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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Feb 07. 2023

누가 싫어지는 순간에 대하여

유해한 사람은 구분할 수 있었으면

강아지 같은 사람과 고양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전자에 가깝다. 미리 조심하거나 애써 멀리하지 않는다. 가진 걸 다 보여주면서 같이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찾는다. 동시에 웃을 수 있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니 만나자, 누가 말하면 피하지 않는다. 그게 강아지 같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 특징인지도 모르지만... 세상엔 무해한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매우 유해하다. 당연하겠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동물원에는 강아지나 고양이만 있는게 아니다. 애초에 정글에 가깝지. 철창도 경계도 없이 초식과 육식이 섞여 있는 곳이 회사였다. 맹수와 가축, 날짐승과 생선이 한 곳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어떤 상황이 오면 맹수가 가축을 물거나 씹었다. 자기만 살기 위해서. 불안이나 열등감을 감추고 싶어서. 


몇 개의 또렷한 케이스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후에는 일정한 주파수에 반응하는 촉이 생긴 것 같다. 악마가 등장하기 전에 실내 온도가 내려가는 것처럼, 겉이 친근한데 속에서 칼을 갈고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땐 뒷통수와 목 사이 어딘가에서 좀 낮은 기온의 바람이 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 느낌을 무턱대고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저 조심하는 데에 쓴다. 가드를 분명히 올린 채 유지한다. 무심결에 한 방 맞았다간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하는 감각. 그래서 누가 싫다는 감각과 누가 위험하다는 감각은 다르지 않다. 어떤 말이 나를 스스로 구속하게 하고, 다른 말은 나를 의심하게 하고, 또 다른 말은 그저 폭력에 가깝기도 하다. 어떤 말은 나를 고립시키려 하고, 통제하려 하고, 겁박하거나 의지하게 만든다. 친구는 그런 기술을 쓰지 않는다. 좋은 선배, 상사, 후배나 어른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의도가 있는 사람만이 그런 언어를 구사한다.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좀 두어도 괜찮다. 


몸이 가까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마음이라도 멀어야 한다. 사회적 언어와 개인의 언어를 분리해 구사할 수 있는 가벼운 훈련을 해두는 것도 좋겠다.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나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거리를 파악해두어야 한다. 그저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드를 올려야 한다. 부지불식 같에 한 방 얻어 맞거나 물어 뜯기지 않도록. 알면 쓰러지지 않는다. 알아채는 초식 동물은 나쁜 의도를 가졌거나 서툰 맹수보다 강할 수 있다. 


그냥 흐르는대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라는 데에 삶의 묘미가 있는 걸까? 내내 번거롭다. 인간으로 산다는 건. 다시 태어나면 뭘로 태어나고 싶냐는 물음에는 대체로 나무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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