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우리네 인생은 그저 할 일, 할 일 그리고 다시 또 할 일. 모든 게 to do list로 요약될 수 있는 삶. 여행에 와서도 이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보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오늘은 그게 조금 지겹던 찰나였다.
어제 아픈 몸으로 2만보를 넘게 걸은 나 자신이 새삼 한심스러웠으나, 그마저도 새벽 6시에 기상해 버리는 바람에 안온하게 살기는 글렀다고 혀를 차며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일찍 잠드느라 쓰지 못했던 일기를 쓰고 다가올 하루를 계획했다. 생각보다 세비야는 크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서 꼭 가보라고 했던 도시치고는 맹숭맹숭하게 느껴졌다. 오늘 살바로드 성당과 세비야 대성당을 묶어서 보고 나면 세비야 미술관이나 현대 미술관 정도의 선택지가 남았다. 다들 이 작은 도시에서 대체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까?
다행히 8시쯤엔 방으로 올라갔다. 숙소 방에는 막 들어선 나를 제외하고 흑인 여자 한 명만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는 전날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하는 바람에 굉장히 심상해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도시인데 여전히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구나, 나는 아마 닿지 못했을 무심한 위로를 건넸다. 그는 다행히 오늘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며 시원스럽게 떠나버렸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았고, 컨디션이 저조한 날에 무리를 했다가 몸 상태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핑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1시가 다 되어서야 배가 고파져서 숙소를 나와 살바도르 성당으로 향했다. 살바도르 성당과 세비야 대성당은 티켓을 통합권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보통이라 대부분 두 곳을 한 날에 묶어 관람한다. 다만 세비야 대성당에서 티켓을 사려면 꽤나 긴 줄을 서야 했기 때문에 살바도르 성당에서 미리 통합권 티켓을 사고 빠르게 관람을 마쳤다. 이렇게 하면 세비야 대성당에서 따로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어 편했다. 결과적으로는 두 성당 모두 크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너무 많은 성당을 본 탓이었다. 특히 유럽 여행을 하게 되면 어느 도시를 가든지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성당이 있어서 필수 코스처럼 들리기 마련인데, 보다 보면 그 성당이 그 성당 같고 크게 감명스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기대했던 세비야 대성당마저 성당의 중요한 공간은 모두 철창을 쳐 놓아서 제대로 감상하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오렌지 정원 안에 풍기는 향긋한 냄새가 좋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제 뭐 하지? 미술관을 가도 똑같을 것 같았다. 지난 도시들에서 이미 많은 양의 미술품을 감상한 탓에 그 작품이 그 작품처럼 느껴지는 경지에 달했다. 그렇다고 메트로폴 파라솔을 또 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여행 도중 만난 동행들에게 많이 추천받았던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세비야는 자전거 도로와 공용 자전거 서비스가 정말 잘 되어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여행자라도 하루치 보험을 들고 하루 동안 자유롭게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었다. 비록 30분마다 자전거를 반납했다가 다시 빌려야 했지만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자전거를 한 번에 30분 넘게 탈 수 있는 체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간단히 먹물 빠에야를 해치우고 근처를 걷다 보니 어렵지 않게 세비야 공용 자전거를 찾을 수 있었다. QR코드를 찍어서 관련 어플을 깔고 결제 수단을 등록하고 빌리려는 자전거의 번호를 누르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자전거가 빠져나왔다. 자전거 자체를 타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 꽤 설렜다. 처음엔 차도와 인도를 번갈아 가면 헤매다가 큰길로 나서니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와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걸어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세비야 강 건너 반대편 지역으로도 이동해 봤다.
한참을 이동하고,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시 대여하기를 반복했다. 자전거마다 안장의 높이도, 체인의 부드러운 정도도 다 달라 마치 뽑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엑스포 건물을 지날 무렵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느껴져 서둘러 근처 커피 전문점을 검색해 들렀다. 좋아하는 음료를 사서 앉아 해갈하고 있으니 현대 미술관이 근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이른 방문을 고려했던 장소 중 하나라 슬금슬금 걸어갔고, 금방 도착해 미술관 외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미술관 건물 맞은편에는 꽤 키가 큰 올리브 나무가 잔뜩 들어서 정원을 이루고 있었고, 올리브의 색과는 대조를 이루는 미술관의 하얀색 건물들이 크고 길게, 꽤 멀리까지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오래된 나무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조금 더 멀리 걸어 나가자 대학교 건물이 함께 서 있는 게 보였고, 커다란 문을 통과하고 나니 바깥으로 널리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 여기가 좋겠다. 성큼성큼 걸어가 작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더 이상은 자전거고 뭐고, 그냥 좀 쉬고 싶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새삼 주변이 너무도 고요했다. 근처를 지나는 차 소리 하나 없이 마치 시간을 여행해 과거로 돌아와 현대 문명과는 동 떨어진 어느 시기에 안착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멀리서 너무 차갑지 않은 바람이 불어왔다. 여행을 하는 내내 너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남는 게 시간이라 끝없이 자아성찰을 했다. 간혹 지긋지긋한 자아검열의 틀에 갇히기라도 하는 날엔 지난날의 내 과오가 끝없이 떠올랐고, 새삼 외롭고 아련해지는 날엔 인생 리셋 버튼을 눌러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상상하고 고민해야 했다.
인생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좋은 사례와 근거와 문장들로 나열되고 평가받아야 하는 리포트처럼, 서둘러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가치가 있는 경험에 투자하고 더 알찬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누가 와서 왜 젊음을 낭비하느냐고 따져 물으면 서둘러 나만의 항변을 해야지, 하며 변명거리를 만들어냈다. 한 마디로 고달팠다. 여유를 모른 채로 태어나 살아온 과거가 여전히 긴 줄이 되어 내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마저도 숙제처럼 하려고 하다니, 언제까지 어리석을지 의문이었다.
서둘러 머릿속을 비웠다. 인생에는 어느 정답도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이런 것에도 연습이 필요할 줄 몰랐는데, 다른 어느 작업보다도 많은 연습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인생을 즐기라는 말, 누군가는 마음 편하게 어느 광고 속에서 우습게 말했을지 모르겠지만 사는 게 참 각박한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임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계속해서 즐기는 연습을 한 끝에 진정 즐기는 수밖에.
한 시간가량이 흘렀을까,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들 그늘 아래에서 나처럼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그 사이를 손잡고 산책하는 연인들도 보였다. 멀리서도 그 흥분의 정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누구도 태어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진 못하겠지. 다만 자주 가만히 멈춰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자고 다짐했다. 잠시라도 지금, 여기, 당장 나에게 집중하는 버릇을 들이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위의 시간을 고이 모아 바람에 날려 보냈다. 딱 그만큼 내 영혼이 가벼워지길 기원하며.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세비야 대성당 근처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 FIVE GUYS에 가서 의미 없는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에 가서 현지식을 즐기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졌으니까. 발걸음이 한층 더 가벼워지는 걸 느끼며 천천히 다시 자전거를 찾아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