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한창 하고 있을 때쯤,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가족을 통해 전해들었습니다. 그곳은 괜찮냐는 안부와 함께요. 우리가 마주치는 사람이라곤 하루 종일 차를 몰고 도착한 동네의 주민 혹은 우리와 같은 몇 없는 여행자뿐이었고, 우리와 만난 사람들은 세상에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밝고 마알간 얼굴로 환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표정과 눈빛을 잃은 채 걸어 다니지 않았어요. 같은 공간에 있을 때에도 언제나처럼 편하게 숨을 쉬었고, 기침을 하면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God bless you’라고 말해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챙겨온 신라면 두 봉지와 맞바꾼 동네 꼬마들과의 값진 하이파이브.
마을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있을 때 우리 주변을 지나던 아이들이 있었어요.
일행 중 한 친구가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가방에서 라면 두 봉지를 꺼내어 선물로 건넸어요.
아이들은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이고, 일단 주니까 받았겠지만 그 라면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서 부모님께 우리를 어떻게 소개했을지, 결국 그 라면을 끓여서 먹어봤을지, 먹었다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했을지 그날 밤 혼자서 너무 궁금해 했어요. 새하얀 아이들이 빠알간 라면 봉지를 두 손에 가득 품을 때 어리둥절해 하는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웠거든요.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혀요.
“Give me High five!”를 외치며 손바닥을 펼치면
조심스레 다가와 살포시 손을 맞추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던 아이들의 뒷모습.
여행 중에 천사를 꼭 한 번은 만나게 된다는 미신 같은 게 있었다면,
그날 만났던 꼬마들이 천사였을 거라고 굳게 믿고 또 믿었을 거예요.
‘기생충’을 아냐고 물어보면 환한 얼굴로 ‘Parasite’를 외치며 인사를 건네던 각국의 여행자들도 있었고,
빙판에 미끄러질 뻔 하고 민망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Be Careful’이라고 말해주던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내가 당신들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당신들도 날 그리워했으면 좋겠는데. 서로의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는 우리들은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될까요. 마주친다면,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땐 우리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 마스크를 벗어 던진 채 있는 힘껏 반갑다 말할 거예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안녕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멀어질까 봐. 고맙다는 말로 대신하던 날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