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선과 그 속의 담긴 의미를 무시하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게 있어 사람들은 언제나 조금 더 날 서있어. 그들이 나를 용인해 줄까?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 그러니까, 내가 말이야. 너 말고 나.
아무도 없는 6인실 숙소에 홀로 침대 위에 누워 한참을 자고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어갔다. 몸은 한결 가뿐했다. 마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누워 있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 며칠 나는 제대로 된 식사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어쩌면 그래서 아픈 것일 수 있다고 말이다. 잠에서 깨자마자 구글 맵을 켜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그러나 평점이 높은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리뷰 속 문어 요리가 아주 맛있어 보이는 집을 발견하고 일종의 마음의 결정을 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Bar casa de modena로 세비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세비야 대성당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크게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으므로 어서 메뉴를 달라고 재촉하고, 음료 메뉴판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아주 멋진 식사를 하고 싶었다. 리뷰 속 사진에서 봤던 문어 요리를 시키고 샹그리아도 한 잔 시켰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계속해서 나의 메뉴를 훔쳐보는 게 느껴졌다. 물론 그들이 훔쳐보는 게 홀로 남겨진 문어 다리인지, 홀로 밥을 먹는 동양 여자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내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외로움을 너무 잘 타.”, “혼자서 밥 먹는 게 뭐가 어때서?”, “너는 뭐든 혼자서 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해.” 지금이야 그의 말이 고깝게 들리지만, 그때는 그의 말이 진심 어린 충고처럼 느껴졌으므로 나는 최대한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었다. 그가 군대에 가고 얼마 되지 않아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국내 여행을 일주일간 떠났고 그 내용을 그에게 편지로 전달하고, 잠깐 왔던 전화에서 그에게 칭찬을 받고 좋아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여행을 진심으로 즐겼었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해 두고, 그때 혼자 먹었던 밥이 얼마나 목에 메였었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여행을 시작한 첫날,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다가 도저히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 아무 분식점에 들어가 김밥 한 줄을 시켜 먹었다. 가게 안에는 나 말고도 적지 않은 사람이 각자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각자 알아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던지. 김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조차 없었다. 그 후 그 여행 내내 나는 동행을 만난 경우가 아니라면 길거리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혼자 밥 먹는 걸 이상하게 보는 우리나라 문화가 이상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다 큰 성인이라면 혼자서 먹는 밥쯤이야 일상처럼 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과 이를 온몸으로 믿고 행동하는 것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나는 ‘혼밥’을 향한 잘못된 시선이 나쁜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매번 혼자 밥을 먹을 때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다. 핸드폰에 열중하는 척을 하거나, 혼자 먹는 밥을 즐기는 척 오히려 의연하게 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을 너무 의식하는 성향이 문제일 가능성이 컸다. 유난히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향도 잘 받았다. 어떤 식이냐면, 숙소에서도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서 느지막이 준비해서 최대한 늦게 나가 최대한 빨리 돌아오고 싶다가도 아침 일찍 나가 밥 늦게 들어오는 다른 한국인들을 보며 내가 재미없는 여행을 하는 중인가 곱씹는다. 오히려 경쟁 심리가 생겨 더 일찍 나가려고 하고 더 늦게 들어오려고 한다.
먹을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가도 여행 중 만난 누군가가 여기 젤라토가 그렇게 맛있대요, 하면 추위를 뚫고서 그 젤라토 집으로 향한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점은 젤라토 집으로 가는 내내 원래 나도 여기 젤라토 궁금하기는 했어, 하고 스스로를 속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기만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걸까?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즐기는 여행을 추구하다가도 다른 사람 여행기 속의 빡빡한 일정과 내가 가보지 못한 관광지가 멋있어 보이면 금세 초조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첫 남자친구의 말을 잘 들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에 불과했을지도 몰랐다.
문어를 모두 뱃속으로 집어넣고 마지막으로 샹그리아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여행길에서 만난 동행자들이 나와 있는 것이 재미없지는 않을까 초조해하기보다는 나 스스로 여행 자체를 즐기는 자세를 먼저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는 메트로폴 파라솔에 가기로 결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굳이 10유로씩이나 주고 전망대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티켓을 구매했다. 나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좀 더 건축물에 관심이 많으니 어쩌면 매 도시마다 방문하는 성당보다 이 건축물이 더 가치 있을 것 같았다.
표를 받아 들고 바로 전망대로 향하는 입구를 찾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확실히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아득히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세비야의 끝이 보이는 넓은 시야와 더불어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배로 느껴졌다. 마침 해가 지기 시작했고, 분홍빛 일몰이 더해지면서 환상에 가까운 광경을 자아냈다. 새삼 이 여행의 목적이 떠올랐다. 나 자신을 아는 것,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는지 그런 것들을 알고자 시작했고 이 결정들 끝에 나는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정교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고 메르토폴 파라솔 사이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조명이 켜졌다. 그 색이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장관이 펼쳐졌고, 나는 그 위에 끝없이 오래 앉아 꽤나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다. 비록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이 아마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마치 그렇게 하기로 정해진 것처럼 어떤 의지도 없이 자연스레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조용히 귀에 꽂았다.
새삼 첫 남자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표현 방식은 잘못 됐을지언정 혼자 인생을 사는 법을 아는 것은 확실히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사실 남들과 함께 있을 때도 좋지만 혼자 있을 때 그 어떤 충만함을 더 잘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았다. 비로소 홀로 존재할 때 세상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은 혼자라는 명제 앞에서도 의연해질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이 세상에 여행 온 한 사람. 춤을 추며 나아가야지. 세상의 모든 면을 탐구해야지. 모든 순간을 내 속에 담아야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인생을 그리고 또 어떤 여행들을 혼자서 계속하지 않을까,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여행 중에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를 몇 번이고 말하며 재밌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저 흐뭇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불안해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고, 나를 다독였다. 이런 건 누군가 해주지 않더라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