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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uchi May 13. 2023

"아니, 왜 밀어요?"

지하철 타다 느낀, 세태변화와 문화지체 현상 

1. 지하철 풍경


"아니, 왜 밀어요?"

출근시간대가 살짝 지난 무렵의 을지로3가역, 

객차에 올라타던 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주 혼잡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타는 사람만 예닐곱 이상은 되었다. 중년 여성이 가볍게 소리지르며 팔을 흔들자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런데 바로 뒤에 붙어서 객차에 타던 이는 그 흔들린 팔에 어깨가 살짝 밀쳐졌는데도 그저 팔의 주인 얼굴을 흘깃 한번 쳐다볼 뿐, 아랑곳 않는다는 듯이 객차 안으로 쑥 들어갔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 될까, 직장인 차림새의 젊은 여성이었다.



2. 흐름과 지체

모던타임즈 영화 속 컨베이어벨트 장면이 떠오른다. 상징적이다. 흐름이 있다. 일정한 리듬감을 갖고 매끄럽게 흘러가며 작업이 이뤄진다. 챨리 채플린이 등장해서 삐걱, 그 흐름에 균열을 내고 웃음을 주고 풍자를 전한다.

지하철 풍경을 보고, 왜 이 영화 장면이 떠올랐을까. 

지하철에서 많은 이들이 타고 내릴때, 일정한 흐름이 생기고 그 속에는 자연스레 리듬감이 더해진다. 그런데, 그 중년여성은 당시에 생겨난 일정한 리듬감에 맞추기보다 자신의 속도를 주장한 게 아닐까. 반면, 젊은 여성이 힐끗 쳐다볼 때 그 눈빛의 의미는 '리듬감 떨어지고 뒤처지는' 고참에 대한 힐난 같은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인스타그램 세대와 싸이월드 세대 사이의 감성 차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세태변화가 빠르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왜 보채고 밀치냐'고 뭐라하고, 반대로 누군가는 '왜 따라잡지 못하냐'고 책망한다. 일종의 '문화지체'다.


3. 스트리밍 시대의 TV

스트리밍, 넷플릭스와 웨이브 티빙 등 OTT 서비스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 이전부터 멜론과 유튜브 프리미엄 등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 먼저 다가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리밍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시냇물처럼 흘러다닌다'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마치 수도꼭지를 틀면 수돗물이 바로 나오듯이, 콘텐츠도 이제 늘 흘러다니듯 대기하다가 '내가 클릭하면 바로 재생되는' 그런 상황 아닌가 싶다. 그걸 일방향 전송식의 'TV 시대'와 조응해 '스트리밍 시대'로 부를 수 있겠다 싶다.


출처: Benedict Evans의 Big Presentation 'The New Gatekeepers'에서 발췌하고 가필

어제 DMI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장표중의 하나다. 


여전히 거실과 안방에서의 TV는 강력하다. "그래서 도대체 TV는 뭐야?"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Youtube Trend' 책에 썼듯이 'Tele-Vision'은 '멀리서(Tele) 보는(Vise) 도구'를 지칭하는 단어다. 지상파와 케이블을 통해 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재생도구인 셈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스트리밍 콘텐츠나 서비스와 궁합이 더 잘 맞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껏 TV와 동의어로 쓰인 '방송'은 밥상을 차려서 일방향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TV를 활용했는데 스트리밍 방식은 시청자가 TV를 호출도구이자 Display로 활용하며 언제든 편하게 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차려주는 '밥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저녁에 뉴스가 마렵고 드라마가 고픈 시간대가 있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해 온 '편성권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어떨까? TV의 접근성마저 약한 그들이 뉴스시간대와 드라마 시간대를 기억할까? '모바일 시대에 편성권력은 해체되고 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배경이다. 이른바 'Prime Time'의 위력도 약해지고 있고, 자연히 광고수입도 예전같지 않은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4. "그래도 (너무) 밀면 안되지...!"

생성AI 열풍이 거세다. 이번에는 '판이 바뀔 것 같다'는 목소리가 많다. 작년에 '메타버스, NFT, Web3' 등등을 열심히 떠들더니 어느새 쏙 들어가고.. 모두가 ChatGPT, Bard, AI 등을 외쳐댄다. (사실 나 또한...) 커다란 변화가 오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고 있는게 아닐까, FOMO(Fear Of Missing Out)에 시달리는 이가 많다.


물론 사업 현장에 있는 이들이 촉수를 세우고, 변화를 탐지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거나 현장을 개선해 나가는 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나 또한 어제 발표 중간중간 생성AI를 주목할 이유를 강조하기도 했다. 


"챗GPT와 Bard 등 대화형 모델로 나온 AI서비스를 쓰다보면 웹의 진입기, 네이버의 지식iN 서비스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 새로운 기술기반 서비스가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문화로 채택되면 시장은 다시 재편되지 않을까요? 지식iN과 블로그 등 UCC 서비스가 사람들의 수요를 채워가며 네이버 검색을 공고한 일상의 문화로 채택하게끔 도왔던 것처럼 말이죠."


검색도 바뀔 것 같다. 더코어에서도 구글 I/O 보고 발빠르게 '검색변화 전망과 뉴스서비스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도 마냥 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생각도 든다. 

모던타임즈에서 챨리 채플린이 이미 몸소 보여주며 던진 메시지를 곱씹어본다. 인생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굴러가고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니겠는가. 같은 이치로, 눈부신 기술발전과 하루가 다른 세태변화를 빠르게 잘 따라잡지 못한다고 힐난의 눈초리를 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불가피 짧은 시간안에 탑승하게끔 설계된 지하철에서, 어쩌겠는가. 같이 그 리듬에 맞춰 타고 내리도록 애쓰고 혹 그 리듬을 지체시키는 건 아닌가 신경 쓸 정도의 감수성은 가질 수 있게 애써보자. 간혹 삐걱, 그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왜, 밀치냐"고 소리지르기 보다는 살짝 웃으며 양해를 구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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