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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은지 Feb 22. 2016

8평짜리 구글의 탄생 (feat.신길 재개발지구)

재개발지구에서 시작한 작은 광고회사 이야기

우리의 상황은 이랬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역시나 세상은 만만찮았다.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같이 이야기 할 사무실, 컴퓨터를 놓을 책상과 의자 등이 필요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마련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재개발지구에 뿌리내린 8평짜리 구글

우리는 돈이 없었다. 사무실은, 신길 재개발지구에 곧 헐릴 예정인 빌라를 보증금 없이 30만원에 3개월 임대하기로 했다. 책상은 3만원, 의자는 4만원. 인터넷으로 조립식가구를 주문해 공간을 공간을 채웠다. 경영지원팀은 없었다. 우리는 조직이니까 4대보험도 들었다. 가구 조립부터 인터넷, 팩스까지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했다. 조직에 있을 땐 생각치 않았던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회사를 나와도 야근은 필수, 24시간이 모자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무리하지 않고, 담백하게.

우리는 최대한 담백하게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 할 때 최대한 거창하게 시작을 하곤 한다.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일단 몸이 아팠고(나는 그당시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동업자는 갑상선 호르몬 수치 이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가난했다. 가난한게 컸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서 최대한 우리의 힘으로 차근차근 준비할 뿐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여유로웠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맡은 클라이언트가 2개였고 오롯이 내가 전담하는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클라이언트가 2개인 건 똑같았지만, 총무/인사/재무부터 영업까지 모두 우리가 해야만 했다. 몸은 하난데 일은 여러개였다. 그만두고 여유롭게 지낼 거라는 착각과 달리 우리는 업무적 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나와 내 동업자는 자평하곤 한다.

부엌과 일반 공간으로 분리된 태초의 <셜록컴퍼니>
나름 헬스기구(짐볼)까지 있다.
번잡한 광화문 달리

여유롭던 나날들


하늘이 보이는 바깥 풍경.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이 항상 보였다. 광화문과 다른 모습이랄까
사무실 근처에서 항상 쉬고 있던 고양이
사무실은 개똥밭

출근길은 늘, 똥밭이었다. 유난히 길바닥에 똥이 많았다. 개똥인지 고양이 똥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똥밭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개도, 고양이도 많았다. 모두 주인이 없는 떠돌이었는데 그 모습이 깨나 여유로웠다. 아파트나 도심가에서 흔히 보는 고양이는 '도둑 고양이'로 불릴 만큼 은밀하고 기민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특징인데, 이곳의 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절대 달리는 일이 없었다. 차 밑으로 숨는 일도 없었다. 당당하고 편안해보였다. 평상에서 수박을 먹는 할머니들도 이따금씩 고양이를 발견하면 한조각씩 던져주었다. 고양이는 수박을 그늘로 가져가 핥으며 더위를 식혔다. 우리는 그런 고양이들처럼 이곳에서, 안락한 마음으로 3개월을 보냈다.

힙합으로 라디오 CM 캠페인송을 작사하고 있는 C모양
역사적인 첫 클라이언트

우리의 첫 클라이언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었다. 나라장터에 사업자를 등록했고, 우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외주용역을 찾아 경쟁PT 준비를 했다. 회사에서 할 수 없는 '드립'과 '끼'를 발산한 아이디어를 마구 냈다. 입찰을 했고, 공정한 심사 끝에 우리가 됐다. 레퍼런스가 하나도 없는 기업이 선정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첫 클라이언트는 정말 소중했다. 레퍼런스가 없는 기업이라 걱정하는 클라이언트의 우려를 보란듯이 증명하고 싶었다. 정말 뜨겁게 온전히 우리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하루를 바쳤다. 회의 시간은 30분이면 충분했다. 문제가 있으면 최대한 바로 해결하려고 했다. 의사결정은 빠르게 진행됐고, 일은 딜레이 없이 진행됐다. 전에 있던 회사와 같은 로직의 온라인 이벤트를 진행하더라도, 결과는 다섯갑절이나 높은 기록을 했다.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았다. 

라디오 녹음을 하고 있는 힙합소녀 육지담양. 교복을 입고 녹음을 진행했다. 상큼상큼
상처뿐인 시작, 그래도 괜찮아

영업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어리고 젊은 여자가 영업을 하면 대부분 부정적인 시선으로 돌아와 사회의 쓴맛만 맛볼 뿐이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서 서른다섯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대신 실력으로 증명할 수 있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경쟁PT로 일을 따내기로 했다.  이사람 저사람에게 많이 이용도 당하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다. 인생수업비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험난한 일들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사무실은 곧 헐리지만..

2개월 째부터 고정적인 일들이 제법 자리잡았다. 클라이언트도 3개로 늘어났다.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열정과 실력을 그나마 알아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어느정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이 없어진다. 곧 헐린다. 재개발이주 공고가 났기 때문이다. 벌써 3개월이 지나간 셈이다. 우리는 새로운 둥지를 찾아 허둥지둥 찾아 해메기 시작했다. 회사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도 작은(아직도 작다.), 우리의 셜록은 그렇게 '무언가'가 돼가고 있었다. 신길 재개발 지구 셜록 1막 마무으리-!


사무실 바로 앞에 있던 무궁화 나무. 참 좋아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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