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시절에, 새삼 '소설 읽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스토너, Stoner]
1922년생 미국 작가가 1965년에 출간한 소설이다.
잊혀져가던 이 책은 50년쯤 지나서(작가가 죽고 20년이나 지나서)
갑자기 유럽에서 한 서점체인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소설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
영문학을 가르치는 주립대 교수다.
톰 행크스가 "그저 대학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매우 매혹적인 이야기다"라고 평했다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왜 그런지...
한참 뜸을 들이게 되었다. 꽤 몰입됐던 탓 같다.
번역이 까다로운 작품이었을텐데.. 싶었다.
두세번 되풀이하게 된 문장들은,
번역이 거칠어서가 아니고 원문 자체의 문학적 깊이나 스타일 때문으로 이해가 된다.
찾아보니, 번역자가 김승욱이었다. 역시나!
문장 하나하나 고심해가며 번역했을 것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앞으로 10년쯤 뒤에 읽으면 더 찐하게 와닿을 작품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되새김질의 또 다른 의미다.
자연히, 후반부에서 읽는 속도가 느려진 곳이 많았는데...
메모해두고 싶은 대목 가운데 2개쯤을 여기 기록해 둔다.
하나는 '분리의 느낌'에 관한 단락이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았다. 잘 모르는 사이인데도 묘하게 친숙한 누군가가 자신이 해야 하는 묘하게 친숙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분리되는 느낌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른 하나는 요것이다.
"밖은 어두웠다. 봄의 싸늘함이 저녁 공기 속에 배어 있었다. 스토너가 심호흡을 하자 그 서늘한 기운에 몸이 찌릿찌릿하는 것이 느껴졌다. 들쭉날쭉한 집들의 윤곽 너머로 시내의 불빛들이 엷은 안개 속에서 반짝였다. 길모퉁이의 가로등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어둠을 힘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그 너머의 어둠 속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나와 잠시 머무르다가 사라졌다. 뒷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는 안개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저녁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혀에 닿는 싸늘한 밤공기를 맛보았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토너와 함께 걷는 기분으로 읽고 있다가, '안개에 붙들린 냄새'가 훼방꾼처럼 등장해서 좀 당황했었다. 여러번 되새기다보니, 그럴듯했고.. 좋았다!)