고 고개를 자주 젓곤 하는데 40, 50대의 여행은 얼마나 더 할까. 또, 엄마가 흥미롭게 느끼고 여행에서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은 나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단적으로 엄마는 그 빵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즐겁게 여기는 예쁜 카페 가기에도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엄마는 케이블카 타는 걸 더 좋아하고, 예쁜 꽃 냄새 맡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니 우리가 여행을 가기 전에 앞서 이런 것들을 고려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여행 계획을 짤 때 엄마에게 선택지를 주거나 호불호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여행이었고, 철저히 내가 계획하고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여행이었기에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엄마와 새로운 여행을 계획해야지. 그때는 예산도 일정도 엄마와 공유해야지. 모두 내가 감당할 필요는 없으니까. 모두 내가 감당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상대방을 미워하겠다는 다짐이 따라오는 것이니까. 코트와 바지 곳곳에 묻은 에그타르트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일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24시간 교통권을 끊었으므로 마음껏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아센소르 다 비카에 도착했다. 경사진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교통수단인 푸니쿨라를 타고 5분 정도 오르니 리스본 하면 가장 유명한 그 장소, 그 장면에 다다랐다. 이것이 내가 리스본에 오기로 마음먹은 두 번째 이유였다. 막연한 여행을 꿈꾸던 시절에 가슴속에 고이 담아뒀던 세상의 풍경 중 하나, 다시 한번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다음 여행에선 혼자가 아닌 엄마와 함께 이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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